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0.27 15:29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2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라는 바닥명판이 새겨져 있다. (사진=뉴스1)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2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라는 바닥명판이 새겨져 있다. (사진=뉴스1)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59명의 생명을 순식간에 빼앗은 이태원 참사가 오는 29일로 1주년을 맞는다. 지난 26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에는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란 이름의 추모공간이 조성됐다. 골목의 시작과 끝에는 추모 메시지가 담긴 바닥명판이 새겨졌고 길가에는 표지판과 게시판이 세워졌다. 게시판에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설명은 물론 시민들이 작성한 추모 메시지와 사진 등이 담겼다.

좁은 골목길에서 내외국인이 무더기로 압사당한 비극이 발생한 경위와 과정을 놓고 여러 추정이 나왔을 뿐 명쾌한 이유는 드러나지 않았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안전불감증, 사람이 엄청나게 몰리고 있다는 112 신고에도 즉각 대응에 나서진 못한 경찰의 무사안일이 겹쳐 엄청난 희생자가 나왔지만 이로 인해 명시적으로 책임을 지거나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유가족들이 권위정부 시절에도 이러진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릴 만한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31일 이태원역 1번 출구 현장. (사진=뉴스웍스 DB)
지난해 10월 31일 이태원역 1번 출구 현장. (사진=뉴스웍스 DB)

서울 치안과 경비를 책임지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지난 1월 서울서부지검에 불구속 송치했지만 검찰은 여태껏 기소 여부에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주춤거리고 있다. 압사 사고를 미리 예상할 수 있었고 안전관리 대책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 규명되어야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청장은 참사이후 사고가 날 위험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 16일 국정감사에서 “움직이는 군중에 대한 사고는 대한민국에서 처음이었다”며 “전문가 누구도 사전에 이 부분에 위험성이 있다고 고지한 사례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쉬운 대목은 핼러윈을 맞아 해밀턴 호텔 골목에 많은 사람이 몰려 위험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경찰 정보관 보고서 4건이 삭제됐다는  점이다.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과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은 증거인멸교사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부장 측은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김 전 과장 측은 규정에 따른 적법한 지시였다고 주장했다. 용산경찰서가 이런 보고를 받은 뒤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 비좁은 골목에선 일방통행을 유도하는 등 인파 분산 대책을 실행했다면 연쇄적으로 넘어지면서 사람들이 계속해서 깔리는 참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당일 골목길 모습. (사진=독자제공)
이태원 참사 당일 골목길 모습. (사진=독자제공)

제2의 이태원 참사 재발을 막으려면 신종 위험을 예측, 상시적으로 대응하고 현장에서 원활히 작동되는 재난관리체계를 도입하는 것을 물론 첨단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과학적인 재난안전관리에 나서야 한다. 재난 대비에 있어서는 과도한 것이 부족한 것보다 언제나 낫다는 원칙 아래 철저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관련 대책을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문제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각종 대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관련 법률 개정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점이다. 주최와 주관이 불분명한 축제에 대한 지자체의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법 개정안은 여야 정쟁으로 처리가 미뤄지다가 지난 9월 2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인파사고를 사회재난 유형에 포함하고 지자체 CCTV의 재난 예방 목적 활용 근거도 마련한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경찰서와 지자체 간 실시간 정보 공유 체계 구축, 인파 밀집시 통행 제한 등 구체적인 방안이 담긴 ‘인파 안전관리 매뉴얼’ 수립도 확정되지 않고 있다. 

물론 법령 개정과 관련이 없는 일부 대책은 시행에 들어갔다. ICT를 기반으로 위험징후를 미리 파악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갖춰 나가고 있다.

경찰은 지난 1월부터 '112 반복신고 감지시스템'을 도입, 운영 중이다. 신고번호가 다르더라도 신고 발생지점 반경 50m 이내, 최근 1시간 내 3건 이상 신고가 접수되면 반복신고로 자동감지, 112 요원에게 제공한다. 사건 초기 경찰의 대응력 향상이 기대된다.

