• 입력 2023.09.22 16:46
2018년 2월 폐교되기 이전 서남대 캠퍼스 전경. (사진=뉴스웍스 DB) 
2018년 2월 폐교되기 이전 서남대 캠퍼스 전경. (사진=뉴스웍스 DB)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고교야구 선수들은 프로야구 구단의 지명을 받는 것을 지상목표로 운동한다. 물론 매우 좁은 문을 뚫어야 한다. 프로 진출에 실패하면 다음 기회를 노리고 대학에 진학한다. 일반 수험생들도 이미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학사 학위가 제공하는 가치가 날로 떨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2000년만해도 대학 입학이 가능한 학령인구는 82.7만명으로 입학정원 64.6만명보다 18.1만명이 많았다. 2021년을 기준으로 학령인구가 입학정원에 밑돌면서 전체 대학의 미충원 인원은 4만586명을 기록했다. 올해 대학 입학 정원은 46.6만명이었지만 실제 입학자는 42만명에 그쳤다.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은 전체의 과반수에 달했다. 이중 비수도권 대학이 9할을 차지했다.

향후 상황은 더 끔찍하다. 20년 뒤 만 19세 인구는 23만명 수준으로 예측된다. 대학진학률이 OECD 회원국 평균 수치로 내려간다면 대학 신입생 수는 10만명에 그칠 것으로 통계청은 예상했다. 현재 정원 규모가 유지된다면 대학의 7~8할이 신입생이 없어 문을 닫게 된다는 얘기다. 인구 감소와 진학률 하락에 대비, 정부와 정치권이 대학의 폐교와 통·폐합 등 구조조정 방안을 진작 마련하지 못해 사태 악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는 1995년 대학의 설립요건을 완화하는 ‘대학 설립 준칙주의’를 담은 5.31 교육개혁안이 나오면서 2011년까지 63개 대학이 신설된 영향도 적지 않다. 부실대학 양산, 대학 정원의 수도권 집중, 지방대학 재정난 심화가 초래되면서 국립대와 상위권 사립대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대학이 생존의 기로에 처한 상태다. 등록금 의존율이 54.9%에 달하는 사립대학 중에서 경영위기에 놓인 대학부터 각종 구조개선 조치를 통해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사라지거나 다른 기관으로 변신하는 통로를 마련해야 할 때다.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22일 사립대학 구조개선법 제정을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0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22일 사립대학 구조개선법 제정을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0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과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벼랑 끝, 사립대학 대학구조개선의 골든타임을 놓칠 것인가’ 토론회를 갖고 사립대학 구조개선법 제정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이태규 의원은 개회사에서 “지방대학의 위기는 지역사회의 인구 유출과 경제산업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국가사회적 난제”라며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는 만큼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개선작업을 단행해 지방대학의 새로운 생존과 발전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정복 의원도 “사립대학의 자율적 구조개선을 전제로 회생 가능한 대학은 구조개선을 과감히 할 수 있고, 회생이 불가능한 대학에 대해서는 안전한 퇴로를 제공, 해산 과정에서 안정성을 제공하고 교직원과 학생 등 구성원 보호가 가능하도록 하는데 지원의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에는 2022년 9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이태규, 강득구, 정경희, 문정복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안’ 4개가 제출된 상태다. 법률안 제목은 물론 사립대학과 학교법인의 구조개선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지원하는 법률을 제정해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와 사립대학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한다는 입법 취지도 똑같다. 구조개선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사학구조개선위원회를 두고 한국사학진흥재단을 구조개선 지원 및 관리업무 전담기관으로 지정하며 재정진단 결과 구조개선이 필요한 사립대학을 경영위기대학으로 지정하고 구조개선 조치를 이행할 때 적립금 사용, 재산 처분, 시설 기준, 정원 등에서 특례를 제공하며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경영위기대학이 구조개선 조치를 이행하는 경우 필요한 행·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까지 유사하다. 

