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9.06 15:38
6일 국회의원회관 재1세미나실에서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평가 긴급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6일 국회의원회관 재1세미나실에서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평가 긴급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지난 1일 국민연금 제5차 재정계산위원회가 서울 코엑스에서 ‘오는 2093년까지 향후 70년간 국민연금적립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한다‘는 목표와 함께 다양한 재정안정화 방안을 제시한뒤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재정안정화를 위해 현행 9%의 보험료율을 12%, 15%, 18%로 올리고 연급 지급 개시연령을 68세로 늦추면서 기금투자수익률을 0.5%포인트, 1%p 제고를 매칭한 방안을 내놓았을 뿐 소득대체율 인상안은 빠졌기 때문이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는 공적연금이라는 특수성을 간과하고 보험수리적으로 접근한 재정안정론자들의 주장만 반영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직 국민연금기금은 성장기에 놓여 있다. 평가이익과  처분이익을 모두 재투자해 복리로 수익을 늘리며 평균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시기다. 인구구조의 급속화 고령화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재정추계에 따르면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기금은 2030년을 전후로 평가이익의 범위에서만 규모가 증가하는 ‘전환기’에 들어간다. 급여 지출을 위해 투자자산의 현금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여유자금의 신규 투자 자산화는 극히 일부에 그치게 된다. 2040년을 전후해 시작되는 ‘소진기’에는 기금 투자자산을 대량으로 팔아 연금 지급에 써야 한다. 결국 2055년을 전후해 기금이 소진된다.

이찬진 참여연대 실행위원(제5차 재정계산 기금운용발전전문위원회 위원)은 6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평가 긴급 토론회’에 참석해 “현재 국민연금기금의 위험자산 비중은 60% 상당으로 연간 손실확률은 약 25%”라며 “4년에 한 번 마이너스 수익률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22년의 사례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김성주, 서영석, 한정애, 강은미 국회의원과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박영석 기금운용발전전문위원회 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기금운용 개선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1)
박영석 기금운용발전전문위원회 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기금운용 개선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1)

현재 국민연금의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비율은 각각 45%, 55% 수준이다. 기금운용발전위원회가 제시한 최근 10년간 국가별 연기금 평균수익률에서 한국은 4.7%로 캐나다(10.01%), 미국(7.03%), 노르웨이(6.69%), 네덜란드(5.09%)에 뒤진다. 기금운용발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박영석 서강대 교수는 지난 1일 “이들 국가의 높은 투자 수익률은 우리나라보다 위험자산 투자비율이 높도록 의사결정을 했기 때문”이라며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려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기발위는 국민연금공단에서 연금기금을 운용하는 조직을 따로 떼어내 공사 형태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가입자 대표 중심의 ‘국민연금정책위원회’가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투자비율을 결정하는 ‘기준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면 기금운용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운용위원회’가 투자의사를 결정하고 산하 집행조직인 ‘기금운용공사’는 실행에 나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 관계자들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소득대체율 상향 없는 보험료 인상 반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스1)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 관계자들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소득대체율 상향 없는 보험료 인상 반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스1)

위험자산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수익률 제고를 기대할 수 있지만 연간 손실확률도 당연히 뛰어오른다. 국민연금기금이 전환기 진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과감한 투자로 높은 이익을 낼 수 있지만 만약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 이를 만회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가입자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현행 기금운용체계에서 위험자산 비중을 크게 높이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위원은 “위원회 제 6차 회의자료집에 따르면 최근 국민연금 연평균 수익률 4.9%와 4차 재정계산 모수값을 기준으로 할 경우 0.5% 수익률 상향을 위한 필요위험자산 비중은 85% 상당, 1% 상향을 위한 비중은 96% 이상이 요구된다”며 “거시변수가 더욱 악화된 제5차 재정계산 결과를 따를 경우 현재와 같은 기금수익률을 유지하려면 위험자산 비중을 72%로 대폭 높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기금 소진기에 손실이 초래되면 이를 회복할 수 있는 투자기간을 확보할 여력이 없다. 결국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신뢰 붕괴를 막기 위해 보험료를 더 걷거나 정부재정에서 부족분을 충당할 수밖에 없다. 초과수익률을 보다 높이기 위한 공격적 투자는 정부가 일정비율을 넘어서는 손실에 대해선 보전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가입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힘들 것이다.

이 위원은 “가입자들로부터의 대표성이 없는 전문가끼리 위험자산 비중을 극대화하는 결정을 했을 때 수시로 발생하는 손실이라는 제도 및 기금운용상의 문제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며 “답은 ‘책임질 수 없다’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정세은(왼쪽부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와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6일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정세은(왼쪽부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와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6일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재정계산위의 재정안정론 시나리오는 보험료 수입과 이것의 누적금인 기금수익만으로 급여지출을 충당하려는 보험수리적 접근을 전제한다”며 “공적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에선 경제 전체의 비용부담 능력, 기금의 생산적 투자능력 등 보험수리외적인 요소를 고려해야한다”고 주장, 눈길을 끌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도 “국민연금보험료 부과대상 소득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인데 5차 재정계산에선 2050년부터 2080년까지 25.8~26.9%로 크게 낮아졌다”며 "고령화가 심화되는 미래에 이렇게 좁은 소득에만 부과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협소한 보험료 부과기반을 넓히기 위해 피용자 보수 전체에 보험료를 부과하고 장기적으로 기업 및 재산소득, 고령인구 중 고소득·고자산계층의 기여도를 높일 것을 제안했다. 

강은미(왼쪽) 정의당 의원과 서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6일 토론회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강은미(왼쪽) 정의당 의원과 서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6일 토론회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국민연금은 주택연금과 함께 중산층 이하 국민들의 핵심 노후준비수단이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국민연금을 도입한 여러 국가는적립방식을 포기하고 부과방식으로 전환했다. 한국이 기금소진이후 부과방식으로 바꾼다면 소득 총액 대비 국민연금보험료율이 2050년에는 22.7%, 2060년에는 29.8%, 2070년에는 33.4%까지 치솟을 것으로 우려된다. 미래세대 착취를 막기 위해서라도 기존 적립방식 존속기간을 늘려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정부는 평균수명이 갈수록 늘어나는 현실에서 국민연금 보험료 부과 기반을 확충하면서 OECD 평균보다 낮은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난제를 해결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청년들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줄이면서 제도의 지속가능성도 높이는 '솔로몬의 선택'을 하루속히 내릴 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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