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6.16 15:45
 '제1회 수출 확대를 위한 산업계 릴레이 간담회'가 15일 삼성동 트레이드 타워 51층 중회의실에서 정만기(뒷줄 오른쪽) 상근부회장 주재로 나성화(뒷줄 왼쪽) 원스톱수출지원단 부단장과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무역협회)
 '제1회 수출 확대를 위한 산업계 릴레이 간담회'가 15일 삼성동 트레이드 타워 51층 중회의실에서 정만기(뒷줄 오른쪽) 상근부회장 주재로 나성화(뒷줄 왼쪽) 원스톱수출지원단 부단장과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무역협회)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국내 시스템반도체 기업들이 새로운 칩 하나를 개발하려면 통상 5000억원이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특히 신규 팹리스들이 이런 금융을 조달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총 비용 중 타 기관의 lP(지식 재산권)를 활용하는 비용이 약 48%를 차지한다. 이에 대한 정부나 금융기관의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김정인 코아시아 부사장)  

"정부 수출 지원 사업의 경우 일정 금액 이상 수출 실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IT 서비스업은 제조업 대비 금액 기준 수출이 적을 수밖에 없는 만큼 IT 분야에는 현실에 맞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정균 와이즈넛 이사)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15일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 타워에서 개최한 '제1차 수출 확대를 위한 산업계 릴레이 간담회'에서 나온 인공지능·IT업계의 현장 애로와 대정부 건의 내용이다. 무협이 IT·반도체 기업 관계자부터 불러 이런 행사를 가진 것은 지난해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이 2488억달러로 역대 최대실적을 달성하는 등 한국 수출 전선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승승장구했던 ICT가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메모리 반도체 업황 부진, 엔데믹에 따른 소프트웨어 실적 감소 여파로 7월부터 하락세로 전환된뒤 11개월 연속 감소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재택근무 시대가 끝나고 대면접촉이 늘어나면서 모바일, 컴퓨터, 태블릿 등 ICT 품목 소비 둔화로 반도체 수요가 대폭 감소한 영향이 컸다.

(그래프제공=과기부)
(그래프제공=과기부)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ICT 수출실적은 689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1018.5억달러)보다 32.4% 줄었다. 1~5월 전체 수출이 2531억73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3.5%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ICT의 저조한 수출이 두드러진다. ICT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에서 출하 감소와 단가 하락이 이어지고 있어 올해 3분기까지는 감소 행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1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 전체 수출은 2683억달러로 1년 전에 비해 12.9% 줄었다. 이런 흐름을 볼 때 역대 최대를 기록했던 2022년 수출 실적(6838억달러)보다 0.2% 높게 잡은 올해 6850억달러 목표는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워진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쉽사리 포기해선 안 된다. 더구나 반도체 업황이 개선되기 만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물론 정부도 속속 대책을 내놓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5일 '디지털 분야 해외진출 및 수출 활성화 전략'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하면서 챗GPT와 같은 초거대 인공지능 분야에서 나타나는 대규모 기술혁신과 전세계적으로 가속화되는 디지털 전환 흐름을 활용, 반등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뜻을 천명한 바 있다. 

IT 분야 리서치기업인 가트너는 지난 4월 올해 세계 IT 시장 성장률이 5.5%로 작년(0.5%)보다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3분기 이후 메모리반도체 재고 축소, 초거대AI 확산에 따른 고용량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시장 확대로 4분기 이후 수출 반등이 본격화될 것으로 과기부는 전망하고 있다.

지난 5월 품목별 수출 동향을 살펴보면 일부 희망이 엿보인다. 메모리반도체 수출은 34.1억달러로 작년 5월보다 53.1% 급감했지만 시스템반도체 수출은 36.1억달러로 1년 전보다 4.9% 줄어드는데 그쳤다. 5개월 만에 감소폭이 둔화된 것이 주목된다. 디스플레이 분야 중 LCD는 국내 생산 중단 및 사업 축소 영향으로 31.1% 줄어든 3.3억달러를 기록했지만 OLED는 6.6% 늘어난 10.6억달러를 달성했다. 모바일용 디스플레이 수요의 중심인 베트남 수출이 35.3% 급증한 덕분에 7개월 만에 증가세로 전환한 것이 눈길을 끈다.

