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11.24 10:28

외환은행 매각 문제를 놓고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국제분쟁에서 한국 정부가 승소했다. 2012년 11월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중재판정부는 2022년 8월 론스타의 일부승소 판정을 내렸으나, 2023년 7월과 9월 양측이 각각 이에 불복해 판정 취소를 신청했고, 이번에 한국 정부의 완승 판결로 모든 배상책임이 소멸했다.
한국 정부의 승소 판정이 알려지자마자 황당무계하고 우스꽝스러운 정부 발 치적 공방이 벌어졌다. 이재명 정부의 성과라 치켜세우던 정부·여당은 업적 가로채기 비판을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모두 다 잘했다"라는 더 낯 뜨거운 결론으로 겨우 논란을 수습했다.
이번 배상책임 취소 판정은 대한민국 정부가 자초한 수많은 불행 중 유일한 다행일 뿐, "누가 누가 잘하나" 치적 경쟁 거리가 될 수 없다. 배상책임이 없어졌다고 외환은행 불법 매각의 풀지 못한 의혹과 정치적 책임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론스타 사태의 시작은 2003년 외환은행 불법 매각이다. 파산 직전 상황이 아니었음에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해 부실한 은행으로 둔갑시키고, 론스타가 은행 인수 자격이 없는 산업자본이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모르는 척 인수를 승인했다.
불법 매각을 주도했던 장본인은 민주당 정권이다. 민주당이 갑자기 당시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으로 외환은행 매각 실무를 담당했던 현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을 호출해 애먼 짓을 하고 있지만, 불법 매각 원죄가 노무현 정부라는 사실을 덮을 수는 없다.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싼 부당거래는 정권을 가리지 않았다. 2012년 1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특혜적 인수를 밀어붙여 론스타에 먹튀의 길을 열어준 것은 이명박 정부다. 론스타가 여야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한심한 것은 외환은행 헐값 인수의 핵심 인물로 수사를 받던 스티븐 리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도주를 막지 않았고, 체포 영장을 발부해 검거를 해놓고도 인도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결국 미국 연방법원은 2025년 8월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대한민국 정부의 송환 요청을 기각했다. 이로써 론스타 사태의 몸통 스티븐 리는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로써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기회도 완전히 사라졌다.
2006년 해외 도주 후 17년 동안 소재지가 공개된 상태에서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는데도 왜 잡아가지 않았냐는 미 연방법원 판사의 뼈 있는 한마디는 어떤 정권이든 론스타 사태의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2023년 9월 야당인 민주당의 힐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가 판정 취소를 신청하고 끝까지 다퉈보겠다고 작정한 데에는 어쩌면 당시 법무부 장관이 그 누구보다 론스타 사태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검찰 수사팀 출신이었다는 우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배상책임 취소 판결과 스티븐 리의 국내 송환 실패로 론스타와 대한민국 간 질긴 악연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민주당 정권이 씨앗을 뿌리고 보수당 정권이 키운 론스타 사태는 영구 미제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절망스러운 현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아직 허약한 수준이었던 20여년 전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국가권력과 결탁한 부당거래를 막아낼 힘이 없는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조혜경 경제민주주의21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