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2.21 15:18
건설현장에서 노조원들이 불법외국인 근로자 색출을 명분으로 입구에서 신분증을 검사하면서 공사를 방해하고 있다. (사진제공=국토교통부) 
건설현장에서 노조원들이 불법외국인 근로자 색출을 명분으로 입구에서 신분증을 검사하면서 공사를 방해하고 있다. (사진제공=국토교통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문초등학교는 명지국제신도시 조성으로 초래된 과밀 학급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3월 1일 개교할 예정이었다. 2021년 9월 착공돼 지난 1월 29일 준공될 예정이었으나 공사가 늦어져 오는 5월에야 문을 연다. 이로 인해 1학년 신입생 239명은 3월부터 주변 아파트 단지들로부터 최대 2.7㎞ 떨어진 옛 명지초교 건물에서 공부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집에서 뻔히 걸어 다닐 거리에 있는 초교 신설이 늦어지면서 통학버스를 타고 다니게 된 것이다. 인근 학교에서 전학 오기로 결정된 2~6학년 재학생들은 학기 중간에 학교를 옮겨야 한다.   

부산시교육청은 "작년 레미콘 운송노조와 화물연대 파업 등으로 공사에 차질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5~6월과 11~12월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와 레미콘 운송노조 파업으로 시멘트·건설 자재가 제때 투입되지 못해 60여일간 공사가 중단됐다. 작년 5월에는 레미콘 운송 노조 파업으로 18일, 6월 화물연대 1차 파업으로 22일, 11~12월 화물연대 2차 파업으로 21일간 각각 골조 공사 등 현장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공립초등학교의 개교가 노조의 파업으로 연기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지난달 현장을 방문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사 지연과 관련해 '무법지대 조폭', '집단이기주의'라고 충분히 비난할 만한 상황이다. 원 장관은 "한탄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건설 현장에 만연해 있는 불법들을 바로 잡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는 성명을 통해 "공사 현장의 지연은 절대적인 시간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명문초교만이 공기가 짧게 설정되었을 턱은 없다. 더 많은 수입을 얻고자 하는 노조의 집단행동으로 아무 죄 없는 명문초교생의 교육권이 침해된 셈이다. 

이처럼 관급공사조차 노조에 휘둘리는 판국에 적기 준공이 더욱 중요한 민간건설현장은 노조에 사실상 점령당한 상태다. 건설사가 급여 외에 지급하는 웃돈을 말하는 소위 '월례비'를 주지 않으면 노조원들은 안전규정을 100% 지킨다면서 고의로 작업을 늦추기 일쑤다. 공기가 지연될수록 애가 타는 시행사 등을 압박하는 것이다. 불법외국인을 색출한다는 명분을 들이대며 현장 입구를 막은 채 출입근로자에 대한 신분증 검사를 하며 공사를 방해하기도 한다. 노조별로 자기 노조원을 쓰라고 생떼를 부리고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사무실 집기를 부수는 등 집단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노조의 불법행위와 뒷돈 갈취 속에 건축물이 세워지다보니 공사는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피해는 국민이 뒤집어 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법무부, 고용노동부, 경찰청 등과 함께 마련한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보고했다. 국토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례비의 심각성이 한 눈에 드러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 438명이 총 243억원을 받았다. 이체금액이나 계좌명의 등의 정보가 있는 것으로 한정된 수치다. 

타워크레인 자격증 보유자는 2만여명에 달하지만 가입비 4000만원을 낸 노조원만이 타워크레인 조종을 맡으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고 있다는 점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노조가 채용장사를 하는 것은 '이권 카르텔'의 전형이다. 이로 인해 '자릿세'를 내지 못한 비노조원은 어렵게 딴 면허를 활용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권리금을 낸 사람만이 일을 할 수 있다는 노조의 삐뚤어진 인식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월례비가 임금의 일부라고 강조하지만 그렇다면 그만큼 임금을 올려서 받고 그에 따른 세금을 내는 것이 올바르다. 1인당 평균 월례비는 평균 5560만원 수준으로 한 달로 나누면 월 463만원에 달한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임금을 훌쩍 뛰어넘는다. 게다가 '뒷돈'이다. 상위 20%에 해당하는 88명의 수취액은 평균 9500만원이다. 한 사람이 1년 간 총 2억2000만원(월 평균 1700만원)을 받은 사례도 적발됐다.

흰색 안전모를 쓴 현장근로자들이 작업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노조가 막고 있다. (사진제공=국토부)
흰색 안전모를 쓴 현장근로자들이 작업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노조가 막고 있다. (사진제공=국토부)

정부는 불법행위라고 강조하지만 법원의 판단이 다르다는 것은 큰 문제다. 광주고법은 최근 철근콘크리트회사인 D사가 타워크레인 기사 16명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D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철근콘트리트업체의 월례비 지급은 수십 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 성격을 가지게 됐다"고 판시했다. 기사들은 업계 관행이라는 이유로 타워크레인회사로부터 받는 돈 외에 시간외수당과 월례비로 300만원씩을 D사에 요구했다. 결국 D사는 6억5400만원을 주었다. 이후 부당이득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냈다가 2심에서 패소한 것이다.

