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민서 기자
  • 입력 2023.03.05 07:00

"미래 신성장동력·핵심 역량 확보 위해 투자 아끼지 말 것"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살얼음판 그 자체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수출 기록을 경신하며 성장 가도를 달려왔던 한국은 불과 1년여 만에 사면초가에 놓였다.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불과 1%대 수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망한 세계 각국의 평균 성장률에도 한참 못 미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삼중파고가 몰아치는 가운데, 각종 대내외 악재가 겹쳐 기업들의 숨통을 죄는 형국이다. 주요 그룹을 이끄는 수장들의 어깨도 자연히 무거워졌다. 얼어붙은 경영 환경에서 '도태'와 '도약'은 한 끗 차이다.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들을 어떻게 타개하느냐에 따라 그룹의 운명이 갈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래빗 점프'하려는 오너들의 과제와 전략을 살펴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제공=한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제공=한화)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어제의 한화를 경계하고 늘 새로워져야 한다."

지난해 10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사내 방송을 통해 전한 한화그룹 창립 70주년 기념사다. 임직원에게 어제의 한화가 아닌 새로운 한화로 거듭나자고 당부하며 혁신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한국화약그룹(현 한화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김종희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승연 회장은 1981년 부친 김종희가 지병으로 갑작스레 사망하며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회장 자리에 올랐다. 젊은 나이에 기업 총수 자리에 올랐지만, 한화그룹의 규모를 빠르게 키워 재계 서열 7위 초거대 기업으로 만들었다.

김 회장은 인수합병을 통해 한화그룹을 크게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취임한 이후 40년 동안 한화그룹의 총자산은 7548억원에서 217조원으로 288배, 매출은 1조1000억원에서 65조4000억원으로 60배 늘었다.

김승연(왼쪽) 한화그룹 회장이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회장과 만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그룹)
김승연(왼쪽) 한화그룹 회장이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회장과 만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그룹)

◆굵직한 M&A 끌어낸 '승부사' 기질…"과감한 투자 아끼지 마라"

올해 신년사에서 김승연 회장은 "자칫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하기 쉬운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는 내실을 다지면서도 미래 성장동력과 핵심 역량 확보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며, 사업 재편과 투자를 통해 미래 신성장동력 발굴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한화솔루션을 출범시켜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에서 성과를 내고 있고,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계열사들은 디지털금융 솔루션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스마트 방산 사업의 허브가 되는 동시에 항공우주와 미래 모빌리티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로 올해 영업실적도 비교적 견조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고금리·고환율·고물가 등 매크로 변수 불확실성 확대에도 불구,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어 이익의 변동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회자되는 김 회장의 승부사 기질 또한 실적 반등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1986년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을 인수해 석유화학산업에, 2002년 대한생명보험(현 한화생명)을 인수해 보험산업에 진출했다. 2012년에는 독일 큐셀을 인수해 태양광 산업에 진출했고, 2015년에는 삼성의 방산 및 석유화학 부문 계열사인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삼성토탈(현 한화토탈),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종합화학)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며 그룹의 규모와 위상을 크게 확대했다. 그 다음해인 2016년에는 두산DST(현 한화디펜스)를 사들여 방산사업을 더욱 강화했다.

올해 김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하고 한화를 방위산업 전 분야를 아우르는 '한국의 록히드마틴'으로 키운다는 구상을 실현하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상선은 물론 군함·잠수함 등 건조 능력을 갖춘 대우조선해양을 품으면, 한화는 육·해·공을 아우르는 통합 방산 포토폴리오를 갖게 된다.

지난달 22일 튀르키예의 승인과 함께 영국 경쟁당국의 결과도 낙관되면서 양사의 기업결합은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영국 경쟁당국은 조만간 승인 여부를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영국은 승인 절차 없이, 결합심사서에 큰 문제가 없다면 통과하는 방식이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상대로의 결과가 나온다면 양사 합병은 4월 중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한화임팩트가 올해 3분기 중 중대형 엔진 제작사 HSD엔진 인수를 마무리하면, 한화그룹은 선박 건조부터 엔진 제작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루게 된다.

남은 것은 충분한 인수자금의 조달이다. 당장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등이 2조원의 유상증자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데다, 대우조선해양의 재무 상태를 고려하면 추가 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화그룹은 에너지, 탄소중립, 방산·항공우주 등의 분야에 5년간 37조6000억원이라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어, 체계적이고도 유연한 자금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더플라자 호텔에서 진행한 만찬에서 김동선(왼쪽부터)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무,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한화그룹)
지난해 11월 서울 더플라자 호텔에서 진행한 만찬에서 김동선(왼쪽부터)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무,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한화그룹)

◆새판짜기 돌입한 한화…3형제 경영능력 '이제부터'

한화그룹은 지난해부터 핵심 계열사의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3세 경영' 구도를 정립해가고 있다.

한화솔루션이 화학·에너지사업을 아우르고 유통사업은 한화갤러리아로 분할된다. 방산 사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화 방산 부문과 한화디펜스를 통합해 일원화한다. 또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금융계열사를 수직계열화하고 한화가 한화생명 지분을 보유한 한화건설을 흡수 합병해 금융사업 지배구조를 간소화했다.

세 아들의 승진 속도도 빨라졌다.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는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은 사장 직함을 달았다. 막내인 김동선 상무 역시 전무로 올라서면서 입지를 다졌다.

김동관 부회장은 지주사격인 ㈜한화와 함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솔루션 대표이사로서 방산과 에너지사업을 맡는다.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은 금융사업,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무는 호텔과 유통사업을 맡으며 오너3세 역할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3형제의 경영능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이들을 향한 김승연 회장의 경영 코칭 역시 한층 더 밀도 있게 진행될 전망이다.

김동관 부회장은 10년 넘게 '뚝심'으로 지켜온 태양광 사업으로 이미 경영능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다. 태양광 사업은 전 세계적 에너지 대란, 탄소중립 상황에 따른 에너지 안보 강화, 신재생에너지 육성 흐름을 만나며 지난해부터 빛을 보기 시작했다. 한화솔루션이 지난해 영업이익 9662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올해는 1조원대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동원 사장은 한화생명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며 최고글로벌책임자(CGO)를 맡았다. 재계에서는 김동원 사장이 승진을 계기로 경영능력을 입증하며 3세 경영체제에서 확실한 기반을 구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선 전무의 호텔과 리조트, 유통사업은 최근 변화의 폭이 컸다. 지난달 갤러리아 부문은 2021년 한화솔루션에 흡수합병된 지 2년 만에 다시 분할했다. '㈜한화→한화솔루션→갤러리아'의 기존 지배구조에서 '㈜한화→한화갤러리아'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한 만큼, 김동선 전무도 사실상 독립 경영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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