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5.18 17:01
(표제공=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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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최승욱 기자] 70대 기초생활수급자 남성 A씨와 월세 100만원 짜리 빌라에 살던 60대 여성. 나이와 성별, 자산 규모에선 모두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고독사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고독사는 가족이나 친척, 직장이나 종교시설, 이웃 등과의 교류가 끊긴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주택이나 아파트 등 주거지에서 자살, 병사, 사고사로 인해 동거인의 보살핌이 없는 상태로 홀로 숨지는 것으로 정의된다. 주변에서 사망했는지 자체를 모르는 만큼 시신이 부패될 정도로 상당 기간 방치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백골 상태까지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림제공=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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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형제·자매의 신고로 발견된 사례가 전체의 22.4%로 가장 많았다. 임대인이 21.9%를 뒤를 이었다. 직계혈족의 비중은 8.5%에 그쳤다. 배우자 또는 자식이 없거나 이들과 연락이 아예 단절된 상태로 1인 가구로 지냈던 영향이 반영된 수치로 해석된다.

고독사는 혼자 임종을 맞게 된 과정 자체가 허망하지만 사망 이후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짓밟힌다는 점에서 비극이다. 국가는 국민의 존엄한 죽음을 보장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갖는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7년에 2412명 발생했던 고독사는 2021년 3378건으로 4년 만에 40% 늘어났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8.8%에 달한다. 생전 사회적 고립이 장기화되면서 사망으로 이어지는 고독사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됐다.

(그래프제공=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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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특정 성별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2년 4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최근 5년간 고독사 실태를 조사,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이 무려 84.2%에 달했다. 여성보다 5.3배 이상 많았다. 연령별로는 50~60대가 58.5%를 차지했다. 여성에 비해 가사노동에 익숙하지 못한데다 실직, 이혼, 사별 등의 충격으로 삶의 만족도가 추락하면서 쓸쓸한 죽음을 맞은 것으로 풀이된다. 고독사에 가장 취약한 집단은 50대 남성(27%)과 60대 남성(25.8%)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표제공=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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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부모 부양의 필요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갈수록 떨어지는데다 가족 구조도 1인 가구 중심으로 바뀌면서 가족이 서로 챙긴다는 전통적인 돌봄기능도 와해되는 실정이다. 개인주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도움을 구하거나 의존할 지인을 찾기도 힘들어지고 있다. 사회 구성원 간의 고립 심화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사회구조 변화로 고독사가 이처럼 늘어나는데도 예방이나 관리체계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229개 시·군·구에서 고독사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은 총 251명에 불과헸다. 전임자는 70명에 그쳤고 타 업무 겸임자는 181명이었다. 인원 자체가 절대 부족한데다 고독사 업무 담당 부서도 불명확해 전문성을 높이거나 다른 서비스 담당자와의 협업도 미흡하다. 

지자체의 대응도 허술하다. 전체 고독사 중 자살 비중이 17.3%이고 이 중 20대 비중이 56.6%에 달하지만 현재 '고독사 예방 조례'를 시행 중인 198개 시·군·구 가운데 고독사 범위를 '50세이상'으로 제한하는 곳이 75개나 된다. 정작 모법인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연령 제한이 없다.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고독사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자 보건복지부는 2021년 전체 사망자 100명당 1.06명을 기록했던 고독사 수를 2027년까지 0.85명으로 20% 줄인다는 것을 목표로 내걸은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년~2027년)'을 18일 내놓았다. 무작위로 추출한 1인 가구 9471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조사를 실시, 위험군 2023명을 선별한뒤 위기요인을 파악한 결과 전체 고독사 위험군 수는 약 152만5000명으로 추정됐다. 전체 인구의 3%, 1인 가구의 21.3%에 해당된다. 청년의 위기요인은 정서불안이나 경제적 문제인데 비해 중장년은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관계 문제, 노인은 건강문제로 생애주기별로 차이가 적지 않다.