정부가 건설현장에 만연된 불법·부당행위를 뿌리 뽑기 위해 신속한 제재와 처벌이 이뤄지도록 행정력을 집중하기로 한 것은 뒤늦었지만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다. 채용 강요나 협박 등에 의한 노조 전임비, 월례비 등을 챙기는 사람에게 형법의 강요·협박·공갈죄를 적용한다. 기계장비로 공사현장을 검거할 경우 형법의 업무방해죄를, 위법한 쟁의 행위를 벌이면 노동조합법을 적용, 즉시 처벌에 나선다는 것이다.

앞으로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월례비 등 부당금품을 받으면 면허 정지를 내린다. 최대 1년을 검토 중이다. 국가기술자격법의 성실·품위 의무 규정을 위반하고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현장에서 장기간 일할 수 없도록 극약처방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불법행위 최초 신고자에게는 신고포상금도 제공할 예정이다. 신고활성화를 유도하는 방안이다.

향후 건설기계관리법을 개정, 월례비 강요 또는 기계장비·공사 점거 등의 행위에 대해 사업자 등록 또는 면허 취소 등 제재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건설노조에 부당하게 금품을 제공한 사업자를 면허취소 등으로 강력히 제재한다. '뒷돈'을 준 자와 받은 자 모두를 '쌍벌죄'로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부당금품 수수에 대한 처벌근거를 명확히 한다면 사법부의 '엇박자' 판결도 더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노조가 사업주의 약점이나 잘못을 빌미삼아 겁박하는 사례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도록 각종 안전규정을 산업재해 예방이란 도입 취지에 맞게 합리적으로 정비한다는 조치도 주목된다. 이를 위해 국토부와 고용부는 태스크 포스를 구성,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외국인 불법채용에 대한 처벌수준을 낮춘다는 방침도 눈에 띈다. 현재 건설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불법으로 쓰면 사업주는 외국인 고용제한 1~3년 처분을 받는다. 이 기간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사업주 전체 사업장에 적용되는 고용제한 조치도 사업장 단위로 적용할 방침이다. 고용제한 처분의 악용 소지를 줄이고 현장의 원활한 인력 수급을 위해 처분기간을 단축하는 것은 건설현장의 현실을 고려한 방안이다. 완장을 찬 노조의 행패를 줄일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노조의 보복을 우려, 피해 신고를 꺼린다면 가해자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사용자 스스로 불법행위를 예방하고 근절에 앞장서야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원도급사가 소관 현장 내 하도급사가 노조로부터 받은 피해에 대해 직접 형사 고소와 민사 손해배상 청구에 나설 경우 시공능력 평가 등에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불법행위 예방과 근절을 위한 관리책임을 부여한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원도급사와 감리자에게 불법행위 신고 의무를 부여한다는 대책도 효과가 기대된다. 원도급사가 직접 계약하는  건설기계는 표준시방서 등을 통해 엄격한 관리책임을 묻기로 한 것도 적절한 조치다.

불법하도급으로부터 건설근로자를 보호하는 방안을 강화하기로 한 결정도 바람직하다. 정부는 불법하도급 의심현장에 대해 상시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조기경보 알람 시스템의 선별 기준·요건을 개선해 적발률과 행정처분률을 높이기로 했다. 공사대금 연체로 인한 임금 체불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달처의 대금지급 시스템도 개선한다. 지급기일 내 노무비 등이 지연 지급되면 지급기일이 오기 전에 대금지급 담당자에게 자동통보, 기한 내 지급이 이뤄지도록 조치한다는 것이다.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해 화장실을 남성근로자 30명당 1개, 여성 근로자 20명당 1개 이상을 설치하도록 하는 규정도 건설근로자법 시행규칙 개선안에 반영한 상태다. 3월 13일 입법예고를 거쳐 시행한다.

노조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집기를 넘어뜨리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국토부)
노조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집기를 넘어뜨리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국토부)

건설현장은 자칫 방심하거나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치외법권 지대는 결코 아니다. 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선 반드시 처벌이 뒤따라야만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다. 노조의 부당행위를 엄중 처벌하는 것처럼 불법으로 하도급을 주거나 임금 지급을 미루는 건설사업자도 똑같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노조의 '준법투쟁'은 제도의 허점이나 구멍 등을 미끼로 삼는다. 건설현장에서 더이상 먹혀들지 않도록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와 규정을 원점에서 들여다보고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부는 이번 대책의 효과와 파장을 주도면밀하게 점검하면서 추가조치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제2, 제3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비리와 폐해가 쌓인 곳이다. 정상화하는 작업은 어려울 것이고 노조의 반발도 거셀 것이다. 건설현장부터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윤석열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노동개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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