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6.14 12:36
반도체 분야 글로벌 기업들 (인포그래픽=송진동 단장 발제문 캡처)
반도체 분야 글로벌 기업들 (인포그래픽=송진동 단장 발제문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반도체와 양자기술의 뿌리는 약 100년 전에 이뤄진 기초과학의 진보로부터 시작한다. 물질을 구성하며 그 특성을 발현하는 기본단위인 원자 및 분자에 대한 양자 특성 이해가 지금까지 발전하며 반도체 및 양자기술의 토대가 된 것이다. 원자 및 분자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반도체 및  양자컴퓨터 등 소자에 대한 이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혁신적인 기술의 진보를 이룩하는 것은 결국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박재홍 이화여대 화학·나노학과 교수)

"지난 반세기 동안 급격한 발전을 이뤄온 나노 기술은 바텀업 방식의 극한 구조 제어, 물질·소재의 새로운 가능성 구현, 소자의 동작 특성에서 스케일링 이슈를 극복하고 스핀 기반의 동작 소자를 현실화하는 등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다. 나도 반도체 기술 기반의 가치 창출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반도체 기술의 주도권 확보는 새로운 구조·소재의 합성 및 분석기술, 반도체 공정 기술의 고도화와 더불어 물리학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으로부터 이뤄질 수 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및 양자정보 기술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물리학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새로운 기술개발에 적용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탐구해 나가야 한다."(차승남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나날이 격화되는 첨단기술 주도권 확보 노력 속에서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13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반도체 및 양자기술 패권경쟁시대와 대한민국의 미래: 기초과학의 역할과 교육의 방향'에 참석한 토론자들의 주장이다. 기초과학은 미래 산업 발전의 발판으로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을 창출하는 원동력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구성과로 이어진다면 반도체산업에서 쌓아올린 성과를 지속하는 것은 물론 양자기술 분야에서도 신규 주자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식(왼쪽 두 번째)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토론회에서 발제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영식(왼쪽 두 번째)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토론회에서 발제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영식 의원은 이날 개회사를 통해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의 위상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면서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지원 전략과 인재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며 "글로벌 공급망 위기, 미·중 기술패권 전쟁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반도체산업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구를 통한 원천기술 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과학기술 중심의 국정 운영을 천명하면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와 양자기술 발전 방안 모색에 주력하는 것은 국가 발전과 미래 먹거리 확보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차세대 글로벌 기술 경쟁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양자, 우주항공·해양 등 12개 국가전략기술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뒷받침할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은 오는 9월 22일부터 시행된다. 

송진동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 광전소재연구단 단장이 13일 '반도체 패권 경쟁 시대의 기초과학 역할'을 밝히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송진동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 광전소재연구단 단장이 13일 '반도체 패권 경쟁 시대의 기초과학 역할'을 밝히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송진동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 광전소재연구단 단장은 이날 '반도체 패권 경쟁 시대의 기초과학 역할' 발제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반도체 분야에서 기초과학은 기술한계를 극복하는 보험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며 "EUV(극자외선)는 30년전 제안되었을 때 과학자들의 장난감 취급을 받았고 TR(트랜지스터)도 처음 개발되었을 때 진공관보다 비싸고 불안정하여 경원되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네덜란드 ASML이 독점생산하는 EUV 장비는 반도체 회로 패턴을 그리는 노광공정에서 기존 불화아르곤 대신에 극자외선을 활용해 더욱 세밀하게 촘촘한 회로를 구현할 수 있어 각광을 받고 있다. 송 단장은 "기술이 있으면 판매하고 기술이 없으면 공급망 제한을 두고 있다"며 "첨단 기술 보유는 타 기술 교환의 화폐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은 상대방의 공격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어수단이라는 송 단장의 인식이 주목된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획기적 발명은 새로운 필요를 낳기 마련이다. 앞날 발생할 숱한 문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도 가능하다. 당초 의도한 목표와는 다른 쓸모가 발견되면서 널리 사용되는 기술도 많다. 기초과학 육성에 효율적인 연구비 투자와 인재 육성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프=임현식 교수 발제문 캡처)
(그래프=임현식 교수 발제문 캡처)

임현식 동국대 물리반도체과학부 교수는 이날 '양자산업과 기초과학' 발제를 통해 "기존 기술로는 1024비트 암호를 해독하는데 100만년이 걸리지만 오는 2035년 양자기술의 초고속연산이 이뤄지면 10시간이면 가능할 수 있다"며 "국가별 양자 논문 점유율에서 미국이 절대적으로 앞서나가고 중국이 뒤쫓고 있지만 한국은 보이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임 교수는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 양자센싱은 세계 각국의 정책적 지원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한국의 양자 기술과 양자산업은 선진국에 뒤처졌다"고 우려했다. 그는 양자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기초과학연구원(IBS)에 양자컴퓨터연구단을 설립하고 산학연이 동참하는 국제 공동연구센터와 인재 양성 프로그램 운영을 제안했다. 2030년까지 수백 큐비트급 한국형 양자컴퓨팅을 개발해 글로벌 4대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양자기술개발 전략을 내놓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경청할만한 내용이다.

(그래프=임현식 교수 발제문 캡처)
(그래프=임현식 교수 발제문 캡처)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와 양자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규제 압박에 직면한 중국은 화학과 재료공학의 최선두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중국계 논문 에디터를 확대하는 등 기초과학에 집중하며 획기적 기술 개발을 벼르고 있다.  2대 강국이 격돌하는 틈 속에서 한국도 자체 경쟁력을 확보할 방안을 찾고 실천에 옮겨야만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 이와 관련, "양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산·학 분리 R&D 방식에서 벗어나 학계의 기초과학연구와 업계의 상용화 연구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실효적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의 개회사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첨단기술산업 육성과 기초과학 교육 강화는 동시에 추구해야할 국가적 과제이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박사급 인력 양성을 위해 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박재홍 교수는 "하버드대학은 2021년 'Quantum Science and Engineering'이란 박사학위 과정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며 "물리학과, 화학과, 수학과, 전자과, 재료과학과, 컴퓨터과학과 등의 현직 교수들의 겸직으로 구성돼 개별 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아 기반 지식을 쌓고 첨단 영역으로 나아가는 프로그램으로 디자인됐다"고 소개했다.

한국이 12개 국가전략기술에서 초격차를 확보하려면 창의성을 갖춘 융합인재 양성에 보다 노력해야 한다. 대학교에서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전자공학, 물리, 화학, 재료공학 등 학제간 융합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출발점이다. 공대 신입생이 수학을 다시 배우는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고등학교에서도 기초 수리 영역 확대와 충분한 학습도 필요할 것이다.

(포스터제공=김영식 의원실)
(포스터제공=김영식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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