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6.03 07:30
무이자 대출 지원 '빚에 빚 더하는 격'…'보증금 채권 매입 방안' 포함 의견 나와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전세 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시행된 가운데 800명에 육박하는 세입자가 피해 인정을 신청했다. 다만 특별법만으론 지원대상의 사각지대가 생겨 후속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지난1일부터 본격적인 피해자 지원에 나섰다. 지난 2일 현재 지방자치단체들 사전접수를 포함해 795명의 임차인 전세사기 피해 인정을 신청했다.
특별법에 따라 금융당국은 피해자 지원을 위해 금융회사와 보증사 등에 협조공문과 비조치의견서를 발송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최장 20년간 무이자로 전세대출을 분할상환할 수 있고, 연체정보 등록 유예를 통해 추가 대출 등 정상적인 금융생활도 가능하다. 1년간 LTV(주택담보대출비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도 완화되며 대출 문턱도 종전보다 낮아진다.
주거안정 지원도 이뤄진다. 특별법에 따르면 최우선 변제 대상에서 제외된 피해자는 정부가 최우선 변제금만큼 최장 10년간 무이자 대출을 지원한다. 또 HUG의 경·공매 대행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임차주택 거주를 희망하는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거나 공공매입을 통한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피해자들은 관할 지자체에 관련 서류를 갖춰 피해자 신청을 할 수 있다. 접수가 이뤄지면 관할 지자체 조사 및 국토부 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60일 이내 피해자 여부가 결정된다.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피해자 구제에 한줄기 희망이 생겼지만 피해자들은 지원 대상을 두고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다며 실효성 있는 후속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입주 전 전세 사기를 당했거나 이중 계약 사기 피해를 입은 경우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30대 피해자 A씨는 2021년 9월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거주하기 위해 원룸 전세 계약을 맺었다.
전세보증금 1억2000만원 중 3600만원은 서울시로부터 무이자 보증금 지원을 받았고 4000만원은 2% 금리의 버팀목 대출을 받았다. 나머지 4400만원은 그간 일해서 모은 돈으로 충당했다.
A씨가 이사 당일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후 계약금 600만원을 뺀 잔금 1억1400만원을 계좌로 보내자마자 집주인은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당시 집 주인이 개인 사정으로 부동산에 직접 오지 못한다며 계좌 이체를 권한 공인중개사는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이전 세입자에게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차씨와 또 전세 계약을 맺는 '이중 계약'을 한 상태였다.
A씨는 집주인을 상대로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을 내 지난해 4월 승소했지만 여전히 보증금 1억2000만원 중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전셋집에 발을 들이지도 못한 채 사기 피해를 본 셈이다.
그는 "이후 2년 가까이 지인과 친척 집을 전전했다. 계약 만기인 오는 9월에 대출 원금 7600만원을 갚아야하지만 특별법 대상자가 아니라 지원받을수 없어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이미 대출에 허덕이는 피해자들에게 대출을 다시 받으라는 방안은 '빚에 빚을 더하는 격'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피해자 B씨는 "특별법 시행으로 보증금 일부라도 돌려받을 줄 알았다"며 "무이자 대출 지원은 사실상 또 다른 대출 빚이 생기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특별법 지원 대상 범위가 좁은 만큼 지원 대상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대출 지원 중심인 특별법이 결코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책일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특별법에 공공이 근저당과 보증금 채권을 매입한 후 경·공매나 매각으로 매입 비용을 환수하는 '보증금 채권 매입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특별법의 한계에 공감하고 있고 추가 입법 보완에 대해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조만간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금액을 되돌려주는 것이 최선의 결과이지만 전세는 개인간 민간계약이다보니 정부가 나서 피해금을 물어주는 방법은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국토부가 제시한 전세사기 재발 및 피해자 지원방안을 선제적으로 시행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문제를 보완수정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