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5.21 20:00
과제도 산적…사업단위 수 줄이고 집중도 높여 시너지 높이는 게 급선무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SK그룹이 올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선택과 집중'에 나서고,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밸류체인을 크게 정비하는 등 리밸런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SK그룹 리밸런싱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데, 인공지능(AI)에 사활을 걸고 SK온 살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반도체 밸류체인 정비와 에너지 솔루션 사업 질적 성장에도 중점을 두고 리밸런싱에 나서고 있다.
SK그룹의 리밸런싱은 중복 사업을 과감하게 통합하고 자회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계열사 수를 크게 줄이고, 미래 유망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방향으로 사업 체질을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SK그룹 관계자는 "SK그룹의 리밸런싱은 전체 포트폴리오가 대상이고 특정 사업군으로 보는 게 아니라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배치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AI·반도체·에너지 등에 집중하고 있으며 SK온을 살리는 것도 하나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SK그룹의 리밸런싱이 AI 집중화 및 SK온 살리기에 포커스를 맞춘 것으로 분석한다.
박 대표는 "SK그룹은 AI 사업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주요 기업을 인수해 M&A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스스로 만든 것이 SK온이 유일한 만큼 성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배터리 시장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SK온이 성공할지 여부는 그룹 역사의 분기점이 될 정도로 중요하다"며 "반도체 사업은 기존에 약한 것들을 뗐다 붙였다 하며 사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재무 건전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SK그룹이 IPO를 준비한 회사가 있었는데 상황상 IPO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알짜 기업 매각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는 SK하이닉스가 메모리 사업을 잘하고 있는데 AI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SK텔레콤을 적극 활용하려 하고 있다"며 "2차 전지 사업은 캐즘이 장기화해 보완책을 제시하는 게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SK리벨런싱은 부진한 배터리 사업을 살리고 AI·통신·에너지에 집중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이뤄지고 있다. 사업 단위 실적이 안 좋을 때 리밸런싱을 진행한다"며 "하지만 SK텔레콤이 해킹 사태를 맞음에 따라 돌발 변수가 생겼다. SK그룹의 캐시 카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오일선 CXO 연구소장은 "SK그룹의 리밸런싱은 미래 성장 동력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핵심 산업에 집중하면서도 경영 효율성에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AI 경쟁력 강화…인프라 사업, SK브로드밴드에 몰아준다
최 의장은 이번 리밸런싱에서 AI 분야에서 인프라 투자를 강화해 미래 사업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투자도 강화하고 있다. AI 인프라 사업을 SK브로드밴드에 몰아주고 사업 간 시너지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 12일 SK C&C의 판교 데이터센터를 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히면서, 서초·가산·일산 등 9개의 데이터센터를 거느리게 됐다. AI 산업이 발전하면서 최근 데이터센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데이터센터 간 시너지를 노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서비스 분야의 핵심 인프라 사업자로 자리매김하고, AI·클라우드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한 성장 기반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SK C&C는 사명을 'SK AX'로 변경하고, 10년 안에 '글로벌 톱 10 AI 전환(AX)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전략이다. SK AX는 인프라 부문에서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등과 협력해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자원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지원하게 된다.
SK AX 관계자는 "이번 전략은 SK AX가 고객의 페인포인트(고충)를 AI와 최신 기술로 해결하고, 본질적인 사업 경쟁력 확보를 지원하는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명확히 제시한 것"이라며 "국내 최초 AI 혁신 기업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SK텔레콤의 역할도 주목된다. SKT는 SK그룹이 AI 사업에 집중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SKT는 지난해 12월 SK AK와 AI·IT 인력을 한데 모아 'AIX(AI 전환) 사업부를 공식 출범했다. SKT의 AI인 '에이닷'은 큰 인기를 끌고 있어, 생성형 AI 비서 서비스인 '에이닷 비즈'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SK온 살리기 위한 흡수합병 마무리
SK그룹은 지난해부터 진행된 리밸런싱에서 SK온을 살리기 위해 흡수 합병을 진행했다. SK온은 원유·석유제품 트레이딩 업체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및 탱크 터미널 기업 SK엔텀과 합병을 진행해 올해 초 마무리했다. 이를 통해 재무 구조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된다.
