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2.01 12:14

윤 대통령 "정부, 책임보험 시스템 만들어 의료인 형사리스크 완화해야"

(출처=이대목동병원 홈페이지)
(출처=이대목동병원 홈페이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이화여대 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 있던 미숙아 4명이 2017년 12월 16일 밤 심정지가 발생한뒤 81분 만에 연이어 모두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18년 1월 12일 사망 원인으로 시트로박터 프론디균 감염(패혈증)을 지목하면서도 직접적인 사망 이유와는 거리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과 경찰은 불법적 분주(分株)로 지질영양제가 오염됐다며 소아청소년과 교수들과 전공의, 간호사 7명을 업무상 과살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이중에서 교수 2명과 수간호사 1명은 구속됐다. 재판 과정에서 주사제 오염 외에도 다양한 병원균 전파 가능성이 드러나고 분주 행위의 합법성도 인정돼 모든 의료진은 1심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전혁(왼쪽 네 번째) 밑줄포럼 대표, 최재형(다섯 번째)국민의힘 의원, 박명하(여섯 번째) 서울시의사회 회장이 30일  세미나에서 다른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조전혁(왼쪽 네 번째) 밑줄포럼 대표, 최재형(다섯 번째)국민의힘 의원, 박명하(여섯 번째) 서울시의사회 회장이 30일  세미나에서 다른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윤용선 바른의료연구소장은 30일 국회도서관 지하 1층 소회의실에서 열린 ‘의료사고의 책임 감면과 필수의료 확대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 “필수의료에 종사하다가 환자가 사망하면 언제든 구속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준 사건으로 필수의료 분야 기피의 시발점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밝혔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이 떨어지면서 소아 중환자 진료시스템의 붕괴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윤 소장은 “2010년 미국 영주권자인 A씨가 병원에서 하악수술을 받은 후 호흡곤란을 호소하자 원인을 잘못 파악한 의료진이 아티반을 투여해 사망했다”며 “1심 법원은 피고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80%로 제한해 인정했고 2심도 3분의 2로 수정했으나 대법원은 2016년 원심을 파기환송하고 병원 책임을 100% 인정했다”고 전했다. 

법원은 환자의 체질적 소인, 질병의 위험도 등 환자의 잘못과 무관한 요소에 의해 손해가 발생했거나 손해 정도가 확대된 경우 과실상계의 법리를 유추 적용해 병원 측 책임비율을 낮춰왔으나 대법원 판결로 상한선이 사라진 것이다. 분만과정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사망사고로 최근 4억원 배상 판결이 나오면서 필수의료 기피현상은 심화되고 의사들은 방어진료에 급급한 실정이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30일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30일 "오늘의 세미나는 작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매우 무겁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의료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 의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원성훈 기자)

한국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고교 최우수 졸업생으로 이뤄진 의사들의 실력 또한 뛰어나다. 필수의료분야에 종사할 인력이 있는데도 필수의료가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는 데에는 의료사고에 대한 법원의 고액 배상판결과 실형 선고가 이어지는 영향이 적지 않다.  

필수의료 분야 의료행위는 사람 생명과 직결돼 의료사고 발생 확률과 배상액수가 높다. 그만큼 의료인의 심리적 부담도 크다. 이런 실정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의료사고를 가혹하게 처벌하는 흐름이 지속된다면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등 필수의료 전문의가 되려는 전공의가 더 줄 수밖에 없다. 

큰 사고를 당했거나 중증질환에 걸린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분야가 아닌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에 의사들이 몰리는 이유는 한마디로 위험에 비해 보상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의 공익성과 시장실패 우려를 감안, ‘과잉처벌-과소보상’ 구조부터 균형을 찾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30일 ‘의료사고의 책임 감면과 필수의료 확대를 위한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읽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30일 ‘의료사고의 책임 감면과 필수의료 확대를 위한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읽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30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주최한 ‘의료사고의 책임 감면과 필수의료 확대를 위한 세미나’ 개회사를 통해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검사가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는 연평균 754.3건으로 일본의 입건 송치 건수의 14.7배, 영국 기소 건수의 580.6배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최 의원은 “한국이 진정한 의료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의료인들이 온전히 의료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덜어주고 의료분쟁을 최소화해 의사와 환자를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감이 가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외국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기소 건수는 의료사고가 나면 곧바로 의사에 대한 형사책임 추궁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입증하는 수치다. 

한국은 진료거부를 금지한다. 전국 모든 의료기관과 의료인은 원하지 않아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된다. 의료수가 결정과 진료비·요양급여 심사까지 국가가 통제하는 현행 건보 체제에서 필수의료분야 과실에 형사처벌이 남발된다면 위험한 환자 진료를 거부할 권리를 달라는 의사의 요구가 힘을 얻을 수 있다.

국가가 의료분쟁에서 별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 일본은 의료배상책임보험제도를 통해 환자에게 신속히 보상하면서 의료인의 배상금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설명이다. 국가보건서비스소송국(NHSLA)를 설립, 운영하면서 의료과오 소송에 따른 보상처리를 돕고 있는 영국의 사례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현두륜 법무법인 세승 대표변호사는 이날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의 내용과 책임 감면 요건’ 발제를 통해 “의료사고로 인한 재판에서 의료인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인정하거나 실현을 선고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면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필수분야에서 의료인의 민형사 책임을 제한할 필요성에 적극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형사책임 감면이나 친고죄 도입보다 반의사불벌죄 확대, 별도의 양형기준 마련, 의료과실과 인과관계에 대한 엄격한 판단 등 형사재판 실무의 개선을 제안한다”며 “과실책임주의를 채택한 현행 법제 속에서 의료사고에 인한 손해배상책임만 완화하는 것보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구상권 제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의 보상 확대, 의약품 부작용피해구제 사업 개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고 밝혔다.

의료진의 실수에 따른 의료사고로 숨지거나 병원내 감염으로 다른 질환을 얻어 숨지는 환자는 끊이지 않고 있다. 유가족의 충격과 상심에 대한 보상이 적절히 이뤄져야할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19일 충북대에서 열린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에서 의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19일 충북대에서 열린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에서 의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19일 충북대에서 열린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 혁신 전략회의' 마무리 발언을 통해 "왜 소아과 등 필수진료 부문에 의사가 부족하냐, 저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대목동병원 사태 같은 것이 작용했다고 본다"며 "정부가 책임보험 시스템을 만들어 (의료진의) 형사 리스크를 완화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의료인 형사처벌특례 범위 확대 ▲필수의료분야 의료배상책임보험 가입 지원 등의 혁신전략을 보고했다.

‘응급실 뺑뺑이’사태를 막으려면 필수의료영역 내에서 발생하는 분쟁은 공무의 영역으로 간주, 국가가 책임을 진다는 원칙을 정할 필요성이 크다.

의사가 필수의료분야에서 사고를 냈다해도 교통사고처럼 보험회사와 피해자 측과의 협상이나 합의, 소송으로 보상을 추진, 의사는 환자 치료에 전념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료사고가 났다고 해도 해당 의료진의 고의적인 중과실이 없다면 수사와 기소단계에서 형사처벌을 염두에 두지 않는 선진국 사례도 살펴보면서 의료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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