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4.01.08 06:00
전인장 삼양식품 전 회장(왼쪽)과 김정수 부회장. (사진제공=삼양식품)
전인장 삼양식품 전 회장(왼쪽)과 김정수 부회장. (사진제공=삼양식품)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에서 불거진 이슈를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삼양식품그룹이 최근 김정수 부회장의 아들인 전병우 전략기획본부장을 상무로 승진시켰습니다. 올해 이립(而立) 30세인 전 상무는 이번 승진으로 식품업계 최연소 임원에 등극했는데요.

업계 안팎에서는 그의 조기 등판을 두고 회사가 ‘오너 3세’ 승계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삼양식품그룹은 지난 2017년부터 오너 일가의 공금 횡령과 일감몰아주기 등 각종 리스크에 홍역을 앓은 적이 있었죠. 지난해 김정수 부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으면서 ‘오너 리스크’를 가까스로 털어낸 상황이기도 합니다.

오너 리스크의 여진이 아직 남아 있는 시점에서 때이른 3세 승계 움직임은 또 다른 오너 리스크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K라면’ 원조…‘영광과 시련’의 발자취

삼양식품은 우리나라 라면 역사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지난 1961년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은 남대문 시장에서 ‘꿀꿀이죽’으로 허기를 달래던 서민들의 애환을 직접 해결해보겠다며 삼양식품을 설립하죠.

당시 전 명예회장은 라면 종주국인 일본의 묘조(明星)식품으로부터 기술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전 명예회장의 진정성에 감복한 오쿠이 묘조식품 사장이 임직원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라면 제조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렇게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해주겠다는 전 명예회장의 열망에 힘입어 1963년 국내 첫 라면인 ‘삼양라면’이 탄생합니다. 삼양라면은 출시 초기 국민 인식 확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꾸준한 판촉행사와 시식행사를 이어가며 3년 만에 국민식품의 대명사로 등극했습니다.

이후 삼양식품의 아성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에 이릅니다. 1972년 국내 첫 컵라면인 ‘삼양 컵라면’ 출시 등 한발 앞서간 기술력을 앞세워 경쟁주자들을 큰 격차로 따돌렸는데요. 농심이 시장 후발주자로 나섰지만, 1969년 삼양라면의 시장점유율은 80%를 훌쩍 넘습니다. 이후 야쿠르트(1983년), 빙그레(1986년), 오뚜기(1987년 청보 인수) 등이 라면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삼양식품의 입지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故)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 (사진제공=삼양식품)
고(故)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 (사진제공=삼양식품)

하지만, 우리나라 최악의 식품안전 오판 사고로 꼽히는 1989년 ‘우지 파동’은 삼양식품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깁니다. 삼양식품이 공업용 우지(쇠고기기름)로 라면을 제조했다는 수사 결과가 언론에 발표된 것인데요. 삼양식품은 이 사건으로 인해 점유율이 순식간에 10%까지 폭락하고 말았습니다. 나중 법원의 무죄 판결로 억울함을 풀었지만, 1998년 부도 위기까지 내몰리고 말았죠.

업계 일각에서는 삼양식품이 우지 파동을 겪은 후 재기에 어려움을 겪은 이유로 ‘2세 경영’을 지목합니다. 전 명예회장은 이계순 여사와의 슬하에 2남 5녀를 뒀고 장남인 전인장 회장을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합니다. 

1992년 삼양식품 영업담당 이사로 입사하며 경영에 참여한 전 회장은 우지 파동을 극복할 묘안을 내놓지 못하며 1998년 회사의 부도 위기까지 초래하게 됩니다. 이후 2003년 사장직을 내려놓으며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는 등 경영적 책임을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삼양식품이 화의를 졸업하자, 2005년 부회장 승진과 2010년 회장 취임으로 다시 경영 일선에 등장합니다.