또 에너지 분야에서 SK이노베이션과 가스 자회사인 SK E&S를 흡수해 자산 106조원, 매출 88조원 규모의 아시아태평양 최대 민간 에너지 회사를 출범시켰다. 양 사의 합병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실적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SK온을 살리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SK온은 11분기 연속 적자를 끝내고 지난해 3분기에 흑자 전환했지만, 다시 1분기 만에 적자로 전환됐다. 지난해 4분기에는 3594억원, 지난 1분기에도 2993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엔무브의 IPO도 추진 중이다. SK엔무브가 재무적투자자(F1)로부터 자금을 마련하면서 약속한 IPO 시한인 2026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이 이미 증시에 상장돼 있는 상황에서 SK엔무브가 IPO를 추진하면서 중복 상장 논란이 일고 있다. SK엔무브의 상장 이후에는 SK이노베이션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도체, 중복 사업 비효율 걷어내고 시너지 높이는 데 중점…SK머티리얼즈 거취 '관심'
반도체 분야의 리밸런싱도 중복 사업의 비효율을 걷어내고 미래 사업간 시너지를 끌어올려 자회사의 지분 가치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12일 SK㈜의 사내 독립기업(CIC)인 SK머티리얼즈 산하 반도체 소재 자회사 4곳인 SK트리켐·SK레조낙·SK머티리얼즈제이엔씨·SK머티리얼즈퍼포먼스를 자회사로 편입하겠다고 밝혔다.
SK에코플랜트는 자회사 편입으로 반도체 제조 주요 공정에 필요한 핵심 소재 등에 대한 공급 역량을 내재화했다. 또 지난해 합류한 산업용 가스회사인 SK에어플러스, 반도체 모듈 회사인 에센코어, 리사이클링 업체인 SK테스를 더해 '반도체 종합 서비스' 회사로서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SK에코플랜트는 친환경 사업, 데이터센터, 배터리 재활용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온 가운데, 반도체 소재 자회사 편입은 이익구도를 고도화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SK에코플랜트가 올해 건설사를 뛰어넘어 '고수익 첨단소재 복합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을 지를 관심을 모은다. 체질 개선에 성공한다면 IPO 등 중장기 전략 수립에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프리 IPO 당시 계약 조건에 따라 내년 7월까지 IPO를 마쳐야 한다.
국내 반도체 기업 1위로 등극한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제조 기업으로, 지금까지 친환경 사업을 영위해 오던 SK에코플랜트는 반도체 소재 기업으로 거듭난다.
잇따라 자회사를 분리한 SK머티리얼즈의 향후 거취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SK머티리얼즈는 현재 SK에서 하나의 사업부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지난해 자회사인 SK스페셜티를 매각하고 또 다른 자회사인 SK에어플러스는 SK에코플랜트에 편입됐다. 이를 통해 SK머티리얼즈의 매출이 80%가 축소돼 20%만 남게 됐다. 이번에 4개 회사를 SK에코플랜트로 넘기게 돼, 자회사 중 SK머티리얼즈그룹코틴만 남게 됐다. 이에 따라 매출액은 미미한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SK머티리얼즈 관계자는 "자회사 분리에 따라 SK머티리얼즈 매출이 크게 줄 수는 있지만 실적이 SK와 묶여서 나가고 별도로 공지하지 않는다"며 "SK머티리얼즈가 다른 회사에 흡수될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리밸런싱으로 사업체 수를 크게 줄이고, 사업을 연결해 시너지를 냄으로써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황용식 교수는 "SK그룹이 그동안 계열사 수를 늘려왔기 때문에 사업 집중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역량 있는 사업 단위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리스트럭션'으로 단위 수를 줄이고 집중도를 높이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며 "SK그룹은 SK온을 한 축으로 키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AI·에너지·통신·배터리 각 사업 부문을 연결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평가했다.
박주근 대표는 "SK그룹이 많은 회사를 인수하고 상장시켜 파이낸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며 "무엇보다 그동안 우후죽순처럼 늘려온 자회사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오일선 소장은 "미·중간 무역 갈등을 비롯해 환율 변동 등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높다"며 "이 같은 여건을 고려해 리밸런싱 방향을 설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