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6.20 16:56
국내외 수술로봇 대표 사례. (사진=보건복지부  ‘1차 의료기기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 캡처)
국내외 수술로봇 대표 사례. (사진=보건복지부  ‘1차 의료기기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환자는 별 문제없이 돌아왔죠. 차정숙 선생 덕에 다빈치를 두 대나 기증받았으니 그 공도 작지 않고요.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이 저희 과인데 관대하게 포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로이 킴벌리)

의사 면허증은 갖고 있지만 전업주부로 생활하다가 20년 만에 의사 가운을 다시 입은 가정의학과 1년 차 레지던트의 성장과 감동을 다룬 '닥터 차정숙'은 올해 상반기 지상파 드라마 중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다. 병원이 중심이 되는 메디컬 연속극에서 눈에 띄게 언급된 의료기기는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컬이 생산한 다빈치 수술용 로봇이었다. 다빈치는 복강경 수술을 위해 미 식품의약국(FDA)이 2000년 승인한 최초의 수술용 로봇 시스템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이 72.1%에 달한다. 이어 미국 스트라이커 코포레이션이 10.4%를 차지하고 있다.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의료용 로봇시장은 2020년 59억달러에서 2025년에는 127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마켓앤마켓(Markets & Markets)은 예상했다. 복강경 수술이나 뇌, 척추 수술 등 정밀도와 정확도가 요구되는 특수 수술영역에서 수술용 로봇의 중요성은 갈수록 부각되면서 시장 규모는 2020년 16억달러에서 2025년에는 37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차정숙 레지던트가 근무하는 구산대학병원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외과 의사들이 다빈치 확보를 차 선생의 공로로 해석할 정도로 다빈치는 뛰어난 기능을 지닌 고가의 수술용 로봇으로 유명하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의 문제는 국내 상급종합병원이 국산 의료기기 사용을 너무 꺼린다는 점이다. 우수한 국산 제품이 있다고 해도 사용경험 부족, 정확성 및 신뢰성 결여, 성능 저하 등을 핑계 삼는다. 2020년 현재 42개 상급종합병원이 보유 중인 의료기기 5만3901대 중 국산은 6101개로 11.3%에 그친다. 전체 의료기관의 의료기기 사용률(61.3%)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국가·대륙별 의료기기 시장 (사진=박지훈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의료기기헬스케어PD 발제 캡처) 
국가·대륙별 의료기기 시장 (사진=박지훈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의료기기헬스케어PD 발제 캡처) 

