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9.28 08:00
SK하이닉스·샌디스크, 1세대 HBF 개발 착수…공동 표준화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제2의 고대역폭메모리(HBM)로 평가되는 '고대역폭낸드플래시(HBF)'가 메모리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SK하이닉스는 미국 샌디스크와 공동으로 인공지능(AI)용 HBF 표준화 준비를 위한 협력에 나섰다. 이와 관련,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HBM에서 뒤진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HBF 개발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새 전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메모리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HBM은 AI 시대에 필수적인 고성능·고효율 메모리로, D램을 수직으로 쌓은 후 실리콘관통전극(TSV)으로 연결,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인 제품이다. 반면, HBF는 낸드플래시를 HBM처럼 적층하는 차세대 구조로, D램이 아닌 낸드플래시를 쌓아 올린다는 점에서만 HBM과 차이가 있다.
SK하이닉스는 샌디스크와 지난 8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공동 기술사양 정의 및 생태계 조성에 나서기로 했다. 양사 협력은 AI 추론(인퍼런스) 워크로드 처리에 최적화된 고성능·대용량 메모리 솔루션 구축을 목표하고 있다.
양사가 합작을 통해 개발할 HBF 시제품은 기존 HBM 대역폭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8~16배 이상 저장용량을 제공하는 제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대형 데이터센터, 중소 규모 기업, AI 시스템 등 다양한 AI 인프라 환경에서 활용될 수 있다. 기존 HBM3E는 개당 48GB(SK하이닉스 16단 기준) 용량을 제공하므로, 최대 768GB 데이터 용량을 가지게 된다.
샌디스크는 BiCS 기술과 CBA 웨이퍼 본딩 기술을 기반으로 설계한 HBF를 발표했으며, 올해 개최된 메모리·스토리지 미래기술 콘퍼런스에서 '최고 혁신 기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회사는 내년 하반기 HBF 샘플을 공개할 예정이어서, 2027년부터 이를 탑재한 AI 추론 장비가 본격 출시될 것으로 관측된다.
양사는 AI 산업의 기하급수적 메모리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해법으로 HBF가 핵심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양사는 반도체 표준화 기구인 JEDEC에서 HBF 표준화 작업에 나설 계획"이라며 "HBF 제품은 각 사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다. 표준화가 되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어렵기에 공동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자체적으로 HBF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제품 출시 시점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메모리 반도체 맹주인 삼성전자 역시 HBF 개발에 참전할 것으로 보인다.
신영증권은 지난 22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HBF 시장에 가장 적극적인 참여가 예상되는 기업은 삼성전자라고 예측했다.
박상욱 신영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HBF 사업 계획을 밝힌 적은 없으나, 시장 가시성이 확보될 경우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HBM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삼성전자가 AI 메모리 분야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단종됐던 초고속·초저지연 낸드플래시인 Z-NAND 부활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차세대 AI 메모리 반도체 개발과 관련된 기술 진척과 로드맵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HBF 개발과 관련해 "현재 개발 중인 제품에 대해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교수는 "AI 시장이 확대되면서 메모리 업계에서 D램을 적용한 HBM 공급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낸드플래시와 동반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HBM의 부족한 부분을 낸드플래시가 어떻게 보완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HBF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는 AI가 소요하는 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의 대형언어모델(LLM)은 이제 글자만 읽는 게 아니라, 영상이나 이미지도 생성하면서 더 큰 저장용량이 필요다. 결국 AI 발전을 위해서는 초고속화는 물론, 초대용량이 가능해져야 한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장기간 보존되는 '비휘발성 메모리'인 반면, D램은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도 사라지는 '휘발성 메모리'다. D램 기반인 HBM은 속도는 빠르지만, 용량 확장에 불리하고, 낸드플래시는 속도는 느리지만, 용량 확장이 용이하다. 결국 HBF는 기존 SSD보다 훨씬 빠르면서도 낸드플래시 특유의 대용량을 유지할 수 있어 AI 모델이 필요로 하는 '웜 데이터' 저장소로 매우 적합하다.
HBF는 2027년 상용화를 시작으로 2030년부터 시장이 본격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영증권은 오는 2030년 HBF 시장 규모는 120억달러(약 16조9632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같은 해 예상되는 HBM 시장 규모의 10.2%에 달하는 수준이다. 또한 2030년 AI 칩 출하량이 1982만장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HBF 가격이 일반 낸드플래시 가격의 3.5배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HBM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는 최근 진행한 국제첨단반도체기판·패키징산업전 기조연설에서 "삼성전자과 SK하이닉스의 현재 실적은 HBM으로 결정되지만, 10년 후엔 HBF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낸드플래시는 D램보다 느리지만, 용량은 10배 크다. AI 메모리 보완재 역할을 하게 할 것이다. D램과 낸드를 모두 생산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두 기업 모두에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