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3.16 20:09
정성필 CJ프레시웨이 대표. (사진제공=CJ프레시웨이)
정성필 CJ프레시웨이 대표. (사진제공=CJ프레시웨이)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의 관심 있는 현상을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국내 최대 식자재유통업체인 CJ프레시웨이가 주류사업에 뛰어들 예정입니다. 

최근 CJ프레시웨이는 공시를 통해 이달 27일 열릴 정기주주총회에서 주류중개업 및 주류수출업 등의 사업목적을 추가하는 정관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 위탁운영하는 골프장 내 외식사업장에서 수입 와인을 직접 들여와 공급할 계획입니다. 

언뜻 보기에 신성장동력 발굴 차원으로 주류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업계 전반의 상황을 유심히 살펴본다면 이번 선택은 적잖은 고민을 안고 있는 신사업으로 풀이됩니다. 그렇다면 CJ프레시웨이가 이러한 신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골프장 쟁탈전이 촉발한 주류 판매 경쟁 

우선 관련 산업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골프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특수를 누린 몇 안 되는 레저산업군입니다. 

대한골프협회 등에 따르면 코로나 첫해인 지난 2019년 골프장 이용률은 6.6%에 불과했지만 2021년 10.2%까지 껑충 뛰었습니다. 골프 인구도 2021년 1176만명으로 2017년보다 16.4% 늘었고, 입문자도 5년 전과 비교할 때 8.3% 증가했습니다. 젊은 층 유입이 두드러지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시장 확대가 더욱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에 CJ프레시웨이를 비롯해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등 기존 골프장 식음사업장(레저 컨세션 부문)을 운영하는 식자재유통업체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몇 안 되는 성장 산업이기에 주도권 선점을 위한 다급한 조바심을 숨기지 못할 정도죠.

삼성웰스토리가 골프장에 도입한 딜리버리 로봇. (사진=삼성웰스토리)
삼성웰스토리가 골프장에 도입한 딜리버리 로봇. (사진제공=삼성웰스토리)

때문에 업체 간 순위 경쟁도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관련 시장은 CJ프레시웨이가 오랫동안 업계 1위(사업장 수 기준)를 지키다가 2020년부터 삼성웰스토리에 1위를 내줬습니다. 골프장만큼은 적수가 없다고 자신했던 CJ프레시웨이로선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결과입니다.

얼마 전 삼성웰스토리는 위탁 운영 중인 전국 57곳 골프장 식음사업장에 20종의 신메뉴와 다양한 상품을 선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신메뉴에는 MZ 골퍼들의 취향을 반영한 무설탕음료, 수제버거, 하이볼, 프리미엄 전통주 등 그동안 골프장에서 접하기 어려운 메뉴들이 즐비합니다. 여기에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서빙로봇, 무인 다이닝코트 운영, 주류 판매, 캐디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각종 아이디어를 총동원했습니다. 특히 주류 판매와 캐디 서비스는 골프장 사업주가 원하는 건 모두 해결해주겠다는 ‘영역 파괴’ 수준입니다.

CJ프레시웨이로선 위기감이 한껏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사 전략에 맞서려면 상대방보다 우위를 보일 수 있는 확실한 ‘한 방’이 급하게 필요해졌죠. 주류사업을 카운터펀치로 낙점했다고 봐도 좋습니다. 이번 정관 개정이 단순하게 주류 판매로 잡지 않고 주류 중개‧수출업으로 지명한 것도 이러한 속사정이 읽히는 대목입니다. 

수입 주류 품목을 손쉽게 확대하면서 사업 확장성도 가지는 등 차후 골프장 외 위탁 운영하는 다른 사업장에도 수입 주류를 선보일 가능성이 있겠죠. 다만 홍석우 CJ프레시웨이 홍보팀장은 “골프장 고객사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칠레 사무소를 통해 수입 주류를 확보할 계획”이라며 “수입 주류의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CJ프레시웨이 식자재 배송 차량 모습. (사진제공=CJ프레시웨이)
CJ프레시웨이 식자재 배송 차량 모습. (사진제공=CJ프레시웨이)

◆부담스러운 ‘뭇매’ 사례…그룹 방향성도 '고심'

기호식품인 주류는 과거부터 중독성과 인체에 유해하다는 이유로 정부당국의 수많은 규제를 받아왔습니다. 더욱이 골목상권 침탈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영역이기도 하죠. 

