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2.09 12:06
양지청 글로벌경제산업 연구원 원장 (사진제공=양지청)
양지청 글로벌경제산업 연구원 원장 (사진제공=양지청)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건국전쟁'이라는 영화를 통해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등 주요 대형 극장체인에서 인기리에 상영 중이다. 1965년 서거한 그가 사후 60년을 앞두고 부활한 듯 보일 정도다. 

이승만 대통령은 글로벌 인재였다. 그의 예지력, 예언력, 글로벌 마인드로 대한민국은 엄청난 혜택을 누리게 된다.

미국이란 나라를 알지도 못할 1907년에 조지워싱턴대 학부를 졸업하고 1908년 하버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에 앞서 이승만은 1900년에 'Japan Inside Out'이란 책을 저술하면서 일본이 미국을 침략하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그의 예측력이 주목 받으면서 예언자라는 평가도 나왔다.

1910년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당시 박사가 거의 없던 한국에서는 그를 이승만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이승만 박사로 불렀다.

그는 한국인이 미국 친일인사를 테러한 사건을 놓고 일본인이나 서구의 친일 성향 관계인을 감정적으로 죽이는 것은 오히려 서구를 적으로 돌리게 되어 그들이 일본과 더더욱 밀착해 일본을 도우는 꼴이라며 독립에 도움은 커녕 해악이 된다고 호되게 질책했던 바 있다.

자유시 사건 이후 광복군 등 무장활동 병력 3000명 정도로 700만이 넘는 일본군을 상대로 독립을 쟁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후손을 공부시키고 외교력을 키워야한다고 설파하였다. 되돌아보면 놀라운 통착력이다. 

그는 1896년에 협성일보 주필로 활동하였고 1917년에 한인기독학원을 설립했다. 1919년에서 25년까지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맡았고 1948년 제1대 대통령으로 당선, 취임한다. 2대 3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여러가지 남은 과제로 4대 대통령에 출마하게 된다. 야당의 후보자는 심장마비로 급사, 사실상 당선이 확정된 때였다. 즉, 이승만 대통령은 부정선거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부통령 야당 후보인 장면이 인기가 있어 밑에서 이 박사와 무관하게 이기붕을 세우는 과정에 무리가 생긴 것이다. 4.19 혁명 당시 서울대병원에서 희생 당한 학생들에게 내가 맞아야 할 총알을 어떻게 이리 되었나 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며느리의 증언도 나온다. 

영화는 하와이로 가는 과정을 잘 그렸다. 당시 그를 헐뜯는 흐름의  엄청난 음해성 뉴스가 쏟아졌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은 엉터리 보도를 하기 일쑤다.  2주 다녀오려는 계획이 하와이 망명으로 보도됐다. 그리고 아예 못 오게 막아버렸다.

스위스 은행에 거액이 예치되었있다는 가짜뉴스도 여론을 악화시키는데 한몫했다. 실제 하와이에서 살아갈 생활비는 몇 명이 조달했다. 그는 검소하게 살아가며 한국을 위해 일했다. 

초창기 하와이에서의 활동도 많이 보여준다. 매우 의미가 깊다. 하와이 여러 섬에 흩어져 노동을 하고 있던 한국인들을 연합시키는 일을 했고 여자를 업신여겨온 관행도 선구자적으로 고쳐나갔다. 여성에게 선거권을 준 시기는 서구 어느 나라보다도 앞섰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기습적으로 탱크를 앞세워 남한을 침략했다. UN이 참여하여 공산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저지할 수 있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비롯한 남한은 미국의 원조로 또한 이후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등의 등장으로 세계에서 잘사는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전쟁을 빨리 종전시키며 군대를 빼려하던 미국을 상대로 거제도 자유포로 석방을 하면서 군대 지원, 미국 원조, 한미방위수호조약을 이끌어 내게 된다.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한국은 벌써 종전후 소련, 중국, 북한에 공산화가 되었을 것은 명확하다.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다고 평가하는 분들은 이런 전후 사정을 꿰뚫고 있는 대단한 능력자이다.

한강대교 폭파 당시 경찰과 군인은 인도 아래 부교를 설치했고 민간인이 이를 통해 건너게 했다. 실제 폭파 시에는 아무도 없었고 민간인 희생자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에 나가 망명정부를 세우라는 압박에도 한국에 남아 전선을 지휘하였다.

이를 수많은 참전 군인들이 증언한다. 실제 전투를 앞둔 군부대를 200회 넘게 방문해 연설하며 격려하였다.

제주 4.3 사건의 핵심은 남로당의  지시로 북한과 연계되어 남한의 선거를 방해할 목적으로 빨지산이 군경을 기습한 것이다. 일부 좌익 좌파는 이후 반란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희생이 생긴 것만을 침소봉대해왔다.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서도 여러 증언과 문서로 일반인들이 대부분 모르고 있을 사항을 깊게 다룬다. 김구는 북한에 올라가서 문서에 서명하고 내려온 사실이 있고 이는 명백한 역적 행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국제적 정세흐름을 파악할 능력이 부족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건국을 방해했던 세력과 남한 공산화를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세력은 엄연히 존재했고 지금도 노골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좌익 좌파가 김구를 띄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 후반에 이 박사가 미국을 방문해 카퍼레이드 하는 장면은 매우 깊은 인상을 준다. 미국인들의 열렬한 환영를 받고 연설하는 영상도 감동적이다. 그 조그만 나라 대통령 방문에 대한 미국의 뜨거운 환대는 이 박사의 글로벌적 네트워크를 증명한다. 거의 일반인들에게 차단된 영상인 듯 싶다.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에 대한 정보의 왜곡과 역사의 조작은 정도가 너무 심하다.

 사정거리 제한이 풀리면서  8~9톤 탄두를  장착할 수 있도록 개발된 현무-5  탄도미사일은 전술핵 이상의 파괴력을 갖추고 있다. 힘에 의한 균형과 평화가 중요한 시점이다. 미국에 남한 자체 핵무장도 하겠다는 시그널을 보내며 핵우산을 확실히 제공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승만 대통령의 글로벌마인드, 예언력이 다시금 부각되는 시기다. 우리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 건국전쟁이 후손들에게 교육의 자료로 널리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깨어서 새롭게 확립된 세계관이 한국을 더 나은 미래로 인도할 것이다.

양지청 글로벌개발원 대표회장(글로벌경제산업연구원장,다빈치인터내셔널 학회/포럼 회장, 전 카이스트/서울대 교수, 경제학 박사,공학박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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