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5.12 17:09
한국의 에너지 효율 수준은 모든 분야에서 평균 미만인 것으로 여겨진다. (인포그래팩=서정석 김·장 법률사무소 위원 발제문 갭처)
한국의 에너지 효율 수준은 모든 분야에서 평균 미만인 것으로 여겨진다. (인포그래팩=서정석 김·장 법률사무소 위원 발제문 갭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한국은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캐나다,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8번째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 국가이다. 석유, 화학, 철강 등 제조업 비중이 높은데도 소비효율은 낮아 통상 국내총생산(GDP) 1000달러를 생산하는데 소비한 에너지량(석유환산톤:TOE)을 의미하는 에너지원단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불명예를 기록 중이다.

한국의 에너지소비 현황. (표=신철 한국전력 수요전략처 효율화사업실장 토론문 캡처) 
한국의 에너지소비 현황. (표=신철 한국전력 수요전략처 효율화사업실장 토론문 캡처) 

2020년 기준 한국의 에너지원단위는 0.1257(TOE/달러)로 덴마크(0.0472), 영국(0.0546), 프랑스(0.0764)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이 한전경영연구원의 분석이다. 

에너지를 아껴쓰는 노력도 부진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0년 대비 2019년 한국의 에너지원단위 개선율 순위는 33위(-1.4%)로 12위를 차지한 일본(-2.1%)이나 13위를 기록한 독일(-2.2%)에 크게 뒤졌다. 일본이나 독일은 2000년이후 경제성장에 따라 에너지 소비가 줄어드는데 반해 한국은 함께 증가하고 있다. 경쟁국에 비해 에너지 자립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국가인데도 에너지 절감이나 효율성 제고 노력은 시원치 않다.

한국은 일본이나 독일과는 달리 경제성장과 함께 에너지가 함께 늘어나고 있다. (그래프=신철 한전 수요전략처 효율화사업실장 토론문 캡처)
한국은 일본이나 독일과는 달리 경제성장과 함께 에너지가 함께 늘어나고 있다. (그래프=신철 한전 수요전략처 효율화사업실장 토론문 캡처)

오래돼 낡았거나 낮은 생산성으로 사용 중인 에너지 시설의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이 국가적으로 진행되면 경제성장률에 정비례해서 발전소를 더 짓거나 송배전 시설을 추가 구축하지 않아도 된다. 에너지 전문가들이 에너지효율을 '첫 번째 연료'(First Fuel)라고 정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용선(왼쪽 다섯 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양이원영(맨오른쪽) 민주당 의원이 12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에너지효율향상 방안 토론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용선 의원실) 
이용선(왼쪽 다섯 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양이원영(맨오른쪽) 민주당 의원이 12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에너지효율향상 방안 토론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용선 의원실) 

이같은 상황에서 국회 기후위기그린뉴딜연구회는 12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안보를 위한 에너지효율향상 방안 토론회'를 가졌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정부는 에너지효율 향상을 위해 2018년 에너지공기업을 대상으로 에너지효율향상의무화제도(EERS: Energy Efficiency Resource Standards)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2020년 본 사업 전환을 계획했으나 이행목표 산정 및 투자비용 회수, 성과도출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아직까지 시범사업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이용선 민주당 의원이 12일 에너지효율향상 방안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용선 의원실) 
이용선 민주당 의원이 12일 에너지효율향상 방안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용선 의원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이용선 민주당 의원은 "한국은 2020년 세계 연간 탄소배출량 10위 국가로 기후위기에 큰 책임을 갖고 있다"며 "해외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 에너지효율향상 의무화의 효용성이 더욱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EERS는 에너지공급자에게 판매량에 비례하는 절감목표를 부여하고 효율 향상을 통해 이를 달성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이다. 대체로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유도하는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먼저 시행한 국가는 미국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은 1999년 텍사스주에서 처음 도입한뒤 2022년 현재 27개주에서 시행 중이다. 텍사스주는 의무대상자를 전력회사 등 에너지공급사로 규정하고 주거용과 상업용 전력을 대상으로 실시 중이다. 연간 판매량의 0.1% 수준을 절감목표로 부여한다. 목표량의 85~99%를 달성하면 순이익의 9%를 보상한다. 만약 절감목표량을 초과이행하면 추가 2%마다 순편익의 1%를 배분한다. 상한선은 편익의 10%이다. 반면 목표의 65%에 미달되면 전기는 5센트, 가스는 45센트의 페널티를 부과한다.

