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4.03.05 09:15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제공=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제공=롯데그룹)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에서 불거진 이슈를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재계서열 6위인 롯데그룹에 큰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그룹 성장 방식이었던 인수합병(M&A)을 과감히 버리겠다고 ‘깜짝 선언’했기 때문인데요. 이는 장기간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계열사마다 매각 내지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서겠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최근 편의점 브랜드 세븐일레븐의 운영사인 코리아세븐은 ATM 사업부 매각에 나서겠다고 밝혀 신 회장의 ‘살생부’ 1호에 올랐습니다. 그룹 계열사마다 신 회장의 살생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등, 당분간 그룹 전반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 전망입니다.

◆매각 언급에 ‘가시방석’ 앉은 코리아세븐

신 회장은 지난 1월 30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호남석유화학(롯데케미칼 전신)을 상장하고 편의점과 타사 주류사업 등 크고 작은 회사 60곳 정도를 인수했지만 지금은 방침을 바꿨다”며 “몇 년을 해도 잘되지 않는 사업은 타사에 부탁하는 것이 종업원에게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앞으로 몇 개를 매각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신 회장의 이러한 발언은 그동안 롯데그룹의 성장 공식이었던 M&A를 당분간 진행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히는데요. 한편으로는 성장성이 높은 사업을 밀어주겠다는 ‘선택과 집중’을 내포합니다.

신 회장은 인터뷰에서 4개 신성장 영역(바이오 테크놀로지, 메타버스, 수소에너지, 이차전지 소재)을 제시해 선택과 집중의 영역을 구체화했습니다. 다만, 롯데그룹의 모태인 유통·식품·호텔 사업은 일절 언급하지 않아 구조조정의 집중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서울시 송파구에 소재한 '롯데타워' 전경. (사진제공=롯데그룹)
서울시 송파구에 소재한 '롯데타워' 전경. (사진제공=롯데그룹)

우선 신 회장의 살생부 1호에 오른 코리아세븐은 적자 탈출이 요원한 처지입니다. 지난 2022년 연결 기준 48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고,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107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 손실 규모가 두 배 이상 불어났습니다. 2022년 3133억원을 투입한 미니스톱 인수가 회사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코리아세븐은 국내 편의점 시장에서 CU와 GS25의 양강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포부로 미니스톱 인수에 나섰습니다.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와의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다는 계산부터, 당시 코로나 사태가 촉발한 편의점 산업의 고공성장이 미니스톱 인수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미니스톱은 인수 이후 세븐일레븐으로 통합되는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아직까지 300여 개 매장이 미니스톱 간판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통합작업이 길어질수록 관련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며, 상품 경쟁력 제고는 후순위로 밀린 판국입니다.

특히 미니스톱 인수과정에서 발생한 영업권 2087억원은 매년 큰 폭의 손상차손이 발생해 현재까지 영업권 상각만 644억원으로 나타납니다. 미니스톱 영업권이 인수자금의 약 60%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뼈아픈 결과입니다. 시장에서는 향후 영업권 상각이 1000억원대까지 치솟을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는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378.6%로 기록해 지난해 말보다 103.9%포인트 높아진 상황입니다.

결국 신 회장은 이러한 상황을 보다 못해 침묵을 깹니다. 코리아세븐은 오는 20일 100% 자회사이자 미니스톱 운영사인 롯데씨브이에스711을 흡수합병할 계획이며, 현금입출금기(ATM) 사업부(옛 롯데피에스넷)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롯데온은 지난해 10월 가수 이효리를 광고모델에 발탁하는 스타마케팅에 나섰다. (사진제공=롯데온)
롯데온은 지난해 10월 가수 이효리를 광고모델에 발탁하는 스타마케팅에 나섰다. (사진제공=롯데온)

◆지지부진한 유통 계열사…‘아픈 손가락’ 된 이커머스

문제는 코리아세븐 외 실적이 좋지 않은 유통 계열사들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커머스 사업의 롯데온은 3년째 적자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0년 공식 출범한 롯데온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후발주자였지만, 롯데그룹의 역량을 고려할 때 시장 안착이 어렵지 않다는 관측이었습니다. 백화점·마트·슈퍼·홈쇼핑·하이마트 등 그룹 유통 계열사들의 유기적 협력으로 온라인 시장에서도 ‘유통 공룡’이란 수식어를 증명할 것이란 기대였죠. 

하지만, 2021년 1378억원의 매출과 2022년 매출 1131억원, 지난해 1351억원으로 매출 신장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3조원을 투입하면서 2023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에 한참 못 미친 결과입니다. 해당 기간 영업손실은 948억원에서 1558억원, 856억원으로 흑자 전환이 아득한 실정인데요.

