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3.02.17 11:22

믿었던 SK하이닉스 '흔들'…선친부터 이어진 'DNA'로 위기 극복 서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살얼음판 그 자체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수출 기록을 경신하며 성장 가도를 달려왔던 한국은 불과 1년여 만에 사면초가에 놓였다.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불과 1%대 수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망한 세계 각국의 평균 성장률에도 한참 못 미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삼중파고가 몰아치는 가운데, 각종 대내외 악재가 겹쳐 기업들의 숨통을 죄는 형국이다. 주요 그룹을 이끄는 수장들의 어깨도 자연히 무거워졌다. 얼어붙은 경영 환경에서 '도태'와 '도약'은 한 끗 차이다.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들을 어떻게 타개하느냐에 따라 그룹의 운명이 갈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래빗 점프'하려는 오너들의 과제와 전략을 살펴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이 올해 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상의)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이 올해 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3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상의)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SK그룹의 올해 전망은 밝지 않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이른바 '3고(高)' 등 각종 대내외 악재가 겹쳐 산업계 전반에 몰아치는 가운데, SK 역시 그 여파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그룹의 영업이익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SK하이닉스까지 휘청이는 형국이다. 

자연히 최 회장의 새해 신년사에도 그룹 수장으로서의 책임감과 고뇌가 느껴졌다. 최 회장은 SK그룹 전체 구성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낸 2023년 신년 인사에서 올해 경영 환경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난 한 해 동안 몰아친 변화의 파고는 높고도 거셌다. 세계화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각 나라들은 서로 헤쳐 모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단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기도 한 그는 대한상의 신년사에서도 "올해 대내외 경제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다. 지정학적인 긴장은 언제 해소될지 알 수 없고 세계 경제는 상당 기간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며 "각종 경제지표는 견고하지 못하고, 방향성에 대한 신뢰도 약해지면서 기업 활동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라인 전경. (사진제공=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 라인 전경. (사진제공=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올해 7조 적자 전망…SK이노·텔레콤 합쳐도 못 메워

지난해 SK그룹은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재계 순위 2위로 도약했다. SK가 현대차를 재계 순위에서 넘어선 건 지난 2003년 이후 처음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사 중 공정자산이 가장 많이 오른 SK하이닉스 덕이 컸다. SK하이닉스의 공정자산은 2020년 3분기 64조710억원에서 2021년 3분기 75조4039억원으로 11조3329억원(17.7%) 증가했다. 10조원 이상 공정자산이 증가한 기업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11조200억원 증가)뿐이다. 

하지만 SK그룹의 올해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을 것이란 게 경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특히 재계 순위 도약을 이끈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 총자산의 30%가량을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다.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캐시카우' 역할도 한다.

이런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전례 없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 둔화로 지난해 4분기 10년 만에 분기 적자 전환했다. 한 분기에만 1조7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영업손실을 낸 것이다. 이는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적자 규모로, 1조원이 넘는 분기 영업 적자를 기록한 건 SK하이닉스 창사 이래 처음이다. 사이클에 민감한 반도체 산업이란 점을 고려해도 적자 규모가 심상치 않다.

올해는 더 안 좋다. 증권가는 SK하이닉스가 올해 1분기 2조원 중후반대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분기보다 적자 폭이 커질 것이란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2분기에도 1분기와 비슷한 수준의 적자가 예상된다. 그나마 하반기부터 업황 반등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지만, 연간 기준으로 7조원대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SK그룹 주요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의 연간 영업이익은 각각 3조9989억원, 1조6121억원이다. 핵심 계열사 두 곳의 영업이익을 합쳐도 SK하이닉스의 적자를 메우기엔 역부족이란 의미다. 게다가 올해 연간 실적은 전년 대비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 마련된 SK이노베이션 창립 6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의 경영 역사를 다룬 영상물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제공=SK그룹)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 마련된 SK이노베이션 창립 6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의 경영 역사를 다룬 영상물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제공=SK그룹)

◆2대째 이어진 '혁신 DNA'…'딥 체인지'로 파고 넘는다

겹겹이 쌓인 과제를 앞에 두고, 최 회장은 '딥 체인지'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딥 체인지는 최 회장이 수시로 강조해 온 경영 철학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 정유 정제회사에서 글로벌 그린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한 SK이노베이션과, 지난해 전통적인 화학소재 사업에서 벗어나 이차전지·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모빌리티 소재 사업자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기 위해 1조원의 매출을 내는 모태 사업인 필름 사업 매각을 완료한 SKC 등이 대표적 딥 체인지 사례다. 

이러한 전략을 위해 SK그룹은 계열사 사명 변경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업명에 '에너지', '화학' 등이 들어가면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는 최 회장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올해 초에는 SKC의 반도체 소재 사업 투자사 SCK솔믹스는 SK엔펄스로 사명을 변경해 '글로벌 반도체 ESG솔루션 기업'으로 새롭게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해에는 SK종합화학이 SK지오센트릭으로, SK루브리컨츠는 SK엔무브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최 회장은 최근 신임 임원과의 대화에서도 "글로벌 기업들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추세"라며 "기존 고정관념을 벗어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딥체인지로 대표되는 SK 특유의 '혁신 DNA'는 최 회장의 선친인 최종현 SK 선대회장부터 시작됐다. 최 선대회장은 당시 직물회사였던 선경을 에너지와 석유화학, 이동통신사업으로 확장해 현재 SK그룹 기틀을 세운 인물이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쓴 과감한 투자로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와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한 것은 SK그룹은 물론 재계 역사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이동통신 인수 당시 최 선대회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다. 기회를 돈만으로 따질 수 없다. 우리는 통신사업 진출 기회를 산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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