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3.21 16:38
경기도 용인시가 폭염을 대비해 도심 도로에서 살수차를 운행하는 모습. (사진제공=용인시)
경기도 용인시가 폭염을 대비해 도심 도로에서 살수차를 운행하는 모습. (사진제공=용인시)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기후변화와 관련된 전 지구적 위험을 평가하고 국제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기상기구와 유엔환경계획이 공동으로 설립한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섭씨 1.1도 올랐으며 1.5도를 향해 상승하는 단계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상승 임계점인 1.5도를 넘어서면 되돌릴 수 없는 '파멸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지 오래 됐다. 앞으로 2도 이상 오르면 파국적 위기국면을 맞는다는 것이 환경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2015년 194개국이 파리협정에 서명하고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는데 노력하기로 약속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섭씨 1.5도라는 임계점을 지킨다면 지속가능한 생존을 추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모든 생물종의 생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현실화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이를 야기한 기후변화의 주범은 온실가스이다. 대기를 구성하는 여러 기체 가운데 적외선 복사열을 흡수하거나 재방출해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가스를 말한다. 6대 온실가스로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항이 손꼽힌다. 이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기체가 화석에너지 연소로 주로 생기는 이산화탄소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극지방 빙하 보존과 관련성이 높다. 온도 상승으로 빙하가 녹아 줄어들면 햇빛이 빙하에 반사돼 대기권 밖으로 튕겨나가는 것이 감소되면서 지구에 더 많이 흡수된다. 이로 인해 해수 온도가 오르고 해수면도 상승하면서 저지대와 해안지역 침수 범위가 넓어진다.

경북 영양군이 폭염 등으로 고추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인들에게 고추수확 편의장비를 지원해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제공=영양군)
경북 영양군이 폭염 등으로 고추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인들에게 고추수확 편의장비를 지원해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제공=영양군)

기후변동 폭이 더 커지면 폭염과 한파, 가뭄의 빈도가 빈번해지고 위력도 강해질 것이다. 이로 인해 작황이 나빠지면 식량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만약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까지 녹는다면 묻혀 있는 메탄가스와 바이러스 등이 대기로 나오면서 온실가스 효과를 부채질하고 신종 감염병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장기적으로 인류가 생존할 만한 지역 감소로 이어지면서 이를 둘러싼 분쟁도 커질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의 평균기온은 1.8도 상승했다. 산업화 활동이 본격화된 지난 30년간 1.1도 가량 올랐다. 이런 현실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넘어 산림, 갯벌 등을 통해 흡수하거나 각종 기술로 제거해 실질적인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탄소중립에 노력해야 함은 당연하다. 후손을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상당하는 숲을 조성하고 태양열·태양광·풍력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면서 관련 송·배전망을 확충하는 것도 기성세대의 의무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계획을 처음 밝혔다. 같은 해 12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한뒤 같은 달 국무회의에서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과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 정부안'을 확정했다. 문 정부는 2021년 10월 '2030 국가온실감축 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NDC)'를 2018년 대비 40%로 수정하면서 탄소중립 시간표를 앞당긴 바 있다. 

2050년 탄소중립이란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한 절차와 정책수단을 규정한 탄소중립기본법이 2021년 9월 제정된뒤 2022년 3월부터 시행되면서 한국은 2050 탄소중립 비전을 법률로 명시한 14번째 국가가 된 바 있다. 지난해 정권교체이후 구체적인 실행방안 마련을 놓고 논의가 분분했다.

이 법에 따라 최초로 법정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작년 8월부터 에너지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등 전문가 72명으로 구성된 기술작업반의 총 80여회에 걸친 회의와 연구·분석안 등을 토대로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이행 방안이 담긴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023∼2042년)' 정부안을 21일 내놓았다.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 이행 방향, 녹색성장 추진 의지를 담은 청사진이자 로드맵이라 할 수 있다.

(표제공=녹색성장위)
(표제공=녹색성장위)

녹색성장위는 2018년 배출된 727.6백만톤의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436.6백만톤으로 40% 줄인다는 당초 목표를 유지했다. 일부 선진국의 소극적인 태도와 비교할 때 한국이 지나치게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했다며 하향을 요구하는 경제계의 요구가 적지 않았지만 전임 정부 목표를 바꾸지 않았다.

이처럼 총량 목표는 지키면서 부문별 감축 비중을 조정한 것이 이번 기본계획안의 핵심이다. 무엇보다 산업 부문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률을 기존 14.5%에서 11.4%로 3.1% 포인트 낮춘 것이 주목된다. 원료수급과 기술 전망 등을 고려했을 때 기존 목표 달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기업들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철강, 석유화학, 정유 등 에너지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제조업의 현주소를 감안한 결정이기도 하다. 산업계에선 온실가스를 810만톤 더 배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너무 과도하다는 요구가 상당부분 받아들여진 만큼 기업들의 항후 책무도 커진 셈이다.