그렇다고 신 회장이 이커머스 사업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유통업계의 대세를 따르지 않겠다는 ‘이단아’의 행보가 자칫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롯데쇼핑은 지난해 말 영국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리테일테크 기업 ‘오카도(Ocado)’와 손잡고 최첨단 물류센터를 부산에 착공하며 해법 마련에 분주합니다. 부산 물류센터는 2025년 하반기 가동할 예정이며, 향후 2030년까지 국내 6개의 고객풀필먼트센터(CFC)를 마련하면서 온라인 그로서리 사업을 고도화할 방침입니다. 대규모 인프라 확충으로 반전을 이뤄내겠다는 구상이지만, 쿠팡의 시장 장악력이 더욱 커지고 있어 부담감을 안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롯데그룹은 부산에 고객 풀필먼트 센터 기공식을 개최하고 오는 2025년 가동할 계획이다. (사진제공=롯데그룹)
지난해 12월 롯데그룹은 부산에 고객 풀필먼트 센터 기공식을 개최했다. 이 센터는 오는 2025년 가동할 계획이다. (사진제공=롯데그룹)

롯데그룹의 유통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롯데쇼핑도 불안한 처지입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30% 넘게 늘어난 5084억원으로 7년 만에 당기순이익(1797억원)을 냈으나, 손상차손 절감이 흑자 요인으로 긴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손상차손이란 회사 보유의 유·무형자산 가치가 장부가격보다 떨어질 때, 이를 손실과 비용으로 회계 반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보유 자산 장부가가 1000억원에 자산 평가로 회수 가능한 현금이 500억원 수준이라면, 500억원을 비용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해석하면 지난해 롯데쇼핑의 수익성 증대는 적자 점포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다. 적자 점포의 지속적인 수익 개선이 뒤따라야만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있겠죠.

또한 국내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대표주자인 ‘롯데리아’ 운영사인 롯데GRS는 경쟁사보다 실적이 크게 저조해 고민을 더하고 있습니다. 롯데GRS는 2022년 17억원의 영업이익을, 같은 기간 ‘맘스터치’ 운영사 맘스터치앤컴퍼니는 이보다 30배가 넘는 52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습니다. 

이 밖에 2022년 520억원의 영업손실에서 지난해 82억원의 영업이익으로 흑자전환한 하이마트 역시 지속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 가전 양판점 시장은 이커머스의 영향력 확대로 매출 확대에 제동이 걸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죠.

호텔롯데는 전체 매출에서 65%가량 차지하는 롯데면세점이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318억원의 영업이익에 그쳐 ‘만년 2인자’로 평가받던 신라면세점(521억원)에 1위를 내줘 자존심을 긁히기도 했습니다.

롯데칠성음료 ‘새로’ 소주. (사진제공=롯데칠성음료)
롯데칠성음료 ‘새로’ 소주. (사진제공=롯데칠성음료)

◆주류사업 매각할까…“17조 토지자산 활용이 현실적”

그룹 전체로 보면 실적 부진은 유통 계열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022년 말부터 시작된 롯데건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며, 최근 금융권의 지원사격에 힘입은 펀드 조성으로 겨우 ‘급한 불’을 껐습니다.

시장에서는 롯데건설의 재무부담을 롯데케미칼이 온전히 짊어질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는데요. 앞서 단행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와 한샘의 인수, 솔루스첨단소재 투자 등에 따른 재무 부담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힙니다. 결국 신 회장이 일부 사업 매각과 고강도 구조조정을 언급한 것은 이러한 위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결과로 풀이됩니다.

한편에서는 신 회장이 만약 매각 방침을 구체화한다면 롯데칠성음료의 주류사업이 이상적이라는 분석을 제기합니다. 롯데칠성음료의 주류사업부문은 지난해 8039억원의 매출과 336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습니다. 맥주부문에서는 고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소주부문에서는 ‘새로’ 소주의 시장 안착에 힘입어 지속 성장이 기대된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죠.

여기에 현금창출력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주류사업만의 특징과 국내외 사모펀드(PEF)들이 공통적으로 식음료 사업에 관심이 많다는 점은 우호적 환경으로 작용합니다. 최근 국내 투자 시장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PEF 출자자(LP)로 적극 참여하면서 우수한 매물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요. 롯데칠성음료의 주류사업이 시장에 나온다면 높은 프리미엄을 형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신 회장이 오랫동안 애착을 가졌던 주류사업에 손을 뗀다면, 그 자체로 그룹 전반에 강력한 시그널을 전달하는 부가적 효과도 얻을 수 있겠죠.

지난 2017년 4월 3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롯데그룹 50주년 창립 기념식에서 신동빈 회장이 ‘뉴롯데 램프’를 점등하고 있다. (사진제공=롯데그룹)
지난 2017년 4월 3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롯데그룹 50주년 창립 기념식에서 신동빈 회장이 ‘뉴롯데 램프’를 점등하고 있다. (사진제공=롯데그룹)

최근 양극박 사업을 물적분할한 롯데알미늄의 행보도 주목할 사항입니다. 그룹의 유동성 위기에서 자금 부담의 일부를 짊어지지 않겠냐는 관측인데요. 물적분할 후 직접 상장 내지 상장 전 지분 투자(프리 IPO) 수순을 밟아 투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습니다. 양극박은 나트륨배터리나 전고체 배터리 등에 적용할 가능성이 있어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평가입니다.

다만, 재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롯데그룹이 주요 사업을 매각한 선례가 극히 일부분(카드·손해보험)인 만큼, 과연 신 회장이 대대적인 매각 작업을 구체화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나옵니다. 신 회장이 경각심 차원에서 단순 엄포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죠.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선대 회장부터 매각을 극히 꺼리는 경영 기조를 유지한 터라 신 회장이 이를 무너뜨리고 전방위적 매각에 나설지 의문”이라며 “그룹이 보유한 17조원 이상의 토지자산을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타개책일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2015년부터 불거진 경영권 분쟁과 2018년 사법리스크는 그룹 체질 개선의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한 대형 악재”라며 “신 회장이 숱한 M&A로 사세를 급격히 불렸다면, 이제는 그룹의 위기를 헤쳐나갈 위기 대응 능력을 보여줘야 할 시기”라고 진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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