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8.10 14:24
케이캡정 (사진제공=HK이노엔)
케이캡정 (사진제공=HK이노엔)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999년 7월 위암치료제 '선플라주'가 국산 신약 1호로 허가 받은 이후 2022년 11월 제2형 당뇨병치료제 '엔블로정'이 제36호 신약으로 허가 받았다. 특정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천연물질에서 추출하거나 화학적으로 신물질을 합성한 이후 효능 유무를 살핀뒤 독성검사와 동물시험, 임상시험을 거쳐 약효와 안전성을 입증해야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신약으로 허가한다. 물질특허기간 20년을 감안한다면 허가 시점으로부터 아무리 늦어도 10년 이내에 그간 투입한 비용을 회수하고 이익을 챙겨야 한다. 

위식도역류질환 신약인 HK이노엔의 '케이캡'은 지난해 원외처방실적이 1321억원을 기록했다. 2018년 신약 허가를 받은뒤 누적 실적은 3503억원으로 관련 질환 치료제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 기술이전이나 완제품 판매로 미국, 중국, 인도 등 35개국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유한양행의 폐암 치료제 '렉라자정'과 한미약품의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 대웅제약의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펙수클루정'도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종근당의 당뇨병 치료제 '듀비에정', 동아에스티의 경구용 혈당강하제 '슈가논정', LG화학(옛 LG생명과학)의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정', 보령제약의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정'도 연간 100억원 어치 이상 팔리고 있다. 대체로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 치료에 사용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김영주(왼쪽) 종근당 대표와 강석희 CJ헬스케어 대표가 2019년 1월 22일 ‘케이캡정’ 공동판매 계약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CJ헬스케어)
김영주(왼쪽) 종근당 대표와 강석희 CJ헬스케어 대표가 2019년 1월 22일 ‘케이캡정’ 공동판매 계약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CJ헬스케어)

최소 5년에서 최장 20년 이상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해도 신약 허가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 더구나 신약으로 출시된뒤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품목은 소수에 불과하다.  

국산 신약의 흑역사는 제품 경쟁력, 원가 절감 기법, 임상시험 능력, 시장 상황에 대한 판단과 예측이 선진 제약사보다 뒤처진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SK케미칼의 '선플라주'는 시판 허가를 받았지만 글로벌 제약사와의 경쟁에서 밀렸다. 암세포는 물론 정상세포까지 공격하는 1세대 화학항암제라는 약점으로 인해 부진한 매출을 보였다. 결국 2009년부터 생산을 중단하고 허가만 유지해오다가 지난해말로 유효기간이 만료됐다. 회사가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할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역사속으로 쓸쓸히 사라졌다.

CJ제일제당의 녹농균 예방백신 '슈도박신주'는 향후 6년 안에 임상3상 시험결과를 제출하는 조건으로 2003년 5월 신약 허가를 받았지만 임상자료 제출을 하지 못하고 2010년 품목허가를 스스로 취하했다. 14년 간에 150억원을 투자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동화약품은 2001년 7월 간암 신약으로 허가받은 '밀라칸주'의 임상3상 과정에서 시장성이 낮다고 판단, 2012년 품목허가를 포기했다. 한미약품은 표적항암치료제 '올리타정'에 대해 2016년 5월 신약 허가를 받은뒤 추가 개발을 중단한 바 있다. 제피드정(JW중외제약), 리아백스(카멜젬백스), 시벡스트롱정·시벡스로주(동아에스티)도 허가를 반납했다.

그간 개발된 36종의 국산 신약 중에는 새로운 작용기전으로 치료하는 세계 최초의 약을 의미하는 퍼스트인클래스(First In Class)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기존 치료기전의 치료제 중에서 가장 우수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베스트인클래스(Best In Class)에 머물다보니 경쟁 약품보다 크게 높은 약가를 받기 어렵다. 대체로 외국 오리지널 약품에 경도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주요 대학병원의 '키닥터'들로부터 처방전이 집중되도록 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조명희(가운데 책상 왼쪽부터)국민의힘 의원,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9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제약바이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조명희(가운데 책상 왼쪽부터)국민의힘 의원,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9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제약바이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9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제약바이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신약의 합리적인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한 박관우 김앤장 변호사는 "국산 신약 중에서 절반 가량의 품목이 허가취하와 (건강보험) 급여 삭제로 시장에서 자진철수했다"며 "낮은 약가와 이에 따른 낮은 시장성에서 비롯됐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신약개발 역사가 20여년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신약의 절반이 엄청난 손해를 남긴 채 퇴장했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신약 개발에서 성과를 내기에 급급, 임상 3상시험 결과 없이 조건부 허가를 내준 부작용도 있다.

