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민서 기자
  • 입력 2023.03.13 06:00

정유산업 불확실성 증가 탈정유 체질 개선 박차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살얼음판 그 자체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수출 기록을 경신하며 성장 가도를 달려왔던 한국은 불과 1년여 만에 사면초가에 놓였다.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불과 1%대 수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망한 세계 각국의 평균 성장률에도 한참 못 미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삼중파고가 몰아치는 가운데, 각종 대내외 악재가 겹쳐 기업들의 숨통을 죄는 형국이다. 주요 그룹을 이끄는 수장들의 어깨도 자연히 무거워졌다. 얼어붙은 경영 환경에서 '도태'와 '도약'은 한 끗 차이다.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들을 어떻게 타개하느냐에 따라 그룹의 운명이 갈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래빗 점프'하려는 오너들의 과제와 전략을 살펴본다. 

허태수 GS그룹 회장. (사진제공=GS)
허태수 GS그룹 회장. (사진제공=GS)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최근 급격한 사업환경의 변화는 외견상 위협인 동시에 본질적으로 새로운 기회다. 모든 임직원이 위기 대응 역량을 키우면서 더욱 절박하게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속도를 내자."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임직원에게 위기 대응 역량 제고와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강조했다.

허준구 LG건설(현 GS건설) 명예회장의 5남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허태수 회장은 2019년 형인 허창수 전 GS그룹 회장이 15년 만에 물러나면서 회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허 전 회장의 임기가 2년 남아있었기에 재계에선 놀랍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GS그룹은 정유 계열사인 GS칼텍스라는 든든한 캐시카우와 민자발전 계열사인 GS파워, GSEPS, GSE&R 등을 중심으로 몸집을 키웠다. 정유와 에너지 산업이 경기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만큼 안정적 수익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지속적으로 커지며 코로나19와 저유가 등 악재가 겹쳐 GS그룹의 주력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던 사업 부문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것이다.

◆'정중동' 경영 스타일…정유 부문 선전으로 역대급 실적

허 회장은 GS그룹의 신중하고 보수적 경영문화를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성장동력 찾기에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사업 인재 다수를 신규 임원으로 선임하고 기업형 밴처캐피털(CVC)인 GS벤처스를 통해 신사업 발굴에 나서는 등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향한 의지를 나타냈다. ''정중동(靜中動)'의 경영 스타일이다.

이러한 경영 방식으로 GS는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뒀다. 지난해 상반기 고유가 영향으로 GS의 핵심 계열사 GS칼텍스가 호실적을 거뒀다. 하반기에는 유가 하락과 정제마진 급락으로 GS칼텍스의 실적이 후퇴했으나, 에너지 공급난으로 GSEPS와 GSE&R 등 에너지 계열사들의 실적이 상승세를 견인했다.

GS그룹 지주회사인 ㈜GS는 자회사 매출 호재와 배당금 수익으로 선전했다. 이 회사의 매출은 2021년 20조1650억원에서 2022년 28조7778억원으로 42.7% 늘었다. 회사 관계자는 GS에너지를 통해 지분 50%를 보유한 GS칼텍스의 역대급 선전이 지주사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매출 58조5321억원, 영업이익 3조9795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대비 69.5%, 97.1% 증가한 수치로 사상 최대 실적이다. 같은 기간 GS에너지도 매출 105.7%, 영업이익 103.8%의 높은 실적 상승률을 보였다.

GS그룹의 건설 부문 상장계열사인 GS건설과 자이에스앤디 모두 높은 매출 증가세를 보였다. 건설사업 확대와 함께 기업 인수 효과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GS건설은 건축·주택 및 신사업 부문의 고른 성장으로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매출은 12조2986억원으로 전년보다 36.1% 증가했다.

GS글로벌은 무역·유통 부문과 신사업 부문이 실적을 견인하며 전년 대비 31.7% 늘어난 5조70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GS리테일은 매출 11조2264억원으로 전년보다 15.8% 늘었다. 편의점·슈퍼·호텔 부문의 매출 증가가 실적 상승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정유사업 비중이 너무 크다는 그룹의 한계로 인수합병(M&A)이나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으며 그룹이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고 있다는 평가다. 매출의 80% 이상 차지하는 GS칼텍스에 의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좌지우지되는 것도 '양날의 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더한다.

재계 서열 7위인 한화그룹과 8위인 GS그룹의 자산 차이는 2019년 2조7000억원에서 2022년 3조6000억원으로 3년 사이 9000억원 더 벌어졌다. 2018년까지 분명히 한화보다 큰 그룹이었으나 한화가 공격적인 투자와 포트폴리오 다양화로 성장세를 보이며 현재 뒤처지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현 회장 허태수의 가장 큰 특명을 신사업 발굴로 보고 있다.

허태수(왼쪽) GS그룹 회장이 지난 2020년 GS남촌리더십센터에서 열린 제2회 GS임원포럼에 참석해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방안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제공=GS)
허태수(왼쪽) GS그룹 회장이 지난 2020년 GS남촌리더십센터에서 열린 제2회 GS임원포럼에 참석해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방안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제공=GS)

◆"올해는 위기의 시작"...신사업 발굴에 속도 붙여

허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올해를 '유례없는 장기 침체와 위기의 시작'으로 규정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현장 인재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사실상 GS그룹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한 것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고유가·고환율·고물가 3고로 장기 침체가 시작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지난 1월 단행한 정기 임원인사에서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대부분을 유임했다. 경영의 연속성으로 안정을 추구하면서 위기에 대응한다는 구상이 드러났다.

그러면서 미래 성장을 위해 신기술과 신사업 추진은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허 회장은 GS그룹 설립 이후 최초로 신사업 보고회를 여는 등 신사업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허 회장이 신사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그룹 핵심 사업인 정유사업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유가와 정제마진 변동에 따라 정유산업 업황이 요동치고 있다. 단기적 변동성을 무시하더라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추세를 거스를 수 없기에 업계에선 장기적으로 탈정유 체질 개선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에너지 가격은 조정받고 있다. 전쟁 등 불확실성 완화와 글로벌 경기둔화에 따른 수요감소 영향이 있다"며 "이에 따라 GS의 2023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0% 감소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GS그룹의 신사업 분야는 크게 ▲에너지 전환 ▲순환 경제 ▲바이오로 나뉜다.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소형모듈원전과 수소 사업을 대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GS그룹의 에너지 중간 지주사인 GS에너지를 통해 미국의 원자력 기업 뉴스케일파워와의 협력관계를 다지고 지분투자를 단행했다. 이 협력관계에는 국내 기업인 삼성물산과 두산에너빌리티도 참여하고 있다.

또한 허 회장은 GS에너지를 통해 수소 사업에 힘쓰면서 GS그룹의 사업구조를 전통적 정유사업에서 친환경 미래 사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블루암모니아 생산 플랜트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수소 사업 강화를 통한 친환경 사업구조 구축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순환 경제 분야에서는 포스코홀딩스와 합작회사 포스코GS에코머티리얼즈를 설립하고 폐배터리 사업을 본격화했다. GS칼텍스가 폐플라스틱 재활용 업체 에코지앤알에 투자하는 등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재무적 투자자들과 손잡고 1조7000억원에 휴젤을 인수하고 3조원대 매물인 메디트 인수를 추진하는 등 인수합병에 적극적이다. 바이오오케스트라, RVAC 등에 투자하는 등 바이오 분야 투자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GS그룹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후계자들을 양성하는 것도 허 회장의 몫이다. 허 회장 취임 이후 오너 4세 인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오너 4세에게 신사업 분야에서 경영 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재계 해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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