삼양식품의 옛영광을 회복시켜준 '불닭볶음면'. (사진제공=삼양식품)
삼양식품의 옛영광을 회복시켜준 '불닭볶음면'. (사진제공=삼양식품)

◆위기에 등장한 ‘불닭볶음면’…이어진 오너 일가의 ‘탈선’

부도 위기를 넘긴 삼양식품은 국내 라면 업계 3~4위로 체면치레를 이어가게 되는데요. 옛 영광과 비교하면 여전히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12년 김정수 부회장이 직접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불닭볶음면’이 빛을 보면서 삼양식품은 반등의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전 회장의 부인인 김 부회장은 2000년부터 경영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2011년 고등학생이던 딸과 서울 명동을 지나다 ‘불닭’을 파는 음식점에 젊은이들이 줄을 서는 모습을 보고 확신이 섰다고 하는데요. 불닭볶음면은 2012년 출시 첫해부터 큰 반향을 불러왔고, 2015~2016년에는 ‘수출 잭팟’까지 터뜨리며 단숨에 한국 라면의 인기를 이끄는 일등공신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김 부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 몰랐다”며 “하늘이 ‘너희 노력했으니까 이것 받아라’고 선물을 준 것 같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전중윤 명예회장은 불닭볶음면의 세계적 성공을 보지 못하고 2014년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했죠.

불닭볶음면의 성공은 김 부회장의 회사 내 입지를 단단하게 해줍니다. 보통 재벌 오너가의 며느리가 임원에 오르는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김 부회장처럼 회사 실적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다만, 불닭볶음면의 흥행 이후 감춰졌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게 됩니다. 전 회장과 김 부회장은 2008~2017년까지 삼양식품 계열사로부터 납품받은 식자재 일부를 오너 일가가 설립한 유령회사(페이퍼컴퍼니)로부터 납품받은 것처럼 속이는 등, 회삿돈 49억원을 횡령했습니다.

횡령한 돈은 오너 일가의 주택 수리비, 개인 신용카드 대금, 아들 용돈, 자동차 리스 비용과 같이 사적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전 회장은 2020년 징역 3년의 실형을, 김 부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받았습니다.

2017년 무역의날에서 전인장(왼쪽) 삼양식품 전 회장과 김정수 부회장이 '동탑산업훈장'과 '산업통상자원부장관표창상'을 수상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삼양식품 공식 블로그)
2017년 무역의날에서 전인장(왼쪽) 삼양식품 전 회장과 김정수 부회장이 '동탑산업훈장'과 '산업통상자원부장관표창상'을 수상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삼양식품 공식 블로그)

오너 일가의 실형은 삼양식품을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HDC그룹과의 ‘절교’로도 이어집니다. HDC그룹은 고 정세영 명예회장과 삼양식품 전 명예회장의 돈독한 인연을 바탕으로 2005년 삼양식품의 경영권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2019년 삼양식품 2대 주주(지분 16.9%)의 위치에서 오너 일가가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에 참여하지 말 것을 요구했지만, 오너 일가의 완강한 버팀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또한 전 회장은 검찰 수사와 여론을 의식해 결국 회장직을 사퇴했지만, 사내이사는 유지하며 ‘눈속임 사퇴’라는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HDC그룹은 자포자기한 듯 삼양식품 지분을 전량 처분하며, 양사 명예회장의 인연까지 한때의 추억으로 정리하고 맙니다.

오너 일가의 잡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2017년에는 전 회장의 누나인 전문경 삼양USA 대표와 북미 경영권을 두고 1조원대 소송전이 벌어졌는데요. 앞서 전 명예회장은 1997년 둘째 딸 전문경 대표에게 삼양USA를 넘기면서 100년 동안 북미지역에서 독점공급권을 갖도록 했습니다.  

