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3.06.19 06:00

최악의 업황·글로벌 패권 다툼으로 '이중고'…하반기 업황 반등도 '불투명'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라인에서 작업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라인에서 작업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국내 반도체 산업은 올해 상반기 내내 가시밭길을 걸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메모리 반도체 한파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이어져 결국 기업들을 적자의 늪에 빠뜨렸다. 국제 정세도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에 끼어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 

◆최악의 '반도체 겨울'…상반기 적자만 합산 15조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한 4월 27일. 업계와 시장은 크게 동요했다.

설마 했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분기 적자가 결국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DS 부문의 1분기 영업손실은 4조5800억원. 전년 동기 대비 13조300억원 감소하면서 적자로 전환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도 4조8500억원 줄었다. 삼성전자 DS 부문이 분기 적자를 기록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지난 2009년 1분기 이후 14년 만이다.

전날 1분기 실적을 발표한 SK하이닉스 역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1분기 3조4023억원의 적자를 냈다. 2012년 SK그룹 편입 이후 기록한 분기 적자 중 최대다.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분기 반도체 부문에서만 합산 8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한 셈이다.

양사 실적이 곤두박질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 영향이 크다.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다양한 이슈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감했다. 줄어든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재고 증가와 제품 가격 하락 등을 불러왔다. 

조만간 발표를 앞둔 2분기 실적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증권가는 삼성전자 DS 부문이 올해 2분기 3조원 후반에서 4조원 초반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 적자 폭이 살짝 줄어들긴 했지만, 반도체가 그간 삼성전자 전체 실적의 절반 이상을 견인해 온 점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실적이다.

SK하이닉스도 적자 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SK하이닉스의 올해 2분기 실적 컨센서스(증권가 전망치 평균)는 3조1862억원이다. SK하이닉스 역시 1분기 대비 실적이 소폭 개선됐지만, 여전히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이 증권사 전망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양사는 올해 상반기에만 합산 15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줄서기' 요구하는 美·中…삼성·SK, 불편한 침묵만

역대급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은 반도체 산업에 이중고로 다가왔다. 

지난달 21일 중국은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만드는 제품에서 보안 문제가 발견됐다며 제품 구매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마이크론의 중국 매출 비중은 11% 수준으로, 이번 조치에 따라 마이크론 매출에 직접적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는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정책을 쏟아내자, 중국이 반격에 나섰다고 해석한다.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 조치를 발표한 날이 G7 정상회의 폐막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G7은 중요 광물과 물자의 공급망을 강화하는 한편, 경제적 강압에 대항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창설하겠다고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마이크론 제재 조치에 미국은 즉각 "근거가 없는 제한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반발했다. 맞대응으로 중국 반도체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 대한 무역 규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중국 역시 정당한 제재이니 미국 정부가 끼어들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이크론 제재로 미국이 반격한다면 '치아를 부러뜨린다'는 원색적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두 고래의 싸움에 우리 기업들은 난감해졌다. 중국은 마이크론 제재로 인해 부족한 메모리 반도체 물량을 우리 기업들을 통해 충당하려 할 테고, 미국은 그걸 허용하지 않으려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의회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콕 집어 거론하며 "마이크론을 대체하지 말라"며 압박하고 나섰다.

중국도 한국 기업들의 '줄서기'를 강요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마이크론의 대체 공급원 역할을 하지 말라는 미국 측 요구는 명백한 간섭이자, 국제 무역 규칙에 대한 위반이다. 만약 한국이 그러한 간섭을 뿌리칠 수 없다면 경제적으로 심각한 결과에 직면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만 선택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은 반도체 관련 원천기술 대부분을 가진 나라다. 미국 없이는 반도체 산업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한 중국은 세계 반도체 소비의 24%를 차지하는 최대 반도체 시장이다. 핵심 생산거점 역할도 한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약 40%를,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공장에서 전체 D램 생산량의 약 50%를 만들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은 그저 불편한 침묵만 지키고 있는 형국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라인 전경. (사진제공=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라인 전경. (사진제공=SK하이닉스)

◆하반기 반등할까? 낙관론·비관론 분분

더 큰 문제는 업황 반등 시점마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반도체 경기가 이미 바닥을 찍었으며 하반기부터 업황이 개선되는 흐름을 보일 것이란 '낙관론'과 하반기에도 녹록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이 분분하다. 

하반기 반등을 점치는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자발적 감산 공조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반도체 재고량이 상반기 고점을 찍고 3분기부터 점진적인 감소세를 보일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그간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해 온 삼성전자까지 최근 감산에 동참하면서, 이러한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앞서 감산을 발표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의 공급 축소 효과는 2분기 이미 반영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감산 효과는 8~9월부터 나타나 반도체 수급이 큰 폭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증권사들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를 줄상향하고 있다. KB증권은 삼성전자 12개월 목표 주가를 8만5000원에서 9만5000원으로 11.8% 상향했다. ​유진투자증권, SK증권, 키움증권은 각각 9만원으로 올려잡았고, 현대차증권도 8만7000원으로 높여 잡았다.

SK하이닉스 역시 KB증권은 11만원에서 15만원으로, NH투자증권은 11만7000원에서 15만원으로 각각 눈높이를 올렸다. 미래에셋증권도 12만원에서 15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반면 반도체 업황 회복 속도가 예상을 밑돌 것이란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감산 공조에도 아직 기대만큼 수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전경련이 개최한 2023년 하반기 산업 전망 세미나에서 반도체 부문 발표를 맡은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올해 하반기에도 반도체 수출 감소율이 두 자릿수(-12.8%)에 달할 것으로 관측했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설비 교체, AI 수요 확대 등으로 상반기보다는 실적이 양호하겠지만,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할 것으로 봤다. 그는 글로벌 경기 둔화로 반도체 수요 산업인 PC와 스마트폰 시장이 여전히 부진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김 연구원은 "(반도체 업황이) 상반기가 최악이었다면 하반기에는 회복세라기보단 실적 부진을 유지하는 상황이 전개될 전망"이라며 "중국 리오프닝 효과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올해 업황 개선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