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7.18 06:00
왼쪽부터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개최한 현암 김종희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그룹)
왼쪽부터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개최한 현암 김종희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그룹)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의 관심 있는 현상을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최근 한화그룹 오너가 3세이자 3남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전무)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 수제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의 화려한 입성부터 와인 자회사 ‘비노갤러리아’의 설립,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스페인 흑돼지 ‘이베리코’의 국내 도입 등 벌여 놓은 사업만 세도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김 본부장의 이러한 광폭 행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형들(김동관‧김동원)과의 경쟁구도, 더 나아가 한화갤러리아의 계열분리를 염두에 뒀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김승연 회장 ㈜한화 지분, ‘상속 퍼즐’ 핵심

한화그룹은 표면적으로 3세 승계를 끝마친 상황입니다. 장남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에너지·석유화학·방산 등의 주력사업으로 그룹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 부문을, 3남인 김동선 본부장이 유통·호텔 부문을 맡는 방향으로 승계 구도를 정리했습니다.

다만 승계의 마지막 관문은 아직 넘지 않았는데요. 그룹 지배구조 정점인 ㈜한화 지분이 3형제에게 상속되지 않은 것이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화 지분 22.65%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3형제에게 지분을 넘겨주면 최대 60%에 이르는 상속세를 부담해야 합니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업의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덜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판세를 지켜봐야 하는 실정입니다.

현재까지 3형제의 ㈜한화 지분율은 장남이 4.91%, 차남과 3남이 각각 2.14%입니다. 김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3형제에게 균등 분배하면 장남은 12.36%, 차남과 3남은 각각 9.69%로 올라갑니다.

문제는 장남의 지분율을 두 자릿수로 올려도 그룹을 장악할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김 회장 수준까지 올라와야 경영권에 힘이 실리지 않겠냐는 해석인데요. 오너의 낮은 지분율은 적대적 인수합병(M&A) 등, 혹시 모를 외부 침탈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자회사 신규 상장부터 합병, 3형제의 이해득실에 따른 지분 맞교환 등 장남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시장에 거론되고 있습니다.

한화그룹 창업주인 고 김종희 회장. (사진제공=한화그룹)
한화그룹 창업주인 고 김종희 회장. (사진제공=한화그룹)

◆3세 경영, 2세와 분위기가 달라졌다

재계 서열 7위 한화는 그간 계열분리 사례가 드물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해 GS그룹, HD현대그룹, 신세계그룹, CJ그룹 등 재계의 계열분리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한화그룹은 빙그레가 유일한 계열분리입니다. 한때 제일화재가 계열분리에 나섰지만, 한화그룹으로 복귀했죠.

한화그룹에서 계열분리가 드문 이유는 창업주인 고(故) 김종희 회장의 영향이 크게 작용합니다. 슬하에 2남 1녀만 두며 당시 총수들보다 상대적으로 단출한 계보인 점, 여기에 사촌의 경영 참여가 일절 없을 만큼, 창업주 형제 간에 명확한 선을 그었던 것이 이유입니다. 만약 김 창업주가 유언장을 작성해 놓았다면 한화는 여전히 계열분리 없이 단일체제를 유지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김 창업주는 59세의 이른 나이에 이렇다 할 유언장 없이 별세했습니다. 이후 장남 김승연과 차남 김호연은 상속을 둘러싸고 10년여에 걸쳐 법적 소송을 벌이는데요. 형제 간의 갈등은 우여곡절 끝에 봉합됐지만,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죠. 

흥미로운 점은 3세 경영에서는 이러한 갈등 양상이 좀 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2세 경영에서는 큰 반목 없이 계열분리라는 특효약이 잘 먹혔는데요. 지난 2000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도 실상을 뜯어보면 동시다발적 계열분리로 직접적 마찰을 피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3세 들어선 직접적인 충돌도 마다하지 않고 이해득실을 우선 따지는 양상입니다. 대한항공은 소송 등 우여곡절 끝에 조원태 회장 체제로 봉합되었지만, 다시 ‘남매의 난’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게 세간이 시선입니다. 범LG가의 한 축인 아워홈 역시 최근 남매 갈등이 다시 불거진 바 있죠. 회사가 휘청일지라도 굴하지 않습니다. 경영권 다툼과 성격은 다르지만, 최근 구광모 LG 회장을 둘러싼 오너일가의 상속회복청구 소송에서도 전과는 달라진 기류를 읽을 수 있습니다.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파이브가이즈 강남'에서 열린 브랜드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파이브가이즈 강남'에서 열린 브랜드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김동선의 계열분리 야심, 롤모델은 CJ‧신세계?

이러한 일련의 배경은 앞서 언급한 김동선 본부장의 광폭 행보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김 본부장은 형들보다 경영 참여가 상대적으로 늦어졌는데요. 때문에 형들보다 빠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 본부장은 올해 들어서 한화갤러리아 지분을 10차례에 걸쳐 매입했습니다. 주식 매입에는 지난해 한화그룹으로부터 받은 배당금과 개인 자금까지 보태졌는데요. 연이은 지분 매입 덕분에 빠르게 3대 주주로 올라섰습니다. 한화갤러리아 최대주주가 ㈜한화(24.92%)라는 점도 지분 매입의 보이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 3형제의 관계가 표면적으로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김 회장이 계열분리를 싫어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김 본부장의 최근 행보들은 계열분리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 김 회장도 이를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지금까지 유통업계에서 계열분리에 성공한 사례는 CJ그룹과 신세계그룹이 꼽힙니다. 1996년 삼성에서 분리된 CJ그룹은 독립 직후 기존의 식음료 영역에서 벗어나 물류, 방송, 극장 등 다방면의 사업 확장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덕분에 계열분리 당시 30위권에 그쳤던 재계 순위를 13위(2023년)까지 끌어올렸죠.

신세계그룹 역시 1997년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할 때 규모가 가장 작았지만, 지금은 재계 순위 11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대형마트인 이마트부터 백화점과 면세점 등 국내 유통업의 ‘신세계’를 이뤄낸 이명희 회장의 경영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김 본부장이 물려받게 될 유통·호텔 부문은 한화그룹의 주력 사업과 비교할 때 미래가 밝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2019년 25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뒤 2021년까지 적자 흐름을 이어가다 지난해서야 흑자로 돌아섰는데요. 매출도 한때 1조원을 넘나들었지만, 2020년 코로나 당시 4600억원대까지 무너졌습니다.

김 본부장이 공을 들이고 있는 한화갤러리아 역시 2021년 4월 한화솔루션에 흡수합병된 후 올해 인적분할돼 재정비가 한창입니다. 지난해 매출은 5327억원에 영업이익은 373억원으로 나쁘지 않은 실적이지만, 백화점 3사(신세계‧롯데‧현대)와 비교하면 다소 격차가 있습니다.

다만 김 본부장이 직접 들여온 미국 수제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는 초반 흥행에 성공해 그의 경영 능력을 입증해 주는 첫 단추가 됐습니다. 향후 신규 매장 확대에 따른 흥행 지속성이 관건으로 작용할 조짐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지난해 흑자 전환했지만, 당분간 누적된 적자로 사업 확장이 쉽지 않다”며 ”한화갤러리아도 비슷한 처지라 당장의 계열분리는 불가능할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모를 일입니다. 그는 “김 본부장의 향후 성과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며 "계열분리라는 세간의 관심사에 그의 성과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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