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2.03.18 00:05

김양팽 "해외서 무한경쟁하는 우리 기업 지원하기엔 너무 약해…미진한 부분 보완·강화 필요"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비메모리 분야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가 발표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라인에서 작업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라인에서 작업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경쟁'을 넘어 '전쟁'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반도체 시장이 민간 주도로 성장해 왔다면, 앞으로는 반도체 산업 패권을 쥐기 위한 각국 정부의 파격적 투자와 지원이 반도체 업계의 지형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 산업이란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면전이 벌어졌는데도 우리나라의 대응은 미적지근하다.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반도체 특별법)'이 힘겹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오는 8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반쪽짜리 법이란 평가가 적지 않다. 반도체 업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핵심 지원책들이 정치 논리에 밀려 삭제·축소된 탓이다.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된 상황을 고려, 5월 본격 출범을 앞둔 새 정부는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저런 눈치를 보다가 자칫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경쟁국들로부터 파격적인 도움을 받게 될 현지 기업들에게 밀려 향후 첨단제품 개발에서 주도권을 상실할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총성 없는 전쟁' 시작…미국·유럽, 반도체에 수십조 투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여기에는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면 2류 국가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미국 하원은 최근 자국 반도체 산업에 5년간 520억달러(약 62조원)를 투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미국경쟁법안'을 의결했다. 앞서 지난해 6월 미국 상원도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미국혁신경쟁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번에 미 하원을 통과한 미국경쟁법안은 상원으로 송부돼 미국혁신경쟁법안과의 협의 조정 과정을 거쳐 이르면 올해 1분기 중 통과될 전망이다. 

전미반도체협회(SIA)는 52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향후 10년간 미국 내 19개 생산시설이 세워지고, 국제 반도체 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기존 10%에서 최대 14%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질세라 유럽도 대대적인 반도체 경쟁력 확보 계획 마련에 나섰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EU반도체칩법'을 제정하고, 반도체 부문에 공공과 민간이 430억유로(약 59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현재 9% 수준인 유럽 내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오는 2030년 2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EU 집행위는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에 대응하고, 미국과 아시아에 대한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도 2015년부터 반도체 분야에 거금을 투입하고 있다.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1조위안(약 190조원) 규모의 국가펀드를 앞세워 관련 산업을 지원하는 중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라인 전경. (사진제공=SK하이닉스)<br>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라인 전경. (사진제공=SK하이닉스)

◆핵심 요구 대폭 삭제·축소…'맹탕' 반도체 특별법

반면 우리나라의 반도체 지원 정책은 경쟁국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는 8월 이른바 '반도체 특별법'이라 불리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이 시행되지만, 반도체 업계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해당 법은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지시하며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9개월을 표류한 끝에 겨우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그 과정에서 특정 산업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주장에 부딪혀 특별법 적용 범위를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백신까지 두서없이 늘렸다. 여러 산업의 입김이 들어간 탓에 정작 반도체 특별법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반도체 업계의 핵심 요구도 빠지거나 축소됐다.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려달라는 요구는 수도권에 투자가 쏠리면 지방이 소외된다는 이유로 논의에서 제외됐다. 시설 투자 비용의 세액을 최대 50%까지 공제해달라는 요구도 최종 법안에선 최대 16% 세액 공제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마저도 대기업은 6%에 불과하다. 주 52시간제 탄력 적용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이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인 국가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박사는 "반도체 특별법이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으로 성격을 바꾸면서 반도체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이 줄어든 게 가장 큰 문제"라며 "해외에서 무한 경쟁하는 우리 기업을 지원하기엔 지금의 특별법은 너무 약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각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언제까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며 "미진한 부분을 보완·강화하거나, 차라리 새로운 반도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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