지난해 7개 매장에서 와인을 판매한 CJ올리브영은 논란이 일자 관련 사업 확대를 중단했습니다. CJ올리브영은 건강기능성식품과 화장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H&B(헬스앤뷰티) 스토어로 시작했지만, 이후 식음료부터 인테리어‧캐릭터 상품, 전자기기, 육아용품, 반려동물 상품 등 취급 품목을 확대해나갔습니다. 이는 결국 또 다른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다를 바 없다는 골목상권 침탈 논란을 불러왔고요.

삼성웰스토리는 지난해 고객사 단체급식장에 주류 전문 소매점(와인숍)을 내려다 부정적 기류를 감지하고 조용히 사업을 접었습니다. 와인숍이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본업에 반한다는 ‘외도 분위기’가 일었던 거죠. 이러한 사례처럼 CJ프레시웨이도 향후 사업 방향성에 따라 비슷한 논란에 휘말릴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시각을 좀 더 확대해본다면 CJ그룹의 비상경영과 다소 동떨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올해 CJ그룹은 재계 공통분모인 저성장 위기를 글로벌 시장에서 돌파하려고 합니다. CJ제일제당의 경우 북미 시장의 성공적 안착에 힘입어 유럽, 동남아 등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고요. CJ대한통운도 세계 각지의 전략거점을 확대하고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한 종합물류서비스 제공에 역량을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 구조조정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진 CJ ENM 역시 자체 군살빼기와 함께 ‘K-콘텐츠’의 글로벌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주요 계열사마다 ‘글로벌’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CJ프레시웨이의 글로벌 움직임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되레 글로벌 사업을 축소하는 중이죠. 그동안 추진해왔던 경영전략의 연장선에서 살펴본다면 이번 주류사업이 ‘실리주의’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CJ프레시웨이 양산 물류센터 전경. (사진제공=CJ프레시웨이)
CJ프레시웨이 양산 물류센터 전경. (사진제공=CJ프레시웨이)

◆영업이익 사상 최대지만…매출은 '규모의 경제' 역부족

지난 2020년 CJ프레시웨이 대표이사에 발탁된 정성필 대표는 부임하자마자 수익성 강화를 최우선 전략으로 내세웠습니다. 앞서 2018년 CJ푸드빌 대표로 선임된 이후 대표 브랜드인 투썸플레이스의 분리매각을 성사시키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해 재무건전성 확보라는 확실한 치적을 쌓았죠. CJ푸드빌 부채비율은 2018년 6000%에서 2019년 600% 수준까지 떨어지는 놀라운 변화가 이뤄졌습니다. 

정 대표의 이러한 기조는 CJ프레시웨이에서도 이어집니다. 2012년부터 시작해 국내 급식산업 첫 해외진출로 평가받는 베트남 급식사업장을 단계적으로 축소했고, 2020년에는 중국법인 지분을 처분해 중국 급식사업을 사실상 철수했습니다. 2021년에는 축산유통사업을 벌이던 자회사 프레시원미트를 처분하는 등, 적자 사업에 가차 없이 칼을 휘둘렀습니다. 

해당 전략은 CJ프레시웨이에서도 주효한 듯 보입니다.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사상 최대 영업이익인 97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매출액은 2019년 3조원을 넘은 이후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식자재유통산업이 ‘규모의 경제’라는 큰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만큼, 매출 정체를 간과해선 안 된다는 우려도 이 때문입니다.

향후 이러한 실리전략이 장기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미지수입니다. 업계 1위가 실리에 치중하면서 국내 식자재유통시장의 선진화라는 순기능적 역할도 퇴색될 여지가 있다는 건 고민해야 할 지점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온라인 플랫폼이 크게 성장하는 등 유통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정 대표의 실리주의가 국내 식자재유통산업과 CJ프레시웨이의 위상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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