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5.14 18:51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인도·인도네시아·태국·멕시코 등으로 대표되는 신흥 시장인 '글로벌 사우스(아시아, 중남미, 중동아프리카)'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 등 국내 주요 그룹들은 인도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사우스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지역에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미국 정부의 중국 무역·관세 규제가 배경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10~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중 고위급 무역 협상을 진행하고, 145%의 관세율을 90일간 낮추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조치가 한시적인 만큼, 높은 관세가 다시 부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LG·삼성·현대차·포스코, 신흥 시장 투자 강화
LG전자는 최근 인도 현지 공장인 스리시티 가전공장을 착공했다.
지난 1997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 2006년 마하라슈트라주 푸네에 공장을 설립한 이후 세 번째 현지 공장이다. 스리시티 공장을 설립하면 인도 전 지역은 물론 중동, 방글라데시·스리랑카 등 인접 국가에 제품을 더욱 활발하게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는 미국 등 선진 시장 비중이 크지만, 글로벌 사우스의 성장을 주목하고 있다"며 "인도·인도네시아 등 신흥 시장 성장세가 가파르다. 이에 따라 아시아·동남아·중동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전자가 20년 만에 인도에 세 번째 공장 건설을 결정한 것은 현지에서 가전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세탁기, 에어컨 보급률이 각각 30%, 10%로 낮은 편이다.
이와 관련, 조주완 LG전자 CEO는 최근 경영진들과 함께 LG전자 인도네시아, 베트남 소재 법인을 방문했다. 올해 초 인도 출장에 이은 후속 행보다. 조 CEO는 최근 개최된 주주총회에서 '올해부터 성장전략이 '지역'이라는 전략의 축을 더 해 잠재력이 높은 유망 지역에서 성장 가속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도 인도 지역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태국에서 기술 콘퍼런스를 여는 등, 동남아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일환으로 인도 타밀나두주 공장에 약 1700억원을 투입한다. T.R.B. 라자 타밀나두주 산업투자부 장관은 최근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삼성전자가 첸나이 인근 스리페룸부두르 가전공장에 100억루피(약 1686억원)를 투자한다”며 “이는 타밀나두 노동력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는 조치”라고 밝혔다.
인도 시장은 삼성전자 가전 부문이 세계 2~3위권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스리페룸부두르 가전공장을 통해 현지에서 냉장고, 세탁기 등을 생산 중이다. 연간 120억달러(약 17조3000억원)에 달하는 삼성인도 매출의 약 20%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는 태국 방콕에서 올인원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 테크 세미나를 개최해, 싱가포르·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태국 등에 자사 제품을 널리 알렸다. 현장에는 동남아 각국 주요 매체 기자와 인플루언서 120여 명이 참석했다. 삼성전자는 또 지난해 말부터 동남아 8개국 등에 생활가전 제품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0월 인도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4억5000억원을 조달하며 '인도 자동차 시장 1위 등극'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차는 마하라슈트라주푸네에 위치한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을 인수, 20만대의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또 타밀나두주와 10년간 2000억루피(약 3조2000억원) 규모의 사업 확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또 연간 생산 18만대 규모인 배터리팩 공장을 첸나이 공장 내에 건설하고 있다.
최근 성 김 현대차 사장은 인도네시아 아이르랑가 하르타르토 경제조정부 장관과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생산하는 차량에 자국산 부품을 적극 활용해 현지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현대차는 80%에 달하는 현지화율을 구현해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 가격 경쟁력에서도 강점을 가지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인도 최대 철강그룹인 JSW그룹과 현지 일관제철소 합작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계열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동남아 6개국에 10개 이상 현지법인을 두고 매출을 늘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법인인 PT BIO INTIAGRINDO는 지난해 팜유 프로젝트를 통해 612억원의 순이익을 낸 데 이어, 말레이시아에서 국영기업과 함께 석유·가스 탐사를 확대하고 있다. 또 베트남에서는 22억달러(약 3조1266억원) 규모의 LNG 발전소 사업권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인구 많고 저렴한 인건비 '장점'…지역 진출 전략 요구돼
전문가들은 글로벌 사우스 시장을 대상으로 한 우리 기업들의 투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노사 문제, 통관절차·인증 등 다른 점이 많고, 중저가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만큼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관세를 한시적으로 크게 낮췄지만, 원상 복귀될 가능성이 크다"며 "우리나라는 반도체, 자동차 부품, 소재 등 중간재를 중국 대신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서 판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지원 무역협회 연구원은 "신흥국 중 관세 영향을 받는 멕시코는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은 여전히 유망하다"며 "이 가운데 인도는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투자를 많이 진행하고, 고급 인력을 양성하려는 움직임도 보여 기대감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신흥국은 통관 절차나 인증이 달라서 주의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제품을 수출할 때 기술 사항이 어떤지와 진출 환경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가별로, 맞춤형으로 공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사우스는 중요한 시장으로, 특히 인도는 소비가 늘어나는 시장으로 평가된다"며 "현지화 전략에 따라 시장에 깊숙이 진입할 필요가 있다. 제품을 수출해서 팔기보다는 현지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게 우선순위"라고 조언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사우스 시장 진출은 미국 정부의 관세를 피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의도인 만큼, 관세율을 잘 따져봐야 한다"며 "인도는 관세율이 베트남보다 낮아 대체지로 꼽히고 있다. 숙련된 노동자들이 많이 포진된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