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2.03.16 00:05

투자자 보호 관건은 '규제 공백' 해소…"가상자산업법 조속 통과 필요"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면서 가상자산 제도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제도적 틀이 전무한 수준이어서 오는 5월 새 정부가 추진하는 가상자산 산업 진흥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윤 당선인은 가상자산 관련 법을 제정하는 등 투자자들이 가상자산에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네거티브 규제는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방식이다.

윤 당선인의 가상자산 관련 공약으로는 ▲코인투자수익 5000만원까지 완전 비과세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 ▲국내 코인발행(ICO) 허용 ▲NFT활성화를 통한 신개념 디지털자산시장 육성 등이 있다.

국내 가상자산 기업, 투자자 등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가상자산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국민 3명 중 1명이 투자하고 있지만, 시장 관리 중심의 소극적인 정책 대응이 산업 진흥과 투자자 보호에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에 새 정부는 구멍 난 가상자산 법망을 메꿔 제도권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가상자산사업자, 유흥주점과 동급 취급…55조 시장 4곳이 장악

국내 가상자산 시장 이용자 수는 전체 인구의 30%에 달하고, 일평균 거래액은 코스피의 70% 수준이지만, 시장의 96%를 4개 기업이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정보분석원(FIU)가 시행한 '2021년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거래소에 등록한 사람은 전 국민의 29.5%에 해당되는 1525만명이다. 실제 거래 참여자는 경제활동인구의 19.8%인 558만명이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55조2000억원 일평균 거래 규모는 11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일평균 거래액인 15조4000억원의 73% 수준이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 가운데 원화 거래가 가능한 원화마켓 시장은 96%(53조3000억원)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코인 간 거래만 가능한 코인마켓 시장은 4%(1조9000억원)에 불과했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원화마켓을 운영하는 거래소는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네 곳뿐이다. 정부가 ISMS와 자금세탁방지 솔루션을 갖춘 거래소도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원화 거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가상자산 업체들은 유흥 주점업 및 사행시설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현행법에서는 벤처기업의 요건을 상세하게 정하고 있는데,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는 일반 유흥 주점업, 무도유흥주점업, 기타주점업, 기타사행시설 관리 및 운영업, 무도장운영업 등과 함께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을 '벤처기업에 포함되지 않는 업종'으로 규정했다. 

미국·유럽·일본 등 금융 선진국들이 수년 전부터 가상자산 시장 육성 정책을 내놓은 것과 극명히 대조된다. 미국은 2017년 시카고선물거래소(CME)가 비트코인 선물거래 상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일본은 금융상품거래법과 결제서비스법을 2019년 개정하고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을 통해 암호화폐를 규제하고 있다. 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 공중협박자금 조달행위 규제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별표 1. (자료=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캡처)

◆상장사 미공시에도 규제 없어…"가상자산업법 조속 통과시켜야"

가상자산 관련 규제가 금융범죄 예방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가상자산 관련 범죄행위 피해는 늘어나고 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까지의 가상자산 관련 범죄행위 피해 금액은 3조87억원으로 2017년 4674억원, 2019년 7638억원을 크게 뛰어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 증권시장 상장사가 해외에서 발행한 코인을 국내외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한 뒤 대량 매도해 가상자산 가치를 떨어트린 사례도 있다. 증권시장에서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 주가가 하락하는 것과 같다. 국내에서는 2017년 부당한 사적이익 편취를 우려해 암호화폐공개(ICO)가 금지됐다.

게임업체 위메이드는 암호화폐 위믹스를 자체 발행한 뒤 1년여 동안 1억800만개를 현금화했다. 원화로 환산하면 2271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위메이드는 이를 활용해 '애니팡' 제작사인 선데이토즈를 1367억원에 사들였고, 가상자산거래소 빗썸 운영사인 비덴트의 지분을 사들여 2대 주주에 오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구멍 난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마련, 국내 시장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여러 가상자산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 발의돼 계류 중이다. 이용우 의원 등이 발의한 '가상자산업법안'은 가상자산 발행시 백서를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은혜 의원 등이 발의한 '가상자산산업 발전 및 이용자보호에 대한 기본법안'은 미공개중요정보를 이용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백서 발행을 통해 가상자산 발행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알리고 미공시 발행 행위와 이를 판해하는 행위를 불법화하기 위해서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장법인의 가상자산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논란은 국내 자본시장과 가상자산시장의 규제체계 공백을 메우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데 있어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며 "공시의무 등 규제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상자산업법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성후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 회장은 "금융당국은 현행 특금법에 따라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입출금 확인 계정을 받아야 원화 거래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은행이 어떤 기준과 항목에 따라 실명계좌를 내주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상황이 이렇지만 금융당국은 '사기업 경영에 관여할 수 없다'며 손을 놓고 있어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멍 난 가상자산 법망을 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중 한국핀테크학회장은 "디지털 자산 산업은 규제와 진흥이 필요하나 지금은 진흥에 방점을 찍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되 국제 기준에 맞는 투자자 보호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며 "이런 정책을 통해 매년 10개 이상의 유니콘 기업이 출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디지털 경제 대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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