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11.26 12:00

[뉴스웍스=차진형 기자] 연금고수는 연 16%의 수익률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주로 적립금의 80% 가까이를 펀드·ETF 등 실적배당형 상품에 배분하고 조선·방산·원자력 등 국내 테마형 ETF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은행·증권·보험 3개 권역 대표 금융회사에서 3년 이상 DC형 퇴직연금 계좌를 유지하고 적립금 잔고가 1000만원 이상인 가입자를 선별했다. 이어 연령대별 수익률 상위 100명씩, 총 1500명을 '퇴직연금 고수 그룹'으로 지정했다.
◆3년 연평균 16.1%…평균 대비 최대 9배 웃돈 수익률
26일 금융감독원의 '우리나라 퇴직연금 투자백서Ⅱ'에 따르면 연금고수의 1년 수익률은 38.8%, 3년 수익률은 16.1%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체 가입자 평균 수익률은 1년 4.2%, 3년 4.6%와 비교하면 연금고수는 3~9배 높은 수익을 자랑한다.
권역별로는 상대적으로 공격적 투자 성향이 강한 증권사 가입자 고수 그룹의 3년 연평균 수익률이 18.9%로 가장 높았고, 은행 15.1%, 보험 13.1% 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로 보면 40대 구간이 가장 높은 봉우리를 형성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회초년생 위주의 30대 미만은 투자경험이 짧고, 60대 이상은 은퇴를 앞두고 현금흐름을 고려한 안정적 운용 성향이 강하다"며 "중·장년층인 40대가 가장 적극적인 투자 성향을 보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실적배당 비중 79.5%…'테마형 ETF+대기성 자금' 기본 전략
고수들의 자산 구성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고수들의 자산배분을 보면 실적배당형(펀드·ETF·회사채 등) 비중은 79.5%, 원리금보장형(예·적금·보험·정부보증채 등) 비중은 20.5%로 일반 가입자와 확연히 다른 공격적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고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은 대기성 자금 비중이 8.6%에 이른다는 점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빠르게 매수·매도가 가능한 '현금 비축분'을 확보해 두고, 특정 업종·테마에 기회가 왔을 때 즉시 진입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의미다.
권역별로는 증권 권역 고수들의 실적배당 비중이 83.6%로 가장 높았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가입자가 많은 은행(80.2%)과 보험(73.4%)에서도 고수 그룹만큼은 실적배당 비중이 70~80%대에 달했다.

◆주식형 펀드 70%, 국내 위주…"국내 증시 회복 베팅 적중"
펀드 유형별로 보면 고수들의 집합투자증권(펀드) 중 주식형 비중이 70.1%, 혼합채권형이 9.0%로 뒤를 이었다.
퇴직급여법상 위험자산 투자한도가 70%로 제한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혼합채권형 비중 확대는 주식 비중을 규정 상한선까지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투자 지역별로는 국내 펀드 61.6%, 해외 펀드 31.8%로 국내 시장에 대한 비중이 해외의 두 배 수준이다. 올해 6월 말 코스피는 3072선이었으나 10월 말 4087까지 33% 급등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퇴직연금 고수들은 향후 해외보다 국내 증시의 상승 여력을 더 높게 본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3분기 이후 국내 증시 강세 흐름이 이어지면서 적립금 운용 성과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조선·방산·원전·AI…"국내 테마 ETF로 고수익 뽑았다"
고수들이 실제로 가장 많이 담은 상품은 국내 테마형 ETF였다. 적립금 기준 상위 10개 펀드 중 8개가 ETF였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조선·방산·원자력·중공업·AI 전력설비 등 특정 업종에 집중된 상품이었다.
관련 종목들이 2025년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주식시장에서 기대되는 업종으로 전망됨에 따라 적립금 운용 전략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다.
해외 펀드의 경우 미국 빅테크·테슬라·미국 기술주 지수 등 성장주 중심 상품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특히 고수들은 펀드보다 ETF를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실시간 매매가 가능하고, 특정 업종·테마에 집중 투자할 수 있는 ETF의 특성이 적극적인 운용을 선호하는 고수들의 투자 성향과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반 가입자들이 장기투자 시 주로 선택하는 TDF(Target Date Fund)는 고수들의 포트폴리오에서 비중이 크지 않았다. 일부 연령대에서 TDF가 상위 투자 상품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테마형·지수형 ETF 위주의 공격적 운용'이 주류를 이뤘다.

◆"고수처럼 못해도, 원리금보장 80%는 줄여야"…디폴트옵션·TDF 활용 필요
연금 초보자가 고수와 같은 수익률을 내긴 쉽지 않다. 자칫 무리한 투자로 손실을 볼 수 있다. 이에 금감원은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과 TDF 펀드를 실질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미리 운용방법을 지정해 두면, 추가 지시 없이도 적립금 일부를 실적배당상품으로 자동 운용해주는 제도다. TDF는 가입자의 은퇴 시점에 맞춰 주식·채권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상품이다.
최근 1년 기준 TDF 수익률(7.1%)은 원리금보장형 상품(3.4%) 대비 약 2배 수준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100세 시대에 퇴직연금은 사실상 노후 생활비의 기둥 역할을 하게 된다"며 "퇴직연금 고수들의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지만, 원리금보장 위주의 초보적 운용에서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도 노후자산 형성에 큰 차이가 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장 변화에 관심을 갖고, 필요하다면 금융회사의 디폴트옵션·TDF 등 전문가 설계 상품을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