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2.03.07 00:05

김태기 교수 "노조에 힘 실어주지 않고 근로자 위한 노동정책 강화해야"

지난해 노조의 부분파업으로 멈춰선 르노삼성 부산공장 (사진제공=르노삼성자동차)
노조 파업으로 멈춰선 한 완성차 업체 생산공장. (사진=뉴스웍스 DB)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선진국에서 노사 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같이 보러 갔으면 좋겠다."

손경식 한국경영차총협회 회장은 지난 2월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너무 노조 편향적"이라며 이같이 제안했다. 현재 대한민국 노사관계가 노조에 지나치게 편향됐다는 경영계 의견을 대변한 말이다. 노동자의 단결권은 보장받고 있는데 비해 그 대척점에 서있는 사용자의 대항권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대항할 방법이 없다보니 국내 기업들은 노조 파업에 속수무책이다. 강성노조로 유명한 일부 업계에서 '습관성 파업'이 계속 발생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사용자와 붙으면 결국 이기는 싸움을 마다할 노조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기형적 노사 관계는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더 나아가 나라 전체의 활력을 좀먹는 폐단으로 자리 잡았다.

(자료제공=한국경제연구원)
할 (자료제공=한국경제연구원)

◆미국·영국·일본, 대체근로 금지 규정 없어 

강성노조로 유명한 완성차 업계의 노조 파업은 연례행사에 가깝다. 매년 임단협이 시작되면 으레 파업 카드를 꺼내 든다. 오죽하면 '습관성 파업'이란 비아냥도 나올까.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망해야 정신 차릴 것"이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파업이 잦은 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2009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과 G5 국가들의 파업으로 인한 연평균 근로 손실 일수를 비교한 결과, 한국의 근로 손실 일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임금 근로자 1000명당 파업으로 인한 근로 손실 일수는 38.7일로, G5 국가 중 근로 손실 일수가 가장 적은 일본(0.2일)의 193.5배에 달했다. 미국(7.2일), 독일(6.7일), 영국(18.0일)은 물론, 근로 손실 일수가 많은 편인 프랑스(35.6일)도 뛰어넘는다. 아울러 지난 2017년 이후 최근 5년간 언론에 보도된 파업 사례에 따른 생산 손실 피해액은 4조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잦은 파업의 배경엔 쟁의 활동에 지나치게 유리한 것으로 판단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이를 무기로 삼는 강성 노조가 있다. 

대표적으로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여부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우리나라는 노조가 파업할 경우 회사가 다른 근로자를 고용해 생산을 이어가는 대체근로를 전면 금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대체근로를 전면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은 대체근로를 금지하는 규정 자체가 없다. 

사업장 내 쟁의행위가 명확히 금지되지 않은 점도 사용자를 역차별하는 독소 조항으로 손꼽힌다. 현행 노조법은 쟁의행위가 금지되는 시설을 '생산 기타 주요 업무에 관련된 시설'로 한정하고 있지만, '주요 업무시설'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 실질적으로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묵인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반해 미국·독일·프랑스·영국 등은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6일 전면파업에 돌입한 현대중공업 노조. (사진제공=현대중공업 노조)
지난해 전면파업에 돌입한 현대중공업 노조. (사진제공=현대중공업 노조)

◆현대차, 노조 반대로 '온라인 판매' 제대로 못해 

'노조 리스크'는 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노조 눈치를 보느라 기업의 주요 경영 방향이 어그러지는 경우도 생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노조 반대로 국내에서 차량 온라인 판매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판매가 늘면 오프라인 판매가 줄어 일자리가 불안정해진다는 판매직 노조 반발 때문이다. 특정 차종의 생산량을 조정할 때도 노조 허락을 받아야 한다. 지난해 노조는 미국에 8조4000억원 규모로 투자하겠다는 회사측 계획에 반대하고, 대신 국내 공장에 집중 투자하라는 요구까지 했다. 

노조 문제는 단순히 기업만의 골칫거리를 넘어섰다. 강성노조와 이로 인해 초래된 경직된 고용 환경이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경직적 고용 규제와 강성노조의 과도한 요구로 대기업·정규직이 높은 임금과 고용 안정을 누리면서 청년층은 노동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 영향으로 한 번 채용하면 사실상 구조 조정이 불가능하고, 실적과 무관하게 연봉을 올려줘야 하기에 청년층에 돌아갈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귀족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는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이 상당 부분 공감을 받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가 노동 정책의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처럼 결과적으로 노조의 힘을 키우는 방향의 노동 정책은 부작용만 초래할 뿐, 실제 노동자 권익 신장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단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은 "노사 힘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사업주만 챙기자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르자는 의미다. 글로벌 기준에 맞춰야 한다"며 "지금은 노조의 힘이 너무 과잉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차기 정부는 노동 정책이 지켜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유념해야 한다. 노동 기본권의 주체는 근로자에 있다. 노조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닌, 실제 근로자를 위한 노동정책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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