디지털 수출 영토 확대를 위한 신흥 시장 개척 방안 (그림제공=과기부)
디지털 수출 영토 확대를 위한 신흥 시장 개척 방안 (그림제공=과기부)

자원부국에서 디지털 혁신국가로의 도약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국가와 국가 디지털 전략을 수립해 이행 중인 멕시코, 칠레 등 중남미 국가, 수도 이전을 통해 스마트시티를 구축 중인 인도네시아와 비즈니스 허브 조성에 나서고 있는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ICT 기업들이 수출 활로를 적극 모색해야할 때다. 그렇다고 기업 혼자의 힘으로 새로운 시장을 뚫기는 어렵다. 공적개발원조(ODA)와 국제개발은행 협력사업, 한-아세안 협력기금 등을 활용해 민간기업과 정부가 원팀이 되어 중동, 아시안, 중남미 등 유망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정답이다.

무협 간담회에서도 이와 관련된 업계의 고충과 제언이 제기됐다. 박익현 메인정보시스템 대표는 "UAE 정상외교 사절단에 참여,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와 관련해 1000억원 규모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며 "이 프로젝트 시행을 위해 300억원의 착수비용이 필요하지만 금융 지원 기관이나 시중 은행들은 지원에 난색을 드러내고 있어 추진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전형우 메가존 클라우드 실장은 "해외 IT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통상 6개월이 소요되는데 베트남, UAE 등 일부 국가에서는 단수 또는 3개월 미만의 단기 비자만 발급된다"며 "국가 차원의 비자 협약 마련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김성 효성티앤에스 팀장은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협력 프로그램 확대가 필요하다"며 "미국에서 현지사업을 추진할 때 주별로 핀테크 사업자격을 취득해야 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해외 규제 대응 가이드 제공과 비용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수출 기업이 직면한 각종 어려움의 실태를 파악, 개선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지원방안을 마련해주는 것이 정부의 임무이다. 관계부처의 신속한 대응이 요구된다.

유망 수출품목별 전망. (인포그래픽제공=과기부)
유망 수출품목별 전망. (인포그래픽제공=과기부)

국내 시스템통합(SI) 분야 공공시장에 대한 대기업의 참여제한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양윤나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팀장은 "SI 분야 대기업들은 국내 레퍼런스 축적 기회가 없어지면서 국내 레퍼런스를 요구하는 해외 주요 시장에 대한 수출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기업들이 국내 공공시장에서 레퍼런스를 축적해갈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SI 분야 수출을 확대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메가존 클라우드도 거들었다. 전형우 실장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급성장했으나 이후 대기업에 대한 국내 공공시장 참여 제한으로 인해 기존에 시행하던 SI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기부는 지난 5일 발표한 '디지털 분야 해외진출 및 수출 활성화 전략'을 통해 "디지털 전환 및 디지털플랫폼정부를 통해 창출된 우수한 성과를 수출 유망품목으로 적극 육성한다"며 "디지털플랫폼정부 인프라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기술을 활용하는 GovTech 스타업을 발굴하고 창업을 활성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이같이 대응하기 앞서 SI 분야 대기업이 호소하는 공공시장 진출 제한부터 재검토하는 것이 절실하다. 디지털 전환으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수요가 확대되는 국가에 대한 수출을 늘리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가 본격 개막되면서 국경간 장벽이 무너지는 흐름은 넷플릭스를 통한 OTT 인기에서 쉽게 확인된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은 전세계 AI 시장 주도권 장악을 놓고 치열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골리앗 해외 대기업과 비교하면 다윗에 불과한 국내 SI 대기업을 계속 규제할 이유와 이로 인한 국가적 실익이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ICT 수출 반등을 정말 앞당기고 싶다면 신발에 들어간 못부터 빼내야 할 것이. 대통령실과 정부는 SI 분야 공공시장 참여 규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보다 효율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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