미국 EERS 운영 흐름도 (그림=박지용 에너지경제연구원 집단에너지연구팀 연구위원 토론문 캡처)
미국 EERS 운영 흐름도 (그림=박지용 에너지경제연구원 집단에너지연구팀 연구위원 토론문 캡처)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소비자가 내는 에너지요금에 전가된다. 다른 주는 공공기금이나 에너지요금에서 충당한다. 유럽에선 2001년 영국이 가장 먼저 도입했다. 작년 현재 16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설정한 에너지효율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효율의무제도를 운영한다. 이 비용 역시 에너지요금에서 걷는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현철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효율과장은 '국내 EERS 시범사업 현황 및 법제화 동향' 토론자료를 통해 "미국에서 EERS를 시행하는 27개주의 평균 판매량 대비 에너지절감량비율은 1.07%로 미시행 중인 24개주의 0.29%보다 3배 이상 높았다"며 국내 시행 필요성을 강조했다. EERS의 장점으로 ▲에너지 안보 기여 ▲환경적·공공적 건강 혜택 ▲녹색 일자리 창출 ▲에너지공급설비 확충 지연 ▲온실가스 감축 ▲화석연료 의존 축소 등을 손꼽았다.  

국내 EERS는 2018년 한국전력이 처음 12개 시범사업을 실시한뒤 2019년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추가되는데 그쳤다. 작년 3개사의 시범사업은 총 40개로 양적성장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시범사업에 참여 중인 발전공기업의 올해 절감목표는 최대 0.2% 규모이지만 해외 주요국의 연간 절감목표는 최대 2.7% 수준에 달한다. 한마디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물론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에너지공기업들이 효율 제고용 투자비를 자체 예산으로 집행하는 현실에서 어쩔수 없다는 반론도 타당성을 갖는다. 

가장 문제는 EERS의 특성상 의무공급자의 투자금이나 전기나 가스를 아낀 소비자에게 지급되는 인센티브 재원이 소비자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대개 민간기업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은 국가공기업이 사실상 독과점한다. 더구나 한국전력공사가 신청한 전기요금 개정안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한뒤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요금조정 인가결과를 한전에 통보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결단'이 내려지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국가에서 운영하는 EERS를 전면 도입하기 어려웠던 여러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양이원영(왼쪽 앞줄 두 번째)민주당 위원과 이용선(네 번째)민주당 의원이 12일 '에너지효율향상 방안 토론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용선 의원실)
양이원영(왼쪽 앞줄 두 번째)민주당 위원과 이용선(네 번째)민주당 의원이 12일 '에너지효율향상 방안 토론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용선 의원실)

그렇다고 EERS의 본사업 전환을 마냥 늦출 수만은 없다. 미국과 유럽에서 EERS가 자리 잡은 데에는 에너지효율 향상이 투입한 비용보다 효과가 컸다는 점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제에너지기구는 에너지효율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가 무려 42%에 달한다고 밝혔다"며 "이를 위해 EERS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기후변화 대응과 국가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제정, 시행 중이다. 이에 앞서 유럽연합은 2021년 7월 유럽외 지역에서 수입되는 제품 중에서 역내 생산제품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제품에 대해 2026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부과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핏 포 55’(Fit for 55)를 발표했다. 역내 기업에 탄소세를 부과 중인 EU는 동일한 탄소 배출에도 비용을 내지 않는 역외 기업들로부터 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박지용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EERS의 에너지효율 프로그램은 실질적으로 소비자가 부담하는 재원으로 운영되므로 효율적으로 투명하게 운용되기 위해서는 정책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관련 목표로 ▲환경편익(에너지절감) 극대화 ▲비용-효과성(경제적 효과) 극대화 ▲소비자 계층간 형평성 ▲시장전환 등을 제시했다. 박 연구위원은 "EERS의 효율성과 효과성, 지속가능성을 위해 운영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검증 후 홍보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야만 에너지요금에 부과하거나 관련 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 에너지공기업이 부담하는 EERS 비용을 보전해주는 방안 마련이 마냥 늦어진다면 에너지절약시설 설치도 활성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독일은 2030년까지 최종에너지소비량을 26.5%. 1차 에너지소비량을 39.3% 줄인다는 내용의 에너지효율법을 최근 발표한 바 있다. 한국도 더 늦기 전에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국가적인 과제이다.

공급자의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정량적인 중장기 목표 설정 ▲공급자의 판매수익 감소와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인센티브 비용 보전 방안 강구 ▲평가와 측정, 검증 수단 정교화 ▲투자비 보전 ▲목표 미달시 과징금 부과 등의 내용이 담긴 법제화 작업을 검토할 때다. 정부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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