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2.03.12 00:05

주주환원율 중국보다 낮은 28% 불과…선진국 수준 70%대로 올려야

윤석열(왼쪽 세 번째) 국민의힘 대통령 당시 후보와 이재명(왼쪽 일곱 번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1월 3일 한국거래소 개장식 및 대동제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배경으로 '증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국민의힘 홈페이지)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으로 결정되면서 국내 자본시장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윤 당선인은 공약을 통해 '1000만 개미투자자를 살리는 자본시장 선진화'를 선언했다. 중심 공약은 주식양도세 폐지다. 더불어 미공개 정보 이용, 주가 조작 등 증권 범죄의 수사부터 처벌까지 전 과정을 개편, 불투명·불공정거래를 바로 잡고 우리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야심 차게 밝혔다.

일반 투자자의 보호를 통한 건전한 투자 환경을 만드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우리 자본시장을 선진 자본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큰 뒷받침이 된다는 점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 자본시장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 자본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걸림돌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기업가치 대비 실제 자본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의 가치가 글로벌 평균 등 비교 그룹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종목의 제 값을 인정 받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과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 원인은 북한과 인접해 있는 지정학적인 리스크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요즘은 옛말이다. 이제 북핵보다 더 영향을 주는 요소는 대주주·경영진과 관련된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다.

기업 거버넌스는 기업 경영의 통제에 관한 시스템으로, 기업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주주·경영진·근로자 등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규율하는 제도적 장치와 운영기구를 의미한다. 기업의 소유구조뿐만 아니라 주주의 권리, 주주의 동등 대우, 이해관계자의 역할, 공시 및 투명성, 이사회의 책임 등을 포괄한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강조하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의 한 축이기도 하다.

선진화된 해외 자본시장에서는 기업 거버넌스 관련 사건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국내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새 정부가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관리 부실, 모럴해저드에 거래정지·주가 폭락 이어져

LG에너지솔루션 100조원. 중국 CALT 220조원.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한국과 중국의 대표 기업의 시가총액의 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지주사인 LG화학의 주가는 한때 100만원을 넘어섰지만, 이차전지 관련 전지사업본부(LG에너지솔루션)가 물적분할된 이후 꾸준히 하락, 현재는 40만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때문에 LG화학 주주들 사이에선 '경영진의 일방적인 핵심사업 분리 상장이 기존 모회사 주주 권리를 침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올해 들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기업 거버넌스 관련 이슈는 연달아 터졌다.

국내 임플란트 1위 기업인 오스템임플란트는 2200억원대 직원 횡령으로 지난 1월 3일부터 거래가 정지됐다. 개인의 횡령이 발생하면서 회사의 내부 회계관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회사 측은 횡령 사건이 개인의 일탈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팀장급이 2000억원이나 되는 회사 자금을 빼돌려 주식에 투자할 때까지 회사 측이 몰랐다는 점은 내부 회계관리가 부실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삼성KPMG가 최근 발표한 '감사위원회 저널' 20호에 따르면 2020년 내부 회계관리 제도에 대해 부정적 감사 의견을 받은 153개 기업 가운데 12.4%(19개)의 사유는 '자금통제 미비'였다. 내부 회계관리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받은 기업 열 곳 중 한 곳이 직원의 횡령·유용 사고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같은 해 미국의 동일 사유 비율(1건·0.3%)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또 코스닥 시총 2위 기업인 에코프로비엠의 주가는 내부자거래 의혹이 발생한 뒤 연일 하락했다. 이동채 회장을 포함한 임원 4~5명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도로 이어졌다.

지난해 코스피 기업공개(IPO) 당시 182만여명의 개인투자자가 몰렸던 카카오페이는 공모가의 두 배가 넘는 주가로 화려하게 증시에 입성했지만, 경영진의 모럴해저드가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았다. 류영준 당시 대표 등 경영진 8명은 상장 한달여 만에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대량 매도해 800억원이 넘는 차익을 챙겼다. 

국가별 총 주주환원율 10년 평균 비교. (자료제공=KB증권)

◆건전한 자본시장 바탕은 '주주환원율'…중국보다 낮은 28% 불과

대주주와 경영진의 주주 이익 침탈 행위는 바로 '거버넌스의 파괴'로 이어진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한국은 경영진과 일반주주, 이사회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뜻하는 거버넌스가 파괴돼 있다"며 "대주주·경영진이 사내 유보된 현금을 주주에게 돌려주지 않고 자신을 위해 전용할 수단이 있을 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부회계시스템을 갖추지 않는 이유에 대해 "대주주가 사내 유보금을 마음대로 전용하기 위해서"라고 단언했다. OECD 국가 중 한국에서만 유보된 현금을 다양한 합법적인 방법으로 대주주에게 이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김 회장은 "대만과 한국의 산업구조가 비슷하고, 1인당 GDP도 비슷하다. 그러나 대만의 PBR은 1.8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한국은 1.0배 수준에서 거래가 이뤄져 80%가량의 괴리가 있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하는 원인은 '주주환원율'에 있다"고 설명했다.

주주환원율은 회사의 순이익 가운데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쓴 돈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최근 KB증권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한국의 평균 총 주주환원율은 28%였다. 중국(31%)보다도 떨어지는 수치다. 미국(89%)의 3분의 1 수준이며,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68%)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최근 국내 증시에 대형기업이 잇따라 상장하면서 시총은 크게 늘어났지만, 지수 상승은 부진한 것은 바로 낮은 주주환원율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면 대주주가 합법적으로 유보금을 전용할 수 없게 만들어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주환원율을 글로벌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회사는 매출을 일으킨 뒤, 협력업체 대금 지급, 임금 지급, R&D 투자, 공장 증설에 나서고 남은 이익을 주주들에게 환원해 주주가 위험부담을 감수한 대가를 보상해야 한다. 그 보상이 글로벌 평균인 70%가 되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가 일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새 정부가 주목해야 할 부분도 여기에 있다. 선진국처럼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외의 방법으로는 대주주가 유보금을 챙길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투명성을 보다 높여야 한다. 회사가 번 돈이 주주에게 올곧이 환원될 때 우리 자본시장의 자생력이 생기고 체력도 강해진다. 덩달아 기업의 정당한 가치평가도 이뤄져 상장기업의 주가도 제값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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