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5.05 11:00
하이트진로는 지난 3월 30일 신제품 '켈리' 출시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제공=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는 지난 3월 30일 신제품 '켈리' 출시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제공=하이트진로)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의 관심 있는 현상을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국내 맥주 시장이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후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업계 숨통을 죈 코로나19 방역이 완전히 해제되면서 소비가 크게 늘 것이라는 기대감인데요. 이런 분위기에 맥주 제조사마다 신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습니다.

시장 1위인 오비맥주는 대표 제품 '카스'와 2021년 출시한 '한맥'을 최근 리뉴얼했습니다. 하이트진로도 대표 제품 '테라'의 인기를 거들어 줄 신제품 ‘켈리’를 출시하며 쌍끌이 흥행을 노리고 있고요. 이에 질세라 왕년 수입맥주 1위인 일본맥주도 한국 시장 재공략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국내 맥주 시장, 코로나 기간에 출하량 40만톤↓

국내 맥주 시장은 코로나 기간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생산통계에 따르면, 2019년 국내 맥주 시장 출하량은 약 166만톤 규모로 집계됩니다. 코로나 사태가 그해 12월 중국에서 시작된 것을 고려하면 아직 국내 맥주 시장에 영향을 주기 전입니다.

그러다 코로나가 본격 확산한 2020년에는 약 150만톤의 출하량을 기록하며 1년 만에 16만톤(-9.6%)이 감소했습니다. 2021년에는 약 139만톤으로 11만톤(-7.3%)이 더 줄어들었고요. 지난해는 아직 통계치가 잡히지 않았지만, 거리두기 정책으로 인한 홈술·혼술 트렌드 확산에 적어도 10만톤 이상이 감소했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3년 동안 총 40만톤 정도가 줄어든 것이죠.

흥미롭게도 맥주와 달리 소주는 코로나 직격탄을 피했습니다. 2019년 소주 출하량은 136만톤에서 2020년 131만톤, 2021년 127만톤으로 소비가 크게 줄진 않았죠. 이는 맥주의 음식점 판매 비중이 소주보다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맥주 제조사마다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는데요. 올해 유흥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 회복세가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 엔데믹에 소비자들의 보복 소비까지 더해진다면 2019년 규모를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감도 감돌고 있습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올해 주도권 싸움이 향후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성이 크다는 견해입니다. 마치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벌인 세기의 마케팅 전쟁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벌어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겠죠.

오비맥주 '한맥' 신규 광고. (사진제공=오비맥주)
오비맥주 '한맥' 신규 광고. (사진제공=오비맥주)

◆오비맥주‧하이트진로, 1위 싸움 점입가경

현시점에서 시장 분위기는 어떨까요. 아직 폭풍전야의 적막감이지만, 하이트진로가 포문을 열며 마케팅 전쟁의 첫 발을 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올해가 맥주 시장 1위 탈환의 적기라 보고 회사의 명운을 걸겠다는 결연한 의지입니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는 지난 3월 신제품 켈리 출시 미디어데이 행사를 통해 “우리가 목표한 국내 맥주 시장 1위 탈환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며 “켈리는 레귤러 맥주 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와 기대를 면밀히 관찰하고 오랜 시간 연구해 만든 제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켈리가 단순한 신제품이 아닌, 시장 1위 탈환을 견인할 역작이라 확신했는데요. 반드시 켈리 흥행을 이뤄내 맥주 시장 1위 탈환의 축포를 내년 창립 100주년에 맞춰 근사하게 쏘겠다는 시나리오입니다.

과거 하이트진로는 오비맥주에게 왕좌를 넘겨주기 전까지 15년 동안 맥주시장 1위에 군림했습니다. 2009년 국내 맥주 시장에서 56.2%의 점유율로 과반을 넘겼죠. 당시 오비맥주(41.6%)와 두 자릿수의 적지 않은 차이였습니다.

그러나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 절차를 밟으며 영업망을 통합한 2010년부터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단 2년 만에 1위 자리를 오비맥주에 넘겨주게 되는데요. 급격한 추락에는 하이트맥주와 진로의 통합 후유증부터 마케팅 전략의 실패, 내놓는 신제품마다 족족 참패를 맛보는 등 신제품 흥행 실패 등이 거론됩니다. 

다행히 하이트진로는 2019년 출시한 테라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번 켈리 출시에 무게감을 두는 것은 테라가 여전히 시장에서 잘 나가고 있어 켈리만 흥행한다면 1위 탈환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계산입니다.

업계 1위인 오비맥주도 이러한 속내를 알고 있겠죠. 머릿속은 복잡할지 몰라도 겉모습은 느긋해 보입니다.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대표 제품인 카스가 12년 동안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면서 하이트진로에 견제구를 던졌습니다.

경쟁사에게 마치 “1위 침탈이 가능하겠어?”라는 은근한 자신감을 표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한맥 리뉴얼을 단행한 것도 카스의 위상을 뒷받침하려는 지원사격 측면이 강해 보입니다. 다만 하이트진로가 단단히 벼르고 나온 것처럼, 오비맥주도 올해 1위 수성을 위해서 제품 다양화와 비용우위 등 더욱 촘촘한 방어전략을 짜야 할 것 같습니다.