복지부가 1차 기본계획의 비전으로 삼은 '사회적 고립 걱정 없는 촘촘한 연결사회'는 타당성을 갖는다. 한국보다 앞서 정부 대책을 마련, 추진 중인 영국과 일본은 고립과 단절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구조적 문제로 규정했다. 정확한 실태 파악을 기반으로 지역내 공동체 공간을 만들거나 민관협력을 통해 사회관계망을 형성하는 등 위험군 후보의 연결성을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고독사 대책을 발표한 영국(2018년, 외로움 대비 범정부 전략)과 일본(2021년, 고독·고립 대책의 중점계획)의 노력은 일부 성과를 보이고 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한 응답률'을 의미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회관계망 지표 조사 결과 지난해 영국과 일본은 각각 93%(22위), 89%(29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OECD 평균(91%)보다 낮은 80%(38위)에 그쳤다.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가장 시급한 작업은 고독사 위험이 큰 사람을 빨리 찾아내고 위험정도를 판단하는 것이다.이를 위해 공동주택 입주자대표회의, 노인회, 이·통·반장 등 지역주민과 부동산중개업소, 식당 등 지역밀착형 상점을 '고독사 예방 게이트키퍼'로 양성한다는 대책이 주목된다. 위기 징후를 보인 고독사 위험자가 전문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은 물론 평소 관심을 갖고 대화까지 나눌 지역사회 지킴이의 활약이 중요하다. 사기 진작을 위해 실적이 우수한 게이트키퍼를 포상해야 한다.

복지부는 다세대 주택이나 고시원이 몰려 있는 곳이나 영구임대아파트 밀집지역 등을 대상으로 시·군·구별 조사를 통해 고독사 위험자를 찾아내는 작업도 병행한다. 알코올 사용에 의한 정신 및 행동장애 등 고독사 관련 위기정보와 생애주기, 지역 특성을 감안한 위험군 발굴 모형 개발에도 나선다. 고독사 위험군의 위험 정도와 필요한 서비스를 판단하는 점검표는 물론 생애주기별로 1인 가구가 스스로에게 적용할 수 있는 '사회적 고립 및 고독사 위기 자기진단 체크리스트'도 만든다. 개인의 자유와 평온한 사생활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1인 가구에게 자신의 상태를 자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고독사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적 고립 1인 가구끼리 커피를 마시거나 점심을 같이 들거나 취미생활을 같이 하면서 교류와 소통에 나설 수 있도록 지역공동체 공간을 조성한다는 방침도 효과가 기대된다. 도서관이나 생활문화센터에서 인문상담을 받거나 예술체육활동에 나서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정신건강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사회적 고립가구가 단순 지원대상자로 머문다면 사업 효과는 자칫 반감될 수 있다. 독거노인 등으로 구성된 지역공동체에서 건강음료 생산과 배달 등을 통해 지역내 고독사 예방활동의 주체로 활동하도록 유도한다면 삶의 보람을 찾는 것은 물론 자존감 제고도 가능하다.

복지부는 중장년 사회적 고립가구의 일생생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돌봄, 병원 동행 등 생활 지원 서비스를 신설하고 보건소의 방문건강관리 서비스를 통해 만성질환 관리와 생활습관 개선도 추진할 계획이다. 고독사 위험 노인에게는 우울증 진단이나 외부활동 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마지막 순간을 대비하려는 노인에게 영정 촬영 등 사전 장례준비도 돕는다. 

이같은 지원사업의 걸림돌은 자신이 '복지대상자'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중장년은 노인층에 비해 지자체의 지원을 거부하려는 비율이 높다. 타인으로부터 간섭받기 싫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다. 이들을 위해 개인 특성에 맞는 맞춤형 사회참여 유도모델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복지부는 시신을 수습해줄 연고자가 없는 사망자를 위해 지자체가 장례비를 포함해 장례 절차 진행을 돕는 공영장례를 늘릴 예정이다.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고 지원하는 전문기관을 중앙정부와 지역별로 지정하고 지자체에서 업무를 담당할 통합사례관리사도 단계적으로 증원할 방침이다. 고독사 정보시스템도 만들어 사망자 정보나 위기정보를 수집, 체계적인 분석에 나설 방침이다.

고독사는 국민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불행이다. 위험군을 찾아내 이들의 고립을 해소하고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고독사 발생을 줄일 수 있다. 살 맛 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 행복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림제공=복지부)
(그림제공=복지부)

고독사 위험군 사례관리 과정에서 민관협업 강화를 위해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 보유한 정보 활용 근거를 담은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고독사 위험군 발굴을 위한 정보 입수 근거가 마련된다. 아울러 사회적 고립 예방·지원센터를 지정할 수 있게 돼 보다 체계적인 예방이 이뤄질 수 있다. 복지부는 지자체별 고독사 예방실적을 지역복지사업 평가 등에 반영할 방침이다. 올해 상반기에 평가지표를 확정하고 평가계획을 마련한뒤 하반기에 실시할 계획이다. 지자체와 사회복지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유도하기 위한 결정이다. 당연한 조치로 풀이된다.

국민 모두가 주변에 방치된 사회적 고립가구에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줄 때다. 내가 베푸는 작은 선행은 언제인가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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