기존 탄소집약적인 산업구조를 저탄소 전환 체제로 유도한다는 정부 방침도 눈에 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 효율이 우수한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배출권 배당방식을 말하는 '배출권거래제 배출효율기준 할당' 비중 성과지표를 2030년 75%로 높이기로 했다. 기존 NDC 목표보다 10%p 상승한 것이다.

정부는 저탄소 전환 부담이 큰 부문을 중심으로 실효성이 높은 세제 지원 방안 마련에 나서 기업의 환경경영을 도울 필요성이 높다. 이를 위해 이산화탄소 저감기술 등을 연구개발(R&D) 세제혜택이 제공되는 '신성장 원천기술'로 지정하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전략안 (그림제공=녹색성장위)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전략안 (그림제공=녹색성장위)

산업계의 감축 목표가 줄어들면서 발전업계의 부담은 커졌다. 에너지 전환 부문의 2018년 대비 2030년 감축률 목표는 44.4%에서 45.9%로 1.5%p 높아졌다. 향후 7년내 전환 부문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0만톤 더 줄여야 한다. 정부는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를 통해 공급과 수요를 관리할 방침이다. 원전의 발전비중은 종전 27.4%에서 32.4%로 2.4%p 높아졌고 신재생에너지 비중도 7.5%에서 '21.6%+α' 이상으로 상향됐다.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활용한 탄소 감축 목표는 기존 1030만톤에서 1120만톤으로 늘어났다. 국내 탄소저장소 확대를 통해 온실가스 흡수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이 반영됐다. 수소 부문도 블루수소 증가로 배출량이 760만톤에서 840만톤으로 늘어났다. 개발도상국 등에 탄소감축 지원을 통해 감축량을 인정받는 국제 감축목표도 기존 3350만톤에서 3750만톤으로 상향됐다.

정부는 신축 공공건물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 확대, 무공해차 중심 수송체계 구축, 자원효율등급제 지원, 수소경제 생태계 구축, 숲가꾸기 면적 확대, 갯벌 복원 등을 통해 산업의 친환경화를 지원하고 이산화탄소 흡수원도 확장할 방침이다. 민간부문이 이끌어가는 혁신적인 탄소중립이 차질없이 단계적으로 추진되도록 정부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개선방안을 내놓는데 주력해야할 것이다.

(사진제공=환경부)
(사진제공=환경부)

정부는 총 82개의 정책과제가 효과적으로 추진돼 성과를 낼 수 있도록 2027년까지 약 89조9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중에서 탄소중립 산업 핵심기술 개발, 제로에너지·그린리모델링, 전기차·수소차 차량 보조금 지원 등 온실가스 감축 사업 예산으로 5년간 54조6000억원이 들어간다. 기후적응 분야에는 19조4000억원, 녹색산업 성장에는 6조5000억원이 투입된다. 기본계획 정부안은 오는 22일 공청회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등 보완을 거쳐 이르면 4월초 최종안이 발표될 전망이다.

정부가 이날 내놓은 목표도 달성하기 쉽지 않는 현실에서 환경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더욱 강력한 대처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19일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총회를 갖고 'IPCC 제6차 평가 보고서(AR6) 종합보고서'를 채택했다. IPCC는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로 2040년 지구의 지표온도가 산업혁명시대 이전보다 평균 1.5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불과 17년뒤 임계점에 도달한다는 발표가 충격적이다.

더구나 온실가스감축 정책이 강화되지 않는다면 2100년에는 3.2도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IPCC는 "인류 역사상 2010년과 2019년 사이의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전 어떤 10년간보다 높았다"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3%, 2035년까지 60% 감축해 이번 세기 중반까지 넷제로(net-zero)를 달성, 1.5도라는 기후임계점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폭염과 가뭄이 빈발하고 위력도 더 커지고 있다. 남부지역의 가뭄은 수년째 발생 중이다.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기후변화는 사뭇 위협적이다. 국민과 기업 모두 함께 넷제로를 위한 실천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저히 줄이고 자연을 보전하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은 전면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화석연료의 보다 신속한 단계적 퇴출이 총체적인 기후 위험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세계자연기금의 충고가 귓전에 맴돈다. 

이런 측면에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은 당위성과 대의명분을 충분히 갖고 있다. 정치권도 진영과 이념을 떠나 기후위기대응에 대한 각 당의 해법을 내년 총선 공약으로 내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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