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한새 기자
  • 입력 2022.12.22 11:05

건설·증권사, 부동산 PF 시장 냉각에 돈줄 말라
내년 2월 부동산 PF 만기 29조 달해…차환 우려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3일간 춘천에 위치한 레고랜드를 단독 대관해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초청했다. (사진=SK하이닉스 뉴스룸)&nbsp;<br>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3일간 춘천에 위치한 레고랜드를 단독 대관해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초청했다. (사진=SK하이닉스 뉴스룸)

[뉴스웍스=유한새 기자] 올해 하반기 국내 금융 시장은 살얼음판이었다. 강원도 레고랜드 자산유동화증권(ABCP) 사태가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자금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건설사, 증권사를 중심으로 금융권 전반에 자금경색 우려가 커지면서 줄도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결국 정부는 50조+α 규모의 긴급 대책을 내놨다. 한국은행도 시장에 유동성 공급을 위해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며 시장 안정화에 나섰다.

이와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자금조달 상황은 여전히 위축돼 있다. 특히 내년 2월까지 만기 도래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ABCP 물량이 2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국고채와 회사채 사이 금리 격차가 벌어지면서 회사가 자금을 조달할 때 비용부담이 상당하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날 기준 국고채 3년물과 회사채(AA-) 3년물 간 차이인 '신용스프레드'는 1.60%포인트로 나타났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 29일 1.72%포인트와 비슷한 수준이다.

신용스프레드가 급격하게 벌어진 이유는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가 큰 영향을 줬다.

레고랜드 건설을 주도한 강원중도개발공사는 강원도가 44%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다. 강원중도개발공사는 레고랜드를 짓기 위한 필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020년 2050억원의 ABCP를 발행하고,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섰다. 해당 어음의 만기는 지난 9월 29일이었다.

하지만 레고랜드가 건설 자금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강원중도개발공사가 금융권에 빌린 2050억원을 대신 갚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강원중도개발공사에 대해 법원에 회생신청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지급보증을 선 강원도가 갚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었다.

지자체가 지급보증이라는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자 투자자들은 채권시장에서 빠르게 발을 빼기 시작했다. 지자체가 지급보증한 어음이 부도난 상황에서 기업이 보증한 채권에 대한 신뢰도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건설사를 중심으로 자금경색이 뚜렷해졌다. 

롯데건설은 PF ABCP 차환·상환을 위해 지난 10월 18일 2000억원의 유상증자에 이어 같은달 20일 롯데케미칼을 통해 5000억원을 차입했다. 이어 롯데정밀화학에서 3000억원, 롯데홈쇼핑에서 1000억원을 차입했다. 계열사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총 1조1000억원에 달했다. 

지방 건설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충남지역 종합건설업체 6위인 우석건설이 지난 9월 부도난 데 이어 창원 지역 동원건설산업 역시 부도로 문을 닫았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금융투자협회는 중소형 증권사의 유동성 지원을 위해 1조8000억원 규모의 'PF ABCP 매입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내년 5월 30일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동산 PF로 막대한 수익을 얻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 들어 자금 경색의 원인이었던 부동산 PF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반전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형 증권사의 경우 선순위 PF 위주로 투자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지만,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중·후순위에 투자해 부실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다올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등 자기자본 대비 PF 비중이 큰 중소형 증권사들은 인력 효율화,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해 자금 수혈에 힘을 쏟았다.

정부가 금융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난 10월 발표한 50조+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대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우량 채권을 중심으로 자금 수급이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일 한국은행이 채안펀드 캐피탈콜 출자 금융기관에 대한 첫 RP 매입이 입찰 미달을 기록했다. 매입 예정금액은 3조원이었으나 2조1200억원이 응찰했고, 이 가운데 1조5300억원만 낙찰됐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1일 2조5000억원 규모의 14일물 RP를 매입했고, 지난 5일에도 2조6000억원 규모의 14일물 RP를 매입한 바 있다. 

금융기관 자금 조달 창구인 RP 시장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기업 자금 조달 창구인 CP 시장은 여전히 위축된 상태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내년 2월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PF ABCP 규모는 2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연말 수급 불안, 단기 자금 시장의 추가 유동성 경색 가능성 등 우려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5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향후 국내 CP·신용채권 시장은 시장안정 대책의 효과가 점차 가시화될 것"이라면서도 "국제 금융시장의 높은 불확실성, 부동산 PF 부실화 및 연말 자금 수급 악화 가능성 등 리스크 요인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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