최근 5년간 생산과 수출 1위 품목인 범용초음파영상진단장치의 상급종합병원 사용률은 20.7%에 불과하며 국산 혈구검사기가 버젓이 있는데도 수입제품 사용률이 98%에 달한다. 상급종합병원의 고질적인 외국산 선호 의식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국내 의료기기산업 시장 규모가 2021년 현재 79.9억달러(9.1조원)로 세계 10위권이며 같은 해 수출액이 86억달러를 기록했다는 국제적 위상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이런 실정에서 인공신장기, 에크모, 식도·위·십이지장경 등 국산제품이 전무한 품목을 국산화한다해도 상급종합병원의 높은 벽을 뚫을 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피치솔류션즈(FitchSolutions)에 따르면 세계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2021년 4524.1억달러에서 2026년에는 6637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소득 수준 향상과 고령화 진행, 건강과 미용에 대한 관심 증가로 연평균 7.9% 이상 성장할 미래 유망산업이다. 의료용 소프트웨어와 로봇 등의 등장으로 맞춤형 진단과 치료, 예방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4월 4일 '1차 의료기기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통해 2027년 국산 의료기기 수출을 160억달러를 달성해 세계 5위 의료기기 수출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같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건강 증진과 미래 첨단산업 강화를 위해 매출 5000억원 이상의 의료기기 기업을 20개로 늘리고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에서의 국산 의료기기 사용률을 30%로 높인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초음파영상진단기와 엑스선촬영장치, 질환 진단시약, 치과용 임플란트, 에크모, 인공신장기, 인조혈관, 전자약, 관절기능보조기기, AI기반 영상진단보조SW, 수술 및 재활로봇, 심혈관 스텐트, 인공관절, 복강경 수술용기기 등을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시의적절한 대응이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의료기기산업 및 규제 발전을 위한 의료기기 혁신 성장 포럼 2차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의료기기산업 및 규제 발전을 위한 의료기기 혁신 성장 포럼 2차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백종현 국민의힘 의원과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의료기기산업 및 규제 발전을 위한 의료기기 혁신 성장 포럼 2차 토론회'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주최하면서 국산 의료기기산업이 직면한 도전과 어려움을 공유하고 개선방안을 논의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서영석 의원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지난해 우리나라 의료기기 생산액은 15조7374억원을 기록했고 시장 규모는 11조8782억원으로 역대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며 "수출 확대를 위해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면서도 불필요한 규제를 혁신하고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든든히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의원의 지적처럼 의료진이 아니라 환자와 예방 중심으로 의료서비스 패러다임이 바뀌는 추세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의 육성에 주력할 필요성이 크다. 식약처는 지난 2월 불면증 증상 개선을 목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의 하나인 '불면증 인지행동 치료법'을 모바일 앱으로 구현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인 Sozz를 국내 최초의 디지털 의료기로 허가한 바 있다. 뛰어난 IT기술을 바탕으로 디지털 의료기기가 전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과 규제 철폐가 뒤따라야할 것이다. 2021년 현재 국내 의료기기 제조업체 4085개사 중 인력 100명 미만이 3933개사로 전체의 96.3%를 차지할 정도로 중소기업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당국의 도움이 요구된다.  

의료기기 시장 진출 절차 (그림=복지부 ‘1차 의료기기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 캡처)
의료기기 시장 진출 절차 (그림=복지부 ‘1차 의료기기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 캡처)

연구를 통해 혁신적인 의료기기를 개발해도 의료현장에서 실제 사용되려면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 현실도 개선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비급여 대상 확인,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안전성·유효성 평가, 심평원의 경제성·급여적정성 평가를 받는데 최장 490일 걸린다.

20일 열린 ‘의료기기산업 및 규제 발전을 위한 의료기기 혁신 성장 포럼 2차 토론회’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원성훈 기자)
20일 열린 ‘의료기기산업 및 규제 발전을 위한 의료기기 혁신 성장 포럼 2차 토론회’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원성훈 기자)

국내외 임상 실증 지원 확대를 통해 국산 의료기기의 신뢰도를 조기 확보하는 것도 절실하다. 이재화 한국의료기기협동조합 이사장은 "의료기기의 수출 증대를 위해 수출에 유망한 의료기기가 개발되고 세계적 수준의 국내병원에서 우수한 품질의 국산 의료기기 사용에 협업하고 해외전시회, 학회 등 시장 개척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서영준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도 "국산 의료기기의 글로벌화를 위해 병원의 역할이 핵심"이라며 "디지털 치료기기나 인공지능 관련 의료기기에선 한국의 주도가 가능하다. 의료기기 개발에 의사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신의료기술을 인정받은 의료기기는 식약처 허가를 근거로 상급병원에서 먼저 비급여로 사용한뒤 이후 의료기술평가를 시행, 급여 또는 비급여를 적용하거나 현장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시장진입을 촉진하는 근본적 해결책이다. '선진입-후평가'를 위해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 등 법률을 개정하는데 정부와 정치인이 적극 나선다면 의료기기 수출 5대 강국 진입이 가능하다. 연구개발, 임상실증 지원, 시장 진출, 규제합리화를 통해 현행 의료기기산업의 기술추격형 구조를 글로벌 선도형 구조로 일신하는 노력과 맞물린다면 'K-의료기기'에서도 능히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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