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1.16 16:53
국회입법조사처와 신동근 국회보건복지위원장이 주최한 '의사인력 증원'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국회입법조사처와 신동근 국회보건복지위원장이 주최한 '의사인력 증원'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2021년 현재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의대 졸업생 수는 7.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 14.2명의 절반 수준이다. 평균에 도달하려면 의대 졸업생 수가 지금보다 3563명 늘어나야 한다. 2006년부터 18년째 동결된 의대 정원(3085명)이 2배 이상 커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13명이고, 한의사를 포함해도 2.56명이다. OECD 평균 3.73명과 비교하면 57~69%에 그친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8만명, 한의사를 포함해도 6만명 가량 많아져야만 평균에 다가선다.

의사와 근로자 평균 임금 비교. (출처=김윤 교수 발표문) 
의사와 근로자 평균 임금 비교. (출처=김윤 교수 발표문) 

무엇보다 경제력에 비해 의사 수가 부족하다보니 의사의 수입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9년 현재 근로자 평균 연봉이 4158만원이었데 비해 대학 및 병원에서 일하는 전문의 연봉은 1억8266만원, 개원 전문의는 3억1672만원에 달했다. 개원 전문의 연봉은 2010년 1억6606만원에서 9년 만에 2배 가까이 급증했다. 

고령화로 만성질환 환자가 늘어나고 병상은 과잉공급된데다 실손보험까지 확대보급되면서 의사에 대한 수요는 커지고 있다. 의사의 지도 하에 진료 보조 행위에 나서는 PA(Physician Assistant)가 미국처럼 제도화되지 못한 것도 의사 몸값을 높이는 요인이다. PA 간호사는 병원 현장에선 처방 대행부터 수술 보조, 진단서 작성, 시술까지 맡지만 합법과 불법 사이에 걸쳐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칫 의료사고라도 나면 혼자서 책임을 지는 실정이다. PA 간호사 업무를 넓히고 책임범위도 명확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의사들의 반대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16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필수·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의사인력 증원,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지역간 의료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2차 병원 및 지역거점병원 의사와 개원의를 늘려야 한다”며 “현재 부족한 의사 수가 7500~9000명이다. 여기에 ‘응급실 뺑뺑이’ 해결을 위해 응급의학과 의사 400명과 배후 진료과 의사 800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OECD Health Statistics 2023 (출처=김주경 입법조사관 '현안 브리핑')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OECD Health Statistics 2023 (출처=김주경 입법조사관 '현안 브리핑') 

의대 정원을 늘려야한다는데 국민의 8할이 찬성하는 반면 의사의 8할은 반대한다. 대한의사협회는 현행 체제에서 정원을 늘려본들 미용·성형 의사만 늘어날 것이라면서 정부의 증원 정책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열린 의료현안협의체에 의협 협상단장으로 참석한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의장은 “인구 감소에 비해 의사 수 증가 속도가 빨라 2030년대 중반에는 의사 수가 OECD 평균을 넘기게 될 것”이라며 “필수의료 붕괴 원인은 고위험-저보상 구조다. 기형적 저수가에 의료소송 배상금은 10억원 이상이다. 의료 결과에 대한 형사처벌 판결 건수도 세계 1위인데 누가 힘들여 필수의료를 가겠냐”고 밝혔다. 소아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등의 전문의가 부족해 빚어지고 있는 필수의료 붕괴의 근원을 짚은 것이다.

의협은 ▲필수의료 수가 인상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제도 도입 ▲지역의료 투자 확대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원을 늘린다면 2020년 이상의 강경투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상태다.

