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7.18 14:25
현대중공업이 건조, 2022년 인도한 20만㎥급 LNG운반선이 시운전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조선해양)
현대중공업이 건조, 2022년 인도한 20만㎥급 LNG운반선이 시운전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조선해양)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수출산업국가이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데다 육로로 통한 해외 수송은 불가능하다보니 수출입 화물의 99.7%가 선박으로 운송된다.

이처럼 해운은 우리의 명운이 달린 기간산업이다. 해운산업 규모와 경쟁력을 비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인 지배선대 순위에서 한국의 선박보유량은 2022년 현재 9922.7만DWT로 그리스, 중국, 일본에 이어 네 번째이다. 지배선대는 선박의 국적을 기준으로 선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모든 선박의 규모를 의미한다. 

조선업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조선 수주랑 또한 세계 1위 국가다. 지난해 고부가·친환경 선박을 대표하는 LNG운반선의 세계 시장점율율은 70%에 달했다. 

한진해운 사태 이후 해운업계와 조선업계는 상생 협력으로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작년에 좋은 성적을 냈다. 해운산업은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의 지원을 기반으로 친환경·고효율 선박을 인도받아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인 383억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해운 매출액 역시 62조원을 올렸다. 2021년 50조원이라는 과거 최고 실적을 훌쩍 넘었다.

한때 수주절벽에 직면했던 조선산업은 국적선사의 발주 물량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친환경선박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규제 강화와  ESG 경영 흐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다면 명실상부한 해양강국으로의 도약이 가능하다.

현재 선박엔진으로 주로 사용되는 디젤기관은 열효율이 우수하지만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부터 선박연료의 황산화물 함유량 상한선을 3.5%에서 0.5%로 낮춘뒤 저유황유 사용이 크게 늘어난 바 있다. 

정기선(오른쪽) HD현대 사장이 6월 6일부터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르쉬핑 선박박람회 기간 중 임기택 IMO 사무총장과 만나 글로벌 조선 및 해운업계의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제공=HD한국조선해양)
정기선(오른쪽) HD현대 사장이 6월 6일부터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르쉬핑 선박박람회 기간 중 임기택 IMO 사무총장과 만나 글로벌 조선 및 해운업계의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제공=HD한국조선해양)

국제해운업계는 최근 온실가스의 단계적인 퇴출을 목표로 삼는 비전을 마련했다. 지난 7일 IMO 해양환경보호위원회 제80차 회의에서 2050년까지 해운분야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목표를 2008년 배출량 7억9400만t 대비 기존 50%에서 100% 수준으로 대폭 높이는 초기전략 개정이 가결됐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최소 20% 감축(30%까지 노력), 2040년까지 최소 70% 감축(80%까지 노력)한다는 지시적 중간지표도 설정됐다.  

유럽연합은 빠르면 내년부터 EU 항구에 들어오는 선박에 탄소부담금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화주들도 친환경공급망을 통한 화물 운송을 요구하는 추세다. 넷제로 달성을 위한 국제사회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선사들은 화석연료가 아닌 LNG 추진선이나 메탄올 추진선 등 탈탄소·차세대·친환경 연료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17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최형두 의원, 김희곤 의원, 위성곤 의원 주최로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회 정책 세미나'가 열려 탈탄소 규제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친환경 선박 건조 확대 등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해운·조선·금융 상생방안이 논의됐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17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회 정책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17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회 정책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세미나에 앞서 한국해운협회와 한국중소조선공업협동조합,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친환경 선박 확보를 위한 해운·조선·금융 상생협약을 체결,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선사는 친환경 선박 발주를 늘리고 ▲조선업계는 고품질·친환경 선박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제공하며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친환경 선박금융 지원을 확대하는데 협력하기로 했다. 

