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6.07 06:00

'우유 양극화' 시대 임박…2026년 미국·유럽산 무관세 수입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의 관심 있는 현상을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동네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올해부터 카페 메뉴에 수입멸균우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산우유 가격이 계속 오르자 원가절감 차원에서 수입멸균우유로 바꾼 건데요.  A씨는 “저렴한 가격도 장점이지만, 유통기한이 길고 실온보관도 가능하다”며 “앞으로 수입멸균우유를 계속 쓸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B씨는 최근 수입멸균우유가 값싸고 맛있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온라인 몰에서 수입멸균우유를 구매했습니다. 하지만 수입멸균우유는 입맛에 맞지 않았습니다. B씨는 “기호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수입멸균우유는 맛이 없었다”며 “비싸더라도 국산우유를 사 먹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입멸균우유, 6년 동안 2618% ‘폭발 성장’

수입멸균우유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멸균우유의 국내 유입량은 3만3058톤으로 집계됩니다. 전년 2만3284톤과 비교할 때 약 42%나 증가한 결과인데요.

기간을 좀 더 넓혀본다면 수입멸균우유의 증가세는 경이로운 수준입니다. 2016년 1216톤에 불과했지만, 2017년 3440톤에서 2019년 1만484톤으로 급증했습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성장률은 무려 2618%에 달합니다.

여기에 수입멸균우유를 포함한 치즈, 분유, 버터, 발효유 등의 유제품 수입량은 지난해 252만8000톤인데요. 같은 기간 국내 낙농가의 원유 생산량인 197만8000톤보다 50만톤 이상 많습니다. 올해 국내 원유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2.8% 줄어든 194만5000톤, 유제품 수입량은 0.6% 증가한 263만6000톤이 예상되는 등 자급률이 해마다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산우유의 가격 인상은 멈출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낙농진흥회는 이달 9일 소위원회를 열고 올해 원유가격 협상에 나설 예정입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최근의 인플레이션과 사룟값 증가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원유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국산우유는 소비자 가격저항선이라고 여겨졌던 리터(ℓ)당 3000원대를 넘어섰습니다. 최근 시중 판매가는 우유 1ℓ가 3000~3200원, 2ℓ가 6000~6400원에 달합니다. 우유 사먹기 무섭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가격이 오른다면 국산우유에 대한 소비자 반감이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마트 한 매장에서 유제품이 진열된 모습. (사진제공=이마트)
이마트 한 매장에서 유제품이 진열된 모습. (사진제공=이마트)

◆비싼 우윳값에도…정부지원금 900억 투입

국제물가 비교사이트 글로벌프로덕트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우리나라 우윳값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비쌉니다. 전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높은 홍콩이 1위를 차지했고, 지난해부터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가나가 2위입니다. 몇몇 국가의 경제적 특수성을 제외한다면 우리나라 우윳값은 물가 대비 과도한 수준입니다.

왜 우리나라 우윳값이 다른 나라보다 비싸냐고 따진다면 국내 낙농업의 태생부터 들춰봐야 합니다. 국내 낙농업은 1960년대 정부가 낙농 차관을 들여와 농가에 젖소를 보급할 정도로 정부의 육성 의지가 강했습니다. 정부가 낙농업의 골격을 짜다 보니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컸죠. 과거 학교우유급식이 반강제적으로 이뤄진 것부터 지난 2002년 원유 파동 때 쿼터제를 도입한 것, 낙농가 구조조정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것도 이러한 배경에 기인합니다.

2002년 원유 파동은 그해 253만톤의 원유가 생산되면서 하루 1000톤이 넘는 원유가 남아돈 수급 불균형 사건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해 정부가 원유가격을 쥐락펴락했는데요.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면서 정부의 원유가격 통제권이 힘을 잃게 된 거죠. 정부는 유업체와 농가가 협상해 미리 정해진 양(쿼터)만큼 원유를 일정가격에 사들이는 쿼터제(총량제)를 시행하기에 이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의 상황이 찾아옵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구제역 확산에 젖소 사육 마릿수가 급감하면서 원유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겁니다. 이에 정부는 낙농가의 원유 생산을 안정을 위해 소비자물가와 생산비에 원유가격을 연동시킨 ‘원유가격연동제’를 마련합니다. 낙농가 입장에서는 원유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어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제도였죠.