전 명예회장이 둘째 딸에게 일종의 유산을 남겨준 것이지만, 전 회장 오너 일가가 이를 거부하면서 골육상쟁이 일어난 것이죠. 양측은 2018년 410만달러(약 43억원) 합의금을 받는 조건으로 소송전을 끝냈지만, 남매가 갈라서는 비극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2021년에는 전 회장이 141억원의 퇴직금을 챙기고, 김 총괄사장도 퇴직소득 41억원을 포함해 44억원의 보수를 받아 거액의 ‘셀프 퇴직금’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삼양식품은 장기간에 걸쳐 숱한 오너 리스크를 겪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오너 일가가 원하는 대로 경영권을 방어했고, 회사를 먹여 살리는 ‘불닭 신화’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경영권 방어에 사력을 다했기 때문일까요? 오너 일가는 이제 오너 3세인 전병우 상무의 경영권 승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삼양식품 오너 3세인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상무. (사진제공=삼양라운드스퀘어)
삼양식품 오너 3세인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상무. (사진제공=삼양라운드스퀘어)

◆“능력 없는 3‧4세 경영권 세습은 기업과 사회에 큰 해악”

전 상무는 김 부회장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만 25살에 입사합니다. 입사 1년 만에 삼양식품 해외전략부문 부장으로 승진했고, 지난해 9월에는 그룹 지주사인 삼양라운드스퀘어 상무에 오르는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전 상무는 2022년 지분 100% 보유의 개인회사인 아이스엑스를 지주사에 흡수합병시키며 지주사 지분을 24.2%로 늘리는 등, 이미 승계 작업이 일정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김 부회장이 회장 직함을 이어받지 않고 있는 점도 3세 승계를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입니다. 일련의 흐름에 비춰보면 빠른 시일 내 3세 승계에 마침표를 찍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전 상무는 회사에 입사한 뒤로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입니다. 더욱이 전 상무는 오너 일가의 횡령 사건이 불거졌을 때 13살의 어린 나이에 페이퍼컴퍼니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난 바 있죠. 아이스엑스의 지주사 합병도 이러한 페이퍼컴퍼니 의혹을 덮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냐는 의문이 일각에서 제기된 바 있습니다.

전 상무 역시 외부의 이러한 시선을 의식한 듯, 외부에 얼굴을 비추며 3세 후계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섭니다. 지난해 9월 회사의 비전선포식에서 주연으로 등장해 ‘식물성 단백질’과 ‘디지털 콘텐츠 IP(지식재산)’ 등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을 두 축으로 식품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겠다”며 그룹의 신사업을 진두지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신사업의 선결조건인 인프라 투자와 인재 영입, 시점별 중점 추진사항 등 구체적 제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 상무가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이지만, 일각에서는 기존의 경쟁력을 우선하기보다는 불확실성에 베팅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옵니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회사 핵심 경쟁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제2의 불닭볶음면’ 발굴이 현실적인 우선 과제가 아니냐는 진단이 나오기도 합니다.

해외 식품박람회에서 한 참관객이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컵라면을 즐기고 있다. (출처=삼양식품 공식 블로그)
해외 식품박람회에서 한 참관객이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컵라면을 즐기고 있다. (출처=삼양식품 공식 블로그)

삼양식품은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으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8.5% 성장한 3352억원을, 영업이익은 124.7% 성장한 43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해외 매출은 78.3% 증가한 2398억원으로 분기 사상 처음으로 수출이 2000억원을 돌파했습니다.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 비중이 72%에 달해 수출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수출 80% 이상이 불닭볶음면으로 거뒀다는 점은 포토폴리오의 취약성을 의미합니다. 불닭볶음면의 인기가 식는다면 바로 고꾸라질 수 있는 불완전한 구조인 것이죠.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능력 없는 3세나 4세가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은 기업과 사회에 큰 해악”이라며 “능력 있고 포부 있는 젊은이들에게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될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우려는 고소득 전문직과 금융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무원과 공기업에 젊은이들이 몰려가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삼양식품도 비슷한 사례의 연장이라면 국민의 입장에서 슬픈 사례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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