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3.27 06:00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살얼음판 그 자체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수출 기록을 경신하며 성장 가도를 달려왔던 한국은 불과 1년여 만에 사면초가에 놓였다.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불과 1%대 수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망한 세계 각국의 평균 성장률에도 한참 못 미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삼중파고가 몰아치는 가운데, 각종 대내외 악재가 겹쳐 기업들의 숨통을 죄는 형국이다. 주요 그룹을 이끄는 수장들의 어깨도 자연히 무거워졌다. 얼어붙은 경영 환경에서 '도태'와 '도약'은 한 끗 차이다.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들을 어떻게 타개하느냐에 따라 그룹의 운명이 갈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래빗 점프'하려는 오너들의 과제와 전략을 살펴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제공=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제공=롯데그룹)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재계서열 5위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내세운 ‘뉴롯데’의 기치가 올해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신 회장은 최근 수년 동안 외부 인재 영입과 젊은 피 수혈에 집중했다. 외부 인재를 핵심 요직에 앉히지 않은 그룹 내 ‘순혈주의’ 인사의 대대적 청산이었다.

지난해 5월에는 향후 5년 동안 37조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뉴롯데의 실행을 구체화했다. 바이오·헬스케어·모빌리티 등의 신사업군에 15조2000억원을, 기존의 유통·식품·화학은 21조8000억원을 각각 투입한다. 전체 투자의 약 40% 수준이 신사업으로 미래성장동력 확보에 무게를 실었다.

◆‘순혈주의’ 무너뜨리고 사업장 200곳 이상 정리

신 회장은 지난해 11월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 행사를 통해서 창업주의 도전정신 계승이 뉴롯데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창업주가 실천한 도전과 열정의 DNA가 새로운 롯데를 만들어 갈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의 뉴롯데는 지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롯데 창립 50주년을 기점으로 롯데의 혁신과 변화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그해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과 사법리스크 등 연이은 악재로 뉴롯데의 출발은 늦춰진다.

이후 신 회장은 2018년 경영에 복귀하자마자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뉴롯데의 첫걸음을 뗐다. 이어 지난해 말까지 쉼 없는 인사를 지속해 롯데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놨다. 특히 그룹의 주력 사업인 유통에서 수익이 부진한 점포를 과감히 정리했다. 백화점부터 마트, 호텔까지 2년 동안 정리된 사업장만 200곳이 넘는다.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버려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결단을 엿볼 수 있다.

최근에는 ‘헬스앤웰니스(Health&Wellness)’, ‘모빌리티’, ‘지속가능성’ 등 신성장동력의 방향성을 구체화하며 인수합병(M&A)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2021년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와 지난해 미국 시카고 킴튼 호텔 모나코를 비롯해 배터리 제조사 일진머티리얼즈 등의 인수를 마무리했다. 또한 카셰어링 업체 쏘카의 전략적 투자, 도심항공교통(UAM) 실증사업, 유통 매장과 연계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사업 등 모빌리티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ristol Myers Squibb)의 미국 시러큐스 공장을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인수한 것, 롯데케미칼의 수소 사업과 전지소재 사업, 바이오 플라스틱 사업 등 각종 신사업 추진도 주목할만한 변화다. 그동안 롯데를 지칭했던 ‘유통공룡’ 수식어를 빠르게 지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롯데타워. (사진제공=롯데그룹)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롯데타워. (사진제공=롯데그룹)

◆리스크 정면돌파…과감한 만큼 위험 요소도 많다

다만 신 회장의 개혁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면서 위험 요소들도 덩달아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와 같이 예기치 않은 유동성 위기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롯데건설은 당시 롯데케미칼 5000억원, 롯데정밀화학 3000억원, 롯데홈쇼핑 1000억원 등 총 1조1000억원의 자금을 조달받았다. 레고랜드 직격탄으로 계열사들의 신용평가가 동반 하락하자 투자자금 마련이 쉽지 않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신 회장은 올해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잔금 2조4300억원 납부를 위해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이달 1조3000억원의 차입을 결정했으며, 인수잔금 차입은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12개 금융기관을 통해 이뤄졌다. 차입 기간은 최장 5년에 차입금은 단기(1년 미만) 3600억원과 장기(2~5년)물 9400억원이다. 위험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도 미래성장동력 마련에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다.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면세사업 역시 신 회장의 결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면세사업은 그동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부진을 면치 못했고, 이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호텔롯데 상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에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선정에 탈락하면서 돌파구 마련이 시급해졌다.

그룹의 허리인 식품유통사업의 시너지 창출 여부도 관심거리다. 신 회장은 식품사업의 경영효율화를 위해 최근 롯데 식품사업의 모태격인 롯데제과를 롯데푸드와 합병해 새로운 사명인 ‘롯데웰푸드’로 바꿨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미니스톱을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꾀하고 있으며, 롯데칠성음료는 3년 만에 등기이사로 복귀해 진두지휘에 나선다.

재계 한 관계자는 “몇 년에 걸쳐온 신 회장의 뉴롯데 체질개선 작업은 올해부터 성과가 나타나야 할 시기”라며 “과감한 결단만큼 위험요소가 많아진 상황이지만, 과거 롯데그룹의 고속성장을 견인한 인수합병의 민첩함이 살아난다면 신 회장이 구상하는 뉴롯데가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 (사진제공=롯데케미칼)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 (사진제공=롯데케미칼)

◆장남의 등장, 3세 경영 본격화

신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의 등장도 주목할만한 사항이다. 뉴롯데의 구축 과정을 통해 3세 경영 참여가 수면 위에 오른 것이다. 신 상무는 지난 1월 롯데그룹의 VCM(사장단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해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 신 상무는 외부 행보를 자제해왔지만, 지난해부터 부친인 신 회장과 함께 각종 행사에 모습을 보였다. 올해 초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3에 신 회장 없이 별도로 참여하는 독자적 행보를 보였다.

신 상무는 롯데케미칼의 핵심 사업으로 분류된 기초소재사업부를 맡고 있다. 해당 사업부는 모빌리티와 연결돼 향후 신 상무의 경영능력을 입증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앞서 신 회장은 상무로 승진한 이후 7년여 만에 부회장 자리에 올라 그룹 승계 구도를 가시화했다. 1955년생인 신 회장이 70세를 바라보고 있는 만큼, 신 상무의 승계 작업 역시 뉴롯데를 구축하는 또 다른 중요 과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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