인파관리시스템 시범서비스 운영 이미지. (인포그래픽제공=행안부)
인파관리시스템 시범서비스 운영 이미지. (인포그래픽제공=행안부)

27일부터 오는 12월 15일까지 서울 이태원 관광특구, 김포공항역 인근, 건대입구역 인근, 신촌, 미아사거리역 인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 벡스코, 서면 젊음의 거리 등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전국 30개 상시밀집지역에서 ‘인파관리시스템’ 시범서비스가 시행된다. 이동통신사의 기지국 접속정보와 해당 지역의 공간 특성 정보를 기반으로 위험도를 수치화한 것이 특징이다. 밀집위험이 감지되면 지자체 상황실에 통보된다. 상황실 근무자는 인파관리시스템을 통해 지리정보체계 상황판에서 사람이 얼마나 몰렸는지를 히트맵(heatmap)으로 파악할 수 있다. 히트맵은 데이터를 시각화하기위해 색을 이용해 나타낸 그래픽을 말한다. 시스템의 기능과 성능을 개선하고 미비점을 보완하면서 연말까지 전국 100곳으로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정확하고 신속한 구조와 구급을 위해 119 구급 스마트시스템도 12월 중 개시될 예정이다. 응급환자의 생체징후, 중증도, 이송정보 등 중요 자료를 소방과 응급의료기관 간에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담당 의료진이 없어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쳐 인명을 잃는 비극을 줄이기 위한 대책이다.  

소방, 경찰, 지자체 등 1차 대응기관 간 상황공유와 협력적 재난대응 체계도 세워지고 있다. 경찰, 소방, 해경 간 공동대응 요청될 때 현장출동이 의무화된데 이어 지난 24일부터 현장에 출동할 때 상대 출동대원의 차량과 연락처를 문자로 알려주는 시스템도 도입됐다. 경찰은 재난상황을 인지하면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한다. 소통과 협력을 기반으로 현장대응 역량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추진상황. (인포그래픽제공=행안부)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추진상황. (인포그래픽제공=행안부)

한국에 거주하는 국민과 외국인의 24시간이 평온하려면 안전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생활 속에서 목격하는 각종 위험요인을 찾아 정부 또는 지자체가 시정에 나서는 선순환 체계가 정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행사가 갖는 위험성에 대비, 지자체 중심으로 관계기관 합동으로 사전 안전대책을 수립하고 현장점검을 강화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이와 관련, 행안부는 안전신문고에 불법숙박, 빗물받이 막힘, 인도 위 불법주정차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안전신고 메뉴를 신설한 결과 올해 들어 8월까지 신고건수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8% 늘어났다고 밝혔다. 12월까지 경찰청 ‘스마트 국민제보 시스템’을 안전신문고로 통합 개통할 계획이다. 국민의 신고편의 향상과 행정기관의 대응능력 제고를 위해 필요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1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추모 위령법회에서 합장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1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추모 위령법회에서 합장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2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이 열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추모식에 직접 참석할 것을 요청했다. 유가족을 만나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하고 위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라고 하던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며 "말 따로 행동 따로 이런 행태를 계속 보여선 안 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야4당이 공동주최자의 하나로서 정치집회 성격이 짙다고 언급했지만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참여하면 특정 정치집회가 될 수 없다. 야당으로부터 정부와 지자체의 사전대비 및 현장 대응 실패에 따른 대규모 인재이자 사회적 재난이라는 비판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불편하고 거북스럽더라도 추모식을 찾아가 사과한다는 뜻을 천명하고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이태원 참사과 관련해 수차례 사과의 뜻을 전한 것을 더이상 따질 때가 아니다.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의 넋을 달래고 지난 1년 간 불면의 날을 버티면서 일상생활이 망가진 유가족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통합에도 기여할 것이다.  

불의의 재난은 언제 어떤 행태로 찾아올지 모른다. 우리의 평안한 일상을 위협하는 재난의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발생 이후 피해 최소화를 위한 신속한 대응과 피해자의 회복력 강화도 절실하다. 늘 안전을 챙기고 염려하는 시민의식 제고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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