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2.05 13:48

중소기업중앙회 독점권 깨져…질병청·항우연·ADD 등 13곳 '50% 구매 의무' 위반

추경호(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기재부)
추경호(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기재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중소기업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중소기업제품 ‘구매 증대’ 의무가 부여된 공공기관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가공기업과 지방공기업, 국·공립 교육기관, 지방의료원 등 856곳에 달한다. 판로지원법은 중소기업제품의 구매를 촉진하고 판로 개척을 도와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경영안정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됐다. 

중소기업 공공구매제도 의무구매비율. (표제공=중기부) 
중소기업 공공구매제도 의무구매비율. (표제공=중기부) 

정부는 공공기관의 중소기업제품 구매를 늘리기 위해 중소기업자간 경쟁, 중소기업 우선조달 계약, 기술개발제품 우선구매 등 다양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공공기관은 2006년부터 물품, 용역, 공사 등 총 구매액의 50% 이상을 중기제품으로 사야 한다. 성능이 인증되는 기술개발제품을 15% 이상 사고 여성기업 제품도 물품·용역에서 5% 이상 구매해야 한다. 장애인기업제품은 1% 이상, 창업기업제품은 8% 이상이 의무구매 비율이다. 지난해 구매실적은 118조9000억원으로 2021년(119조7000억원)보다 소폭 줄었다.

문제는 법률의 목적을 규정한 제1조에서 중소기업제품이란 단어를 쓰면서도 이 법에서 사용하는 주요 용어의 뜻을 실은 제2조에는 중소기업제품에 대한 정의가 빠졌다는 점이다. 이런 법의 허점을 악용, 유통 중소기업이 납품한 대기업제품이나 해외제품이 공공기관의 중기제품 구매실적 내역에 버젓이 들어가고 있다. 중기제품끼리만 경쟁하는 직접생산기준에서도 주요 부품이나 소재에 대한 원산지 제한이 없어 일부 제품의 경우 많은 중소기업이 수입산 부품이나 소재를 단순조립해 납품하는 실정이다. 허술한 관리로 외국산 핵심부품·소재가 우대받고 있는 셈이다.

김충배(오른쪽)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가 지난해 11월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아셈볼룸에서 열린 '2022 공공구매촉진대회'에서 조주현 중기부 차관으로부터 공공구매 유공 대통령 표창을 수여받고 있다. (사진제공=신용보증기금)
김충배(오른쪽)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가 지난해 11월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아셈볼룸에서 열린 '2022 공공구매촉진대회'에서 조주현 중기부 차관으로부터 공공구매 유공 대통령 표창을 수여받고 있다. (사진제공=신용보증기금)

중소벤처기업부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 관계부처 합동으로 보고한 ‘중소기업 부담 완화 및 투자 활성화를 위한 중소기업제품 공공구매 실효성 제고방안’을 통해 중기제품 구매의 실효성을 높이고 핵심부품의 국산제품 사용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중기제품 구매실적은 중기가 생산한 제품을 구매한 경우에만 인정하는 것으로 명확히 규정한다는 방안이 눈에 띈다. 판로지원법을 개정,  2조에 중소기업제품이란 중소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말한다는 정의를 신설할 방침이다. 이리 되면 유통 중소기업이 대기업이나 수입제품을 공급하는 경우 해당 공공기관 구매실적에서 제외된다. 국산 중기제품 판로를 넓혀준다는 법 취지에 부합되는 결정이다. 뒤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제품에 대한 바이 코리아(Buy Korea) 전략을 실질화하는 정책이 주목된다. 수입산 제품을 국산 부품으로 바꿔서 생산할 수 있고 관련 산업 육성도 필요한 제품을 ‘(가칭) 핵심부품 국산화 대상 경쟁제품’으로 공시한다는 것이다. 드론, 영상감시장치, LED 실내조명등, 3D 프린터, 인터랙티브화이트 보드 등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국내에서 제조하고 국내 발생 부가가치가 51% 이상임을 증명하는 국내산 원산지증명서를 제출할 경우 계약이행능력심사 시 신인도에서 최대 가점을 3점 주고 직접생산 현장조사도 생략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방침도 돋보인다. 공공기관과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는 ‘성능인정’을 신청할 경우 적합성 평가항목에서 국산화 대체 정도에 따라 3~5점의 가점을 받게 된다.국내 산업의 경쟁력 확충과 안정적 공급망 확보, 전후방 파급효과에 도움을 줄 정책으로 여겨진다.

(표제공=중기부)
(표제공=중기부)

직접생산확인제도도 고친다. 시설이나 인력, 공정 등을 확인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내에서 일정비율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조건으로 변경한다. 내년 연구용역을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경쟁제품별로 부가가치비율을 산정하고 이를 충족한 중소기업에게는 ‘가칭 부가가치확인서’를 발급, 직접생산 확인을 간소화한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국산화를 유도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독점했던 신산업 제품 추천권한도 손본다. 내년 상반기부터 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등 총 7개 단체에게 추천권을 부여한다. 제품생산기업 5개 이상에다가 구매실적 5억원 이상이란 현행 신제품특례도 제품생산기업 5개와 1억원 이상으로 낮춘다.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에 보다 다양한 신산업 제품이 지정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중소기업제품 등 구매목표 비율제도 (표제공=중기부)
중소기업제품 등 구매목표 비율제도 (표제공=중기부)

정부는 ▲해썹(HACCP) 등 유사 정부인증을 받은 경우 직접생산 확인 생략 ▲중소기업간 경쟁시장 의존기업 현황 분석 및 의존기업의 민수시장 진출 유도 ▲성능인증 유효기간 3년에서 4년으로 연장 등을 시행할 방침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제품 구매 법정비율이 50%에 미달한 공공기관은 질병관리청, 국방과학연구소,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전북대병원, 석유공사, 국제방송교류재단, 충남 홍성의료원,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건설기숙교육원,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전주시시설관리공단, 과학기술사업화진흥원 등 13곳에 이른다. 목표 달성이 어렵다면 사전 협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는데도 이들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

중소기업 공공구매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우선적으로 의무구매비율부터 지켜져야 한다. 타당한 사유가 없거나 사전협의를 실시하지 않은 기관은 대외공포하는 것은 물론 기재부가 수행하는 공공기관 평가에도 반영하는 사후관리 조치 강화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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