이같은 의협 요구 중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 강화는 보건복지부가 이미 받아들여 추진 중이다. 면책 범위 확대는 의료사고 피해자 입장을 감안할 때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다만 의사 정원 자체가 대폭 늘어나지 않는다면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 부족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피해도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가 16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의사인력 증원' 전문가 토론회에서 토론문을 읽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윤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가 16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의사인력 증원' 전문가 토론회에서 토론문을 읽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와 관련, 김 교수는 “조건 없이 늘어난 정원을 의대에 그냥 주면 대형병원 환자 쏠림이 심화돼 2차병원이 붕괴되고 미니의대에 그냥 주면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이 심화되면서 지역 필수의료 문제 해결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적절한 의대 증원 방식’과 관련, 지역 간 의료격차와 의사 수 격차를 근거로 ‘대학’이 아닌 ‘지역’에 배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지역완결형 필수의료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의대 증원분을 국립대학에 배정하면서 지역 출신 선발비율을 80%로 높여 지역사회 중심으로 의대 교육을 실시하고 PA 프로그램 운영과 간호사 배출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필수의료 자체충족률, 사망률 등 지표에 따라 보상하고 건강증진기금 중 1조원을 지방정부 필수의료재정으로 지원할 것도 제언했다.

영리추구에 민감한 사립의대 증원은 효과가 자칫 떨어질 위험성을 갖는다. PA 제도를 정식 도입하고 명확한 임무를 제시하면서 관련 교육도 제대로 이뤄진다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김주경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이 16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의사인력 증원' 전문가 토론회에서 현안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주경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이 16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의사인력 증원' 전문가 토론회에서 현안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날 현안 브리핑에 나선 김주경 국회 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장은 의대 증원 배분과 관련, ▲17개 과소(過少) 의대 정원 공평 분배 ▲지역별 의대정원을 고려해 과소의대 우선권 부여 ▲지역별 불균형 문제를 고려해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증원 취지에 부합되도록 지역별 안배 등 3가지 방식을 제시했다. 의대 신설을 희망하는 지역(대학)은 전남(목포대, 순천대), 전북(군산대), 인천(인천대), 대전·충남(공주대, 카이스트), 경북(안동대,포스텍), 경남·부산(창원대,부경대) 등이다.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기준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사 선발전형을 통해 입학한 의대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10년간 특정 지역 또는 기관에서 의무복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의료인 면허를 발급한다는 지역의사제 도입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지역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를 별도로 양성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방안이다. 조건을 위반하면 면허를 취소하고 잔여기간 동안 재교부도 금지한다.

최근 10년 지역별 활동의사수 변동 (출처=김윤 교수 발표문)
최근 10년 지역별 활동의사수 변동 (출처=김윤 교수 발표문)

이와 관련,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드러냈다. 그는 “의무복무를 전제로 한 의사 양성을 기존 의대에 붙여서 시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우선 의대생 간 발생하는 위화감과 낙인효과를 받으면서 다닐 의대생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학 중 장학금을 주는 대신에 졸업 후 최소 2년에서 5년간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일하게 하는 공중보건장학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점만 봐도 나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의대생 중 공중보건장학생 지원자는 8~10명에 그쳐 모집인원 20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에 반해 간호대학생의 경우 2021년 경쟁률이 4.1대 1, 2022년에는 2.7대 1를 기록한 바 있다.

나 교수는 “새로운 공공의료대학을 설립, 새로운 교육커리큘럼 개발과 확산을 주도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존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1차 의료 및 필수의료 등 지역친화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받아 평가, 증원 방안을 제시하고 교육 결과 평가이후 정원 감원도 법률 개정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시도별로 공공보건의료인력 양성 의대 지정 및 설치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종사 의사 수 (출처=김윤 교수 토론문)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종사 의사 수 (출처=김윤 교수 토론문)

정부·여당의 의대 정원 확대 움직임에 더불어민주당도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다만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지역의대 신설, 지역의사제 도입이 반드시 포함되어야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가 갖는 약점을 보완하는 해법을 찾는다면 국민의힘도 야당 요구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치권은 더 늦기 전에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건강권을 보호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지역별, 전문과목별로 편중이 심한 것은 사실이다. 지역소멸을 방지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려면 의사 인력 증원을 통해 지역 내 필수의료 서비스를 확충하는 것이 발등의 불이다. 의협이 올바른 판단을 내려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기를 기대한다.

향후 어려운 작업 끝에 증원된 의사 인력이 수도권으로, 비필수의료분야로 몰린다면 정책 효과는 크게 떨어지게 된다. 지역 필수의료인력 양성과 의료취약지역 의사 인력 배치로 이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