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3.23 08:58
구지은(왼쪽) 아워홈 부회장과 구자학 회장의 생전 모습. (사진=구지은 페이스북)
구지은(왼쪽) 아워홈 부회장과 구자학 회장의 생전 모습. (사진=구지은 페이스북)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의 관심 있는 현상을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최근 LG그룹의 상속재산 소송이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무려 75년에 걸친 LG가(家) ‘장자승계’ 원칙에 처음으로 균열이 일어난 것이죠. 그동안 LG가는 창업주 구인회 회장을 시작으로 2대 구자경 회장, 3대 구본무 회장, 4대 구광모 회장 등 장자승계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어머니인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는 최근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재산 재분할 소송을 냈습니다. 구본무 회장이 남긴 LG 주식 11.28% 등 2조원대 규모의 재산을 다시 나눌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소송 배경은 베일에 가려졌지만 이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과 맞물려 LG가의 ‘유리천장’을 허물은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이 자연스레 재조명받고 있는데요. 구 부회장은 오빠인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과 경영권을 놓고 2번에 걸친 힘겨루기 끝에 아워홈 수장에 올랐죠.  

구지은(왼쪽) 아워홈 부회장과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 (사진제공=아워홈)
구지은(왼쪽) 아워홈 부회장과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 (사진제공=아워홈)

◆남매 경영권 싸움…LG가 장자승계 첫 번째 반기

아워홈의 경영권 분쟁은 2016년에 시작해 지난해에 끝날 정도로 꽤 오랫동안 다툼이 이어졌습니다. 단순한 경영권 다툼이 아닌, LG가의 장자승계 원칙에 처음으로 반기를 든 사건이라 재계의 이슈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우선 아워홈의 출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워홈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셋째 아들인 구자학 회장이 세웠습니다. 구 회장은 지난 2000년 LG그룹의 계열분리가 본격화되자 기존 LG유통의 식품서비스사업부문을 떼어 내 아워홈을 설립하게 됩니다.

아워홈은 구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20년간 착실한 성장을 거듭합니다. 구 회장은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제일제당, 중앙개발, 럭키, 금성사, 금성일렉트론, LG건설 등 다방면에서 출중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왔습니다.

안타깝게도 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부터 ‘남매의 난’이 본격화되는데요. 슬하에 1남 3녀를 둔 구 회장은 생전 아워홈 경영권을 두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LG가의 전통을 이어가는 차원에서 장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심산이었겠죠. 

그러나 구지은 부회장은 오빠의 경영권 승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미국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인사관리학 석사를 마친 구지은 부회장은 삼성인력개발원과 왓슨와야트코리아를 거친 후, 2004년 아워홈에 입사합니다. 4남매 중 가장 먼저 회사 경영에 뛰어들 정도로 의욕이 넘쳤습니다. 이후 2014년 부사장까지 승승장구하면서 LG가의 첫 여성 후계자로 거론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2016년 구본성 전 부회장이 LG가 장자승계 원칙을 내세워 경영에 참여하자 상황이 급변합니다. 구지은 부회장은 오빠의 등장 이후 관계사인 캘리스코 대표로 밀려나게 됐습니다. 이를 수용하지 못하면서 2017년 임시 주총을 통한 경영권 표대결이 벌어집니다. 

당시에는 차녀 구명진 씨가 구지은 부회장 편에 섰고, 장녀인 구미현 씨는 오빠의 손을 들어줍니다. 구미현 씨가 오빠 편을 들어준 이유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의중이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이러한 ‘캐스팅보드’ 역할 덕분에 경영권 분쟁은 구본성 전 부회장의 승리로 귀결되는데요. 아워홈 지분 구조는 구본성 전 부회장이 38.56%, 구지은 부회장 20.67%, 구미현 씨 19.28%, 구명진 씨 19.6% 등  4남매가 대부분을 확보하고 있어 남매의 이해관계가 긴밀하게 작용합니다.

지난해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이 신년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제공=아워홈)
지난해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이 신년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제공=아워홈)

◆2라운드에서 뒤집기…경영권 불씨는 남아

흥미롭게도 장남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던 경영권 분쟁은 2021년 반전 드라마를 씁니다. 그해 6월 구본성 전 부회장이 보복운전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아워홈 실적까지 내리막길을 걷는 바람에 구지은 부회장이 기회를 잡게 된 것이죠. 특히 첫 번째 남매의 난에서 오빠 편을 들어줬던 구미현 씨는 이러한 분위기에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구지은 부회장은 아워홈 복귀와 경영권 쟁취를 극적으로 이뤄내게 됩니다.

다만 구지은 부회장이 아워홈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한 것은 아닙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의 아워홈 지분 합계가 절반을 넘어서기 때문이죠. 지난해 구본성 전 부회장은 보유 지분을 청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경영권 분쟁을 이어가려 했습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의 지분 매각자문사인 라데팡스파트너스는 구미현 씨에게 지분 동반 매각을 제안한 것으로도 알려졌고요.

그렇지만 2021년 4월 구미현 씨와 구명진 씨, 구지은 부회장 등 세 자매 작성한 협약서가 법원에서 효력을 인정받아 경영권 분쟁은 3라운드까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구미현 씨의 주총 지분권 행사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린 것입니다. 세 자매가 맺은 협약서는 이사 선임과 배당 제안 등에서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경영권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현 상황만 놓고 본다면 구지은 부회장의 입지가 한층 견고해졌다는 시각입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가 지분 동반 매각에 나서려면 아워홈 이사진 3분의 2의 승인을 얻고 자체 실사 승인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이죠. 이사진이 구지은 부회장을 전폭 지지하고 있어 과거와 비교해 반란의 여지가 크게 낮아진 상황입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사진제공=LG전자)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사진제공=LG전자)

◆구지은 성과에 주목하는 이유…‘유리천장’ 깨기 간접 영향

아워홈은 구지은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이후 신장세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내며 위기감이 높아졌지만, 지난해 매출은 1조83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1% 늘어났습니다. 영업이익은 122.7% 급증한 570억원을 기록했고요.

그는 올해 아워홈의 매출 목표를 2조4000억원으로 제시하며 첫 2조원 돌파와 함께 글로벌 시장 진출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청사진입니다. 식품제조와 식자재유통, 단체급식이 주력인 아워홈은 지금도 중국, 베트남, 폴란드, 미국 등 해외 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내수 비중이 압도적이라 해외사업 성과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요. 이러한 공식을 깨뜨리고 내수를 벗어나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다만 해외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비 마련부터 식자재 원가절감을 위한 해외 소싱 효율화 등 난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더욱이 올해 글로벌 경제침체로 인한 내수 위축부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장기화로 인한 식자재 원가 부담 등 헤쳐 나가야 할 악재가 쌓였습니다. 어쩌면 올해가 구지은 부회장의 역량을 시험받기에 최적의 해라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혹자는 구지은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유리천장을 깨뜨린 또다른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인식입니다. LG가의 경영 스타일이 ‘인화(人和)’로 대표된다면, 구지은 부회장은 리더가 인재를 끌고 나가는 삼성가의 경영 스타일에 가깝다는 평가죠.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반대 기류에도 불구하고 주주배당률 0% 승인을 이끌어낸 점, 신입사원 공개채용 면접관에 직접 참여해 “덕질 뭐하냐”고 물어보는 모습은 그의 직관적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향후 구지은 부회장의 경영 성과가 LG가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흥미로운 반외 요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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