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지혜 기자
  • 입력 2023.02.24 12:00

고객 중심 철학으로 악천후 속 경영환경 돌파구 찾는다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살얼음판 그 자체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수출 기록을 경신하며 성장 가도를 달려왔던 한국은 불과 1년여 만에 사면초가에 놓였다.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불과 1%대 수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망한 세계 각국의 평균 성장률에도 한참 못 미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삼중파고가 몰아치는 가운데, 각종 대내외 악재가 겹쳐 기업들의 숨통을 죄는 형국이다. 주요 그룹을 이끄는 수장들의 어깨도 자연히 무거워졌다. 얼어붙은 경영 환경에서 '도태'와 '도약'은 한 끗 차이다.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들을 어떻게 타개하느냐에 따라 그룹의 운명이 갈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래빗 점프'하려는 오너들의 과제와 전략을 살펴본다. 

구광모(가운데) LG그룹 대표가 29일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LG 사장단 워크숍'에서 최고경영진과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LG)
구광모(가운데) LG그룹 대표가 지난해 9월 29일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LG 사장단 워크숍'에서 최고경영진과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LG)

[뉴스웍스=고지혜 기자]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일수록 그 환경에 이끌려 가선 안 된다."

지난해 9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서 열린 '사장단 워크숍'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하반기 경영 전략을 논의할 때 언급한 말이다. 암울한 경영 환경이지만, 주도적으로 위기 극복에 힘써달라는 당부가 담긴 한 마디였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재계에서 눈에 띄는 젊은 총수다. 지난 2018년 LG그룹 선대 회장인 고(故) 구본무 회장의 별세로 만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총수 자리에 올랐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이었던 그는 LG 총수 일가의 엄격한 장자 우선 승계 원칙에 맞춰 2004년 구본무 회장의 아들로 양자 입적했다. 당시 로체스터 인스티튜트 공과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보내고 있던 그는 2006년 LG전자 금융팀 대리를 시작으로 12년간 계열사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구본무 회장 타계 후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구 회장은 특유의 젊은 패기를 바탕으로 한 과감한 선택과 집중으로 취임 첫해인 지난 2018년 이후 LG의 성장세를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는 취임 5년 차인 올해, 취임 이후 가장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지난해 말부터 LG그룹을 지탱해왔던 주력 사업들이 둔화된 경기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난항을 겪고 있다. 

"환경에 이끌려 가지 말자"라는 구 회장 당부의 배경이다. 경기 침체와의 줄다리기에서 끌려가면 안 된다는 강한 위기감을 표현한 것이다.

LG전자 모델들이 LG 올레드 에보로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LG전자)
LG전자 모델들이 LG 올레드 에보로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LG전자)

◆주력 사업 '빨간불' 켜졌다…'가전 명가' 간판 위협

그간 LG는 '가전 명가'로 불려 왔다. 국내 최초로 냉장고, 흑백 TV, 에어컨, 세탁기 등을 개발·생산했고, 1960년 이후 국내 전자시장을 독보적으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특수를 누렸던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역대급 호황기'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가전을 생산하는 LG전자 H&A사업본부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236억원으로, 분기 사상 첫 세 자릿수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85% 이상 급감하며 겨우 적자를 면한 수준이다. 영업이익률은 0.4%에 불과하다. TV를 담당하는 HE사업본부 역시 같은 기간 107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3분기 연속 적자 전환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여파로 악재가 겹쳐 수익성이 크게 악화기 때문이다. 물동량이 확대되고, 물류비도 늘었다. 또 철판·레진·동 등 주요 원재료 가격도 상승했다.

가전을 찾는 고객도 현저히 줄었다. 특히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높은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유럽지역의 수요가 둔화됐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할 때 재고량이 절반 이상(65.2%) 늘었다.

그룹의 또 다른 주력 사업인 디스플레이 실적도 급락했다. 지난해 공급 과잉, 수요 부진, 재고 급증 등이 한 번에 맞물려 LCD TV 패널 가격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대형 디스플레이에 주력하는 LG디스플레이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2분기부터 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연간 영업손실은 2조850억원에 달한다. 보복소비 수혜를 입었던 지난 2021년 영업이익(2조2306억원)과 비슷한 금액의 손실을 1년 새 기록한 셈이다.

가전과 디스플레이 사업의 올해 전망 역시 밝지 않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TV 수요 변동 폭이 크지 않고 PC와 스마트폰의 교체 주기도 길어지면서 IT 부문 성장도 이미 멈춘 상태"라며 "PC 시장이 회복해야 업황이 살아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 부문 역시 적자로 전환하면서 빠른 회복이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TV 등 가전제품 수요에 큰 영향을 받는 디스플레이 사업 역시 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증권가의 주된 시각이다. 

구광모 LG 대표가 20일 전 세계 LG 임직원들에게 영상 신년 인사가 담긴 이메일을 전달했다. (사진제공=LG)
구광모 LG 대표가 20일 전 세계 LG 임직원들에게 영상 신년 인사가 담긴 이메일을 전달했다. (사진제공=LG)

◆지금이 '뚝심' 구광모의 '고객가치 철학' 빛날 때

'고객'은 구 회장이 취임 후 끊임없이 강조해 온 키워드다. 미래성장동력 산업을 판별하고 추진하게 하는 원동력이 고객에 있다는 것이 그의 경영 지론이다. 

구 회장은 취임 직후인 2019년 첫 신년사에서 고객을 강조했다. 10분가량의 스피치에서 고객이라는 단어만 30번 이상 언급할 정도였다. 이후에도 고객은 매년 신년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구 회장은 "고객가치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LG인들이 모여 고객 감동의 꿈을 계속 키워 나갈 때, LG가 고객으로부터 사랑받고 영속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며 고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구 회장의 고객 중심 철학은 선대부터 이어져 온 경영 이념을 계승·발전시킨 것이다. 고 구인회 창업 회장은 '남이 하지 않는 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고, 그 가치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사업을 키웠다. 고 구자경 명예 회장은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 개념으로 재정립하고, 기업 경영의 축을 공급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고 구본무 전 회장도 일할 때 진정한 의미의 고객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LG웨이'를 선포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도 높은 경영혁신과 신규 사업개발에 나섰다.

어느 때보다 경영 환경이 어려운 올해도 구 회장은 '뚝심'있게 고객가치 창출에 힘쓰며 위기를 극복해 나갈 계획이다.

LG전자는 지난해 11월 본사 직속으로 CX(고객경험)센터를 신설했다. 올해는 사업부 별로 진행하던 사업을 CX센터로 일원화하고, CX센터 산하에 CX전략담당을 배치하는 등 고객 경험 지향점 및 핵심 과제를 발굴·확대할 계획이다.

LG전자가 최근 주력하는 서비스에서도 그의 고객 중심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제품 구매 이후에도 고객의 새로운 기능을 업데이트할 수 있는 '업(UP)가전', 스마트TV에서 고객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웹OS', 가전제품들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는 'LG 씽큐' 앱이 대표적 사례다. 올해는 이러한 서비스를 해외 주요 시장으로 본격 확대하며 스마트 가전 생태계 확장에 더욱 속도를 낼 계획이다. 

LG디스플레이도 CX조직을 세분화했다. 디스플레이 크기에 따라 고객사가 다른 탓에 맞춤형 고객 대응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중소형디스플레이는 중형CX그룹, 대형디스플레이는 대형솔루션CX그룹이 맡는다.

아울러 TV용 대형 패널뿐 아니라 투명 OLED·게이밍용 벤더블 OLED·차량용 플라스틱 OLED(P-OLED) 등,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힘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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