신약은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접근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면 비싼 약값을 환자가 전액 내야하는 만큼 의사도 처방전에 기재할 때 부담을 갖게 된다. 보험약가를 받지 못한다면 시장성을 잃게 된다. 물론 국산 신약 중에서 동아제약의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는 비급여 악제이지만 꾸준히 팔리고 있다. 예외적인 사례다.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이 9일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이 9일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제약업계는 판매허가를 받은 의약품 중에서 임상적·경제적으로 가치가 높은 의약품을 선별해 건강보험 급여대상으로 삼는 선별등재제도가 20006년 도입된 이후 약가보상이 낮아지면서 신약 개발의 유인도 적어졌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보험재정 절감을 이유로 위험분담제도와 경제성평가면제 대상을 늘리면서 희귀질환, 후발등재약제, 항균제 등의 보장성은 일부 높아졌지만 만성질환 치료제는 임상시험에서 대체약제보다 유용성이 확인됐다해도 가장 많이 쓰이는 약제와 비교되면서 ICER(비용효과성) 임계점이 극히 낮은 수준에서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미 제네릭 약품이 출시된 적응증이라면 신약이라해도 제네릭 이상의 보험약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약가가 기대에 비해 낮게 책정되다보니 국내 등재를 포기하고 해외 선발매를 추진하거나 제품화 이전 기술을 해외 제약사에 수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어렵게 얻어낸 보험약가 역시 주기적으로 시행되는 약가사후관리제도에 따라 번번이 인하된다. 대기업이 매년 하청기업의 납품단가 인하비율을 통고한뒤 강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같은 행태는 2027년까지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2개를 창출하고 글로벌 50대 제약기업 3곳을 육성하며 의약품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정부 발표와는 엇박자가 난다.  글로벌 임상시험 지원 등을 위해 올해 상반기에 5000억원, 2025년까지 1조원의 펀드를 조성한다고 공언했지만 고금리 지속으로 투자환경이 나빠진 실정에서 계획대로 돈이 모아질지, 예정대로 투입될지 두고 봐야 한다.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9일 '신약의 적정가치 부여 및 원료의약품 산업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9일 '신약의 적정가치 부여 및 원료의약품 산업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코로나19 펜데믹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보건의료 시스템 붕괴 위기와 필수의약품 부족사태를 겪으면서 제약바이오산업이 보건안보와 직결되는 분야임을 실감했다"며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약가제도 운영이 절실하다"며 "신약개발을 위한 기업의 투자 역량과 국내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장기적 로드맵을 마련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19 위기 당시 화이자와 모더나는 백신을 개발, 전 세계에 공급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고 미국은 제약강대국의 지위를 뽐냈다. 신종 감염병에 대비해 자체 백신 개발 능력을 향상하고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제약바이오산업의 신제품 출시 능력을 강화하는 것은 국가적인 과제이다. 보건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안정적으로, 장기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없는 환경에서 제약사가 신약 개발에 적극 나설 까닭이 없다. 선진국보다 행정의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국내 실정에선 더욱 그러하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는 ▲효과와 부작용, 편의성 개선 등 치료적 이익을 신약의 혁신가치에 포함 ▲사용량과 약가 연동제도 개선 ▲경제성 평가검토 과정에선 혁신성 우선 고려 및 ICER 임계값 예외 적용 ▲장기간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질환까지 경제성평가 면제 확대 등을 정부에 건의한 상태다.

신약 허가 취득에 성공한 기업이 적절히 책정된 보험약가에서 수익을 지속적으로 올려야 새로운 신약 개발에 도전할 여력도 커진다.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신약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제도가 서둘러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전국 어느 약국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험약가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책정되는 것은 전세계에 수출 가능한 블록버스터 신약을 만들어낼 첫걸음이다. 이런 기반이 확실히 마련된다면 약효가 우월한 신약이 잇달아 출현할 가능성도 기대된다. 장기적으로 건보 재정 안정을 가져오는 해법이기도 하다. 선순환 고리부터 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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