출시 초기부터 물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아사히 수퍼드라이 생맥주'. (사진=롯데아사히주류 홈페이지 캡처)
출시 초기부터 물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아사히 수퍼드라이 생맥주'. (사진=롯데아사히주류 홈페이지 캡처)

◆일본맥주 “나 아직 안 죽었어”…아사히 생맥주 오픈런까지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1위 싸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맥주의 귀환도 시장의 관전 포인트로 작용하는데요. 일본맥주는 2019년 ‘노 재팬(NO JAPAN) 불매운동’ 이전까지 수입맥주 부동의 1위였습니다. 2018년 일본맥주 수입물량은 8만6676톤으로 그해 국내 맥주 출하량 151만톤의 약 6% 수준입니다.

6%면 미미한 수준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주세제도와 주류제조 시설 및 유통망 규제 등이 수입맥주에 보이지 않는 벽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를 넘어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등 일본맥주의 흥행성은 입증된 수준입니다. 만약 올해 일본맥주가 다시 살아난다면 과거와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진단까지 나옵니다.

흥미롭게도 일본맥주는 벌써 '흥행 대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롯데아사히주류가 수입한 '아사히 수퍼드라이 생맥주'가 편의점에서 품귀현상을 보이는 중인데요. 이달부터 편의점과 대형마트 코스트코 등에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물량 부족 사태가 빚어지며 유통 채널마다 구매 수량에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출시 첫날에는 '오픈런(매장 문이 열기 전에 줄을 서는)'까지 벌어졌다고 하네요.

이 제품은 아사히맥주가 2021년 4월에 출시한 제품입니다. 일본 현지에서도 초기 품절 대란이 일어날 정도로 흥행성을 검증받았습니다. 일반 캔맥주와 달리 뚜껑 전체를 따서 마실 수 있습니다. 뚜껑을 따면 생맥주처럼 풍성한 거품이 올라와 생맥주잔으로 맥주를 마시는 느낌이라네요.

아사히 수퍼드라이 생맥주의 흥행은 롯데칠성음료에도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롯데칠성음료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에 이어 국내 맥주 3강을 형성하고 있지만, 주력 제품인 '클라우드'가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 클라우드 리뉴얼을 단행할 예정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번 아사히 수퍼드라이 생맥주의 흥행에 힘입어 리뉴얼 시기를 앞당길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편의점 CU는 세븐브로이의 신제품 '대표밀맥주'를 단독 판매한다. (사진제공=BGF리테일)
편의점 CU는 세븐브로이의 신제품 '대표밀맥주'를 단독 판매한다. (사진제공=BGF리테일)

◆분기점 맞은 국산 수제맥주…"곰표밀맥주 흑역사로 기록될 것"

맥주 시장의 주류를 꿈꿨던 국산 수제맥주는 올해를 기점으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국산 수제맥주는 '곰표밀맥주'가 누적 판매량 5850만개(지난달 기준)를 기록할 정도로 최근 3년 동안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왔는데요.

전문가들은 국산 수제맥주의 흥행 요인에 2014년 개정된 주세법을 꼽고 있습니다. 소규모 양조장 맥주의 외부 유통이 허용되고 세금부담이 크게 줄어 수제맥주 업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홈술족' 증가도 국산 수제맥주 열풍을 거들었고요. 롯데칠성음료는 수제맥주 인기에 위탁생산(OEM)을 자청하면서 쏠쏠한 이익을 거두기도 합니다.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이러한 열기가 급격하게 식고 있다는 겁니다. 수제맥주 신제품이 쏟아져나오고, 인기가 없는 제품은 단종을 반복하는 등 곰표밀맥주 외에 '브랜드 메이킹'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수제맥주 최대 판매채널인 편의점에서도 매출 하락세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GS25에서 수제맥주 매출 신장률은 전년 대비 ▲2019년 353.4% ▲2020년 381.4% ▲2021년 234.1%의 비율을 보이다, 지난해 76.6%로 급락했습니다. CU에서도 수제맥주 매출 신장률은 ▲2019년 220.4% ▲2020년 498.4% ▲2021년 255.2%에서 지난해 60.1%로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더군다나 시장을 쪼갤만한 대형 악재까지 터졌는데요. 최근 곰표밀맥주 상표권을 가지고 있던 대한제분이 제품생산업체인 세븐브로이와 계약 관계를 청산한 것입니다. 제품 제조부터 마케팅까지 전담하면서 300억원을 투입해 생산라인까지 증설한 세븐브로이는 대한제분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억울함을 토로하고 나섰습니다. 고심 끝에 '대표밀맥주'라는 새 이름으로 제품명을 변경해 출시했지만, 시장 흥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대한제분은 아무런 제조 기술 없이 상표권만 빌려줘 대박을 터뜨렸기에 통상적 관례라도 상표권 사용 재계약이 마땅하다"며 "황금알을 낳는 오리 배를 가르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골든블루와 칼스버그맥주를 둘러싼 글로벌 주류회사의 갑질과 다를 바 없다"며 "훗날 수제맥주의 성장 한계를 드러낸 흑역사로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 수제맥주라는 말 자체가 국내에서는 다소 변질된 상황”이라며 “국산 수제맥주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독창적인 기술을 가지고 손으로 만드는 맥주가 아닌, 단가를 낮추기 위해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맥주와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수제맥주의 본질을 따르려면 맥아나 홉을 제대로 사용해야 하지만, 그럴 경우 편의점 납품을 포기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다"며 "올해 국산 수제맥주가 경쟁에 뒤처지게 된다면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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