그렇게 원유가격연동제가 10년 동안 운영된 결과, 우윳값은 천정부지 치솟고 맙니다. 비싼 우윳값에 뿔난 소비자들은 원유가격연동제를 들먹였고, 낙농가들은 유업체들과 유통채널의 과도한 마진 책정이 우윳값을 올린 주범이라고 항변합니다.

2021년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낙농가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낙농육우협회는 국산우유의 유통마진율이 38.0%(2019년 기준)에 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영국(29.1%), 일본(11.4~17.7%), 미국(8.8%)보다 최대 4배 높은 수준입니다.

결국 비싼 우윳값은 국내 낙농업의 구조적 한계와 이해당사자들의 얽히고설킨 관계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요. 아쉬운 점은 정부의 편향적 정책이죠. 낙농 전문가들은 그간 정부 정책이 국내 낙농업 생존에 우선, 경쟁력 강화는 뒷전이 됐고 이런 결과로 돌아왔다고 지적합니다.

올해 기준으로 농림축산식품부가 관련 업계에 지원하는 세금은 939억원 규모입니다. 학교우유급식 지원금이 470억원이며, 축산물수급안정금이 373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특히 축산물수급안정금에는 유업체에 지원하는 국산 유제품 경쟁력강화지원금(가공유제품 차액보전)이 포함됩니다. 유업체들은 지난해 167억원 정도의 정부지원금을 수령했는데요. 올해도 비슷한 수준의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지원금까지 수령하는 것은 비싼 우윳값과 세금까지 소비자들에게 이중 부담시킨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우유 소비 행태 등 시장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어 정부의 정책 방향성이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관세 철폐 3년 앞으로…살아 남으려면 '한우'처럼?

정부는 지난해 원유가격연동제의 여론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마련했습니다. 올해가 차등가격제 시행의 원년이 되는 셈이죠.

차등가격제는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구분해 가격을 달리 책정했으며, 원유를 과잉생산해 생산비가 증가하더라도 원유가격 인하(최대 생산비 증가액의 –30%까지)를 가능하게 한 것이 핵심입니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논리를 일부 반영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문제는 유가공업체와 낙농업계의 반응인데요. 국산우유의 가격경쟁력을 높여 수입산우유에 맞서야 한다는 인식이 없다면 아무리 판을 깔아줘도 말짱 헛일이죠. ‘평안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처럼, 낙농가와 유업체 모두 제도의 취지와 순기능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차등가격제는 유명무실해질 겁니다. 차등가격제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면 다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또 다른 목소리가 나오겠죠.

일부 전문가는 국산우유의 ‘사형선고일’이 딱 3년 남았다고 말합니다. 오는 2026년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과 유럽산 우유 및 유제품이 무관세로 수입되기 때문인데요. 이미 관세가 있음에도 수입멸균우유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국산우유가 가격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혹자는 국산우유가 프리미엄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가격을 낮추기 싫기 때문에 살길은 프리미엄밖에 없다는 판단이죠. 시장에서 수입육이 범람하고 있지만 프리미엄을 내세운 한우가 여전히 득세하는 것처럼, 국산우유도 충성심 높은 소비자들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입니다. 서론에 언급한 것처럼 수입멸균우유가 입에 맞지 않아 국산우유만 먹겠다는 B씨의 사례도 이러한 희망을 동조하게 합니다.

정말 이러다간 2026년부터 서민은 값싼 수입멸균우유를, 부자는 비싼 국산우유를 소비하는 '우유 양극화'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닐까요.

소비자야 어떤 것을 마실지 선택하면 끝이지만, 업계는 더 고민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가격에 밀려 수요가 쪼그라들면 가격은 더 오를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속가능한 낙농업을 위해 올해만큼은 원유가격 인하에 머리를 맞대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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