서남대 캠퍼스 전경.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통해 사립대 구조개혁을 위한 국회 차원의 제도 개선 방향을 밝히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통해 사립대 구조개혁을 위한 국회 차원의 제도 개선 방향을 밝히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구조개선이행계획에 따른 폐교와 자진폐교, 해산 절차와 잔여개선 귀속에 관해 특례를 규정한다는 것도 동일하지만 문정복 의원안에는 ‘해산장려금’이 들어 있다는 것이 다르다. 한국사학진흥재단법에 따라 잔여재산이 사학진흥기금의 청산지원계정으로 귀속된 경우 잔여재산처분계획서에서 정한 자에게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해산장려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 독특하다. 학교법인의 임원 또는 해당 학교법인을 설립한 사립학교를 경영하는 자 등이 교육관계 법령을 위반, 관할청으로부터 회수 등 재정적 보전을 필요로 하는 시정요구를 받았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는 대통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산장려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명시했다. 범위와 한도, 절차 등은 대통령령에서 정하기로 했다. 

전윤규 경기대 법학과 교수는 이날 ‘사립대학 구조개선의 필요성과 법률 제정의 시급성’ 주제발표를 통해 “해산장려금의 필요성을 둘러싼 이견은 있을 수 있겠으나 대학현장의 위기에 대한 적시대응의 시급성을 고려하면 이 논란으로 법 제정이 계속 지연된다면 대학구성원들의 고통을 방치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고등교육계의 구조개선과 경쟁력에도 장기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교수는 “해산장려금의 취지를 사립대학이 그간 고등교육에 기여한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이해하고 공로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부정비리 전력이 있는 법인 설립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필요하다면 명칭을 변경할 수 있으며 법안의 핵심도 해산장려금 지급여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법안의 신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2일 환영사를 통해 고등교육 생태계 보전을 위해 한계대학들의 구조개선을 지원하는 법안의 제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2일 환영사를 통해 고등교육 생태계 보전을 위해 한계대학들의 구조개선을 지원하는 법안의 제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교육부와 박광온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08년이후 폐교된 사립대학은 19개이다. 정부가 강제 폐쇄한 대학이 13개, 법원이 파산을 판결한 대학은 1개, 자진폐교 대학은 5개이다. 남원시 유일의 고등교육기관이었던 서남대학교는 2018년 2월 28일 설립자 비위와 경영 어려움으로 폐교됐다. 이로 인해 지역사회 생태계는 붕괴됐고 인력난은 더욱 심화됐다. 학교법인이 해산명령을 받은뒤 현재까지 청산작업이 진행 중이다.

정환석 전북 남원시 기관유치팀장은 ‘사립대학 구조개선을 위한 지방자치단체 역할’ 주제발표에서 “서남대가 폐교되는 과정에서 아쉬었던 점은 임시이사가 선임될 정도로 경영위기가 닥쳤는데도 불구하고 소재하고 있는 지자체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사립대학 구조개선법 제정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 팀장은 “단순히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구조개선 전담기구와 협업할 수 있는 근거를 넣어야 한다”며 “폐교된 캠퍼스를 활용해 지역활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지자체가 마련하고 이에 따라 일정부분 국가 지원이 가능해지면 속도감 있는 폐교 재생이 이뤄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지자체가 폐교 캠퍼스 부지를 대상으로 공공개발에 나서기 힘들거나 계획이 없다면 민간 영역 활용을 유인하기 위해 일정기간 유예후 도시계획시설 해제를 검토하는 것도 청산을 쉽게 하는 방안이라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학교법인간 합병 방식 외에는 사업양도와 같은 구조조정을 할 여지가 두지 않고 있다. 중대한 위법사항이 있고 이를 바로잡지 않은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사립학교 폐교가 가능할 뿐이다. 이런 취약성을 감안, 여야 의원 52명이 자발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문정복(왼쪽부터) 의원과 이주호 교육부장관, 이태규 의원이 22일 토론회에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문정복(왼쪽부터) 의원과 이주호 교육부장관, 이태규 의원이 22일 토론회에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국가가 위기에 처한 사립대학들을 방치하는 것은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고등교육 체계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 아울러 지역인재 양성에 차질을 줄 뿐 아니라 지역공동체 존속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미 한계에 달한 사립대학의 회생 가능성을 타진하고 도저히 재기가 어렵다면 퇴로를 제공해 적기에 청산을 유도하는 구조조정을 더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이런 과정에서 교수와 직원, 학생들을 보호하는 장치를 주도면밀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자체와 지방 사립대학이 공조를 통해 위기 타개 방안을 마련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협력체제 구축이 절실하다. 여야 의원들은 사안의 심각성과 절박성을 감안, 견해 차이를 좁히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내년 4월 총선을 감안할 때 이번 정기국회가 마지막 기회다. 최종 절충안을 빠른 시간내 마련, 사립대학 구조개선지원법을 제정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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