최형두 의원은 이날 개회사에서 "국제공급망 위기, 고금리로 인한 유동성 축소 등으로 무역수지 연간 누적 적자액이 300억달러에 달하고 IMO 탈탄소 규제 강화 등 환경규제 속에서 해운업계가 불황에 직면하고 있다"며 "해운, 조선, 무역, 금융 등 각 산업간 유기적 상생과 협력을 통해 무역적자를 극복하고 글로벌 해운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해운업과 조선업 상생은 물론 선주와 화주의 상생발전도 함께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김희곤 의원이 17일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회 정책 세미나'에서 축사를 읽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국민의힘 김희곤 의원이 17일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회 정책 세미나'에서 축사를 읽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희곤 의원은 이날 축사에서 "코로나19 기간 중 이례적 수준으로 상승했던 해상운임은 지난해부터 급격히 하락하고 있고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교역규모 정체, 선박 공급 증가 등으로 우리 해운산업은 또다시 불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위성곤 위원은 "해운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ESG 경영의 일환인 친환경선박으로의 체질 개선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 조선산업 또한 확실한 내수물량을 확보하게 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운산업은 자체 경쟁력 향상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면서 조선, 화주, 금융 등 관련 업계와의 상생발전을 유도하는 정책적 지원이 빈틈없이 뒤따라야만 경기변동의 영향을 최소화 한 채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한국해운협회에 따르면 한국 지배선대 평균 선령은 14.2년으로 그리스(12.8년), 중국(12.8년), 일본(9년)보다 높고 15년 이상 노후 선대가 전체의 19.34%를 차지한다.

이미 올해부터 총톤수 5000톤 이상 현존선에 탄소집약도지수(CII)가 적용 중이다. 탄소집약도지수는 선박이 실제 운항 과정에서 배출한 온실가스량을 선박톤수와 거리로 환산한 것이다. CII 목표 달성에 따라 A~E 등급이 부여된다. D등급을 3년 연속 받거나 E등급을 부여받으면 선박 운항이 제한된다. E등급선은 친환경선으로 새로 건조, 운항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문제는 2021년 기준 국적선사 825척 중 290척(35.1%)이 D, E 등급으로 분류됐다는 점이다. 2026년까지 CII가 연간 2% 높아짐에 따라 2025년에는 저등급 선박 비중이 51%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암모니아 혼소 연료추진시스템 실증 체계도. (자료제공=대우조선해양)
암모니아 혼소 연료추진시스템 실증 체계도. (자료제공=대우조선해양)

양창호 상근부회장은 이날 '해운-조선-화주-금융 상생을 통한 친환경선박 확보방안'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기존 선박보다 건조비용이 메탄올 추진선은 16%, 암모니아 추진선은 24% 증가할 것"이라며 "E등급선 친환경선 전환에 평균 23.7조원의 신조비용이 필요하고 국적선사의 연간 친환경 선대 전환비용은 4.4~4.7조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올해 정부의 친환경선박 지원 예산은 130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는 "국내 화주가 국적선사에 컨테이너 화물을 맡기는 비율(적취율)을 70%로 높이면 116만 TEU의 추가 선복이 필요하고 여기에 53억달러 들어간다"며 "국회와 정부는 국적선사 친환경 선박 발주와 건조 지원을  위해 정책 개발과 입법을 지원하고 해운선사와 화주, 조선소 및 기자재 업체는 적취율 향상과 이에 따른 친환경 선박 발주 등을 통해 상생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현대미포조선이 2021년 인도한 메탄올추진 PC선이 시운전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이 2021년 인도한 메탄올추진 PC선이 시운전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조선해양)

해양수산부는 2030년까지 암모니아 등 무틴소 선박 상용화를 목표로 핵심기술 개발을 지원 중이다. 2050년까지 전체 외항 선대를 친환경선박으로 전환하는 것도 도울 방침이다. 다만 여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정부예산이나 정책금융기관 지원으로 감당할 수 없다. 안정적이고도 높은 수익률을 기반으로 민간자금의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 대응이 요구되는 이유다.

조승환 해수부 장관은 이날 축사를 통해 "민간자본이 보다 선박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핀테크 기술을 접목한 증권형 토큰(STO)을 발행하고 화주·조선사 참여형 투자모델을 개발하는 등 민간 선박투자 활성화 대책을 수립해 추진해 나가겠다"며 "정책금융기관은 이에 맞춰 후순위 투자 확대, 민간금융에 대한 보증 강화 등 민간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주력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해운선사는 친환경 선대로의 전환과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다양한 초대형·최신형 선박을 확보, 수출입 화주에 대한 서비스 질을 높이고 정기적인 발주로 선박 건조가격 협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세계 최대 해운회사인 덴마크의 머스크(MAERSK)와 같은 대형사가 국내에서 나와야 한다. 수출입 해상 물동량이 12억톤에 달하고 무역규모는 1.3조 달러 이상인데다 선박금융도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상태다.

무엇보다 50%에도 못 미치는 국적선 적취율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화주업계와의 폭 넓고 깊이 있는 대화와 의견 조율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배에 우리 짐을 싣고 남는 공간에 외국 화물까지 싣는 선순환체제가 구축된다면 해운산업에서 제2의 삼성전자가 능히 탄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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