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6.21 17:23
유제철 환경부 차관(오른쪽 두 번째)이 5월 15일 오후 성일하이텍을 방문,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현장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해체 자동화 시스템 개발 상황과 재활용 공정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성일하이텍 홈페이지 캡처)
유제철 환경부 차관(오른쪽 두 번째)이 5월 15일 오후 성일하이텍을 방문,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현장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해체 자동화 시스템 개발 상황과 재활용 공정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성일하이텍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 성일하이텍은 2000년부터 소재 재활용 사업을 시작한 뒤 한국 최초로 리튬이온배터리에서 원소재를 회수, 양산하는데 성공했다. 방전된 리튬이온배터리를 파쇄·분쇄한뒤 니켈, 리튬, 코발트, 망간이 묻어 있는 블랙파우더를 분리하는 전처리 공정을 거쳐 습식제련 방식의 후처리 공정으로 넘긴다. 황산 등 강한 산성용액으로 블랙파우더에 있는 금속들을 반응시켜 화합물 상태로 만든 뒤 용매추출 기술로 황산코발트, 황산니켈, 탄산리튬, 황산망간, 전해니켈, 전해구리 등 고순도 배터리용 소재를 뽑아낸다. 이차전지에 함유된 유가(有價) 금속 회수 기술을 상용화하면서 중국, 헝가리, 인도 등 5개국에서 전처리 공장을 운영 중이다. 2022년 매출은 2699억원으로 2019년에 비해 580% 급증했다.

#2. 금속 원료와 소재를 제조하는 벨기에 기업인 유미코아(Umicore)는 폐가전, 휴대폰 등으로부터 금속을 회수하는 사업으로 확장하면서 2022년 재자원화 분야 매출이 1조5500억원으로 2018년보다 77% 늘어났다. 같은 기간 중 소재제조 분야 매출이 3조7500억원에서 4조3100억원으로 소폭 증가한 것과 비교된다. 유미코아는 새로운 자동차 촉매 개발, 차세대 충전식 배터리, 연료전지 촉매와 멤브레인, 재활용 공정 등 청정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ESG 전략인 'Let's Go for Zero'를 통해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공언한 상태다.

성일하이텍 사업영역 (그림제공=정부)
성일하이텍 사업영역 (그림제공=정부)

자원을 이용해 제품을 만들어 사용하고 나면 버리는 선형(線型)경제는 환경보호의 중요성과 천연자원 고갈로 입지를 점차 잃고 있다. 원료, 설계, 생산, 유통, 소비, 처리 등 전 과정에서 자원을 적게 쓰고 오래 사용하며 쓰고 난 뒤에는 재생하는 경제체제를 말하는 순환(循環)경제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성일하이텍과 유미코아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순환경제에서 선두주자로 활동하면서 성공적인 비즈니스 성과를 보이는 기업이다.

한국은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를 2018년보다 40% 줄이겠다는 도전적인 목표 이행을 국제적으로 약속한 상태다. 이를 지키려면 연료와 원료 전환 등 기존 감축 수단의 한계를 넘어 자원효율과 순환성 극대화에 중점을 두는 순환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폐기물 발생을 줄여 묻거나 태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은 물론 인류 건강과 생태계 위협 요인도 최소화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순환경제를 탄소중립을 이룩한 주요 이행수단으로 판단, 2020년 신순환경제 패키지를 내놓은 바 있다. 철강, 플라스틱, 알루미늄, 시멘트 등 4대 산업에서 순환경제를 통해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를 56% 줄인다는 것이다.

이미 순환경제는 산업경쟁력 강화 수단이자 진입장벽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25년부터 PET 용기에 재생원료를 25% 쓰도록 의무화했다. 애플은 2025년까지 코발트, 희토류, 주석, 금 등 주요 원자재 100%를 재생원료에서 충당한다는 자체 목표를 세웠다. 국제표준 설정을 선도하면서 기술개발과 공급망 확보를 통해 후발 기업의 추격을 저지한다는 속셈도 내포돼 있다.

(그림제공=정부)
(그림제공=정부)

국내 순환경제는 제조업의 기술경쟁력과 시장점유율이 높고 플라스틱 열분해유 원료화와 배터리 재사용·재활용도 이뤄지고 있지만 약점도 숱하다. 열분해 등 일부 신사업은 국내 기술의 대형화 한계로 해외 기술 도입을 검토하는 실정이다. 지정외 폐기물, 스크랩, 기타 폐품에서 파쇄와 분쇄 또는 화학적 처리로 재생용도의 금속이나 비금속 원료물질을 얻어내는 원료재생업은 산업단지 입주가 금지되어 있다.

재생원료의 가격은 높고 품질 경쟁력은 낮다. 투명PET용 원료인 페트 신재 칩이 ㎏당 1700원인데 비해 재생 칩은 ㎏당 2000원에 달한다. 경제성이 떨어진다. 재생 제품에 대한 정보 표기도 부실하다. 국내 친환경제품 시장 규모가 2012년 대비 2021년 2배 늘어난데 비해 같은 기간 EU의 경우 7배 증가했다는 것이 무역협회의 분석이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앞서가는 EU와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 뻔하다.

높은 품질의 폐자원을 확보하려면 분리 배출이 철저히 이뤄지고 선별작업의 정확성도 요구된다. 현실은 딴판이다. 천연펄프로 만든 고급 종이에 안팎으로 폴리에틸렌 필름을 붙인 종이팩은 재활용 가치가 매우 높지만 아파트단지조차 별도 수거장소를 갖춘 곳이 드물다. 유유팩이나 음료수팩을 집에서 씻어 말린 뒤 주민센터에서 종량제 봉투나 휴지와  바꾸는데 그치다보니 2020년 현재 종이팩 재활용률은 15.8%로 떨어졌다. 2013년 기록했던 35%보다 크게 후퇴했다. 골판지와 다른 종이류를 섞어서 배출하는 것도 문제다. 회수 대상 폐가전제품도 5개군 50개 품목으로 제한된 상태다. 폐플라스틱과 폐비닐을 분리배출하는 것에 따른 보상도 전무한 실정이다.

추경호(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경제부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 및 수출투자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추경호(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경제부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 및 수출투자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정부가 21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비상경제장관회의 및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순환경제 활성화를 통한 산업 신성장전략’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것은 순환경제를 우리 산업에 빠르게 확산시켜 미래 먹거리로 키우기 위한 대책이다. 국내 기업의 탄소중립 이행과 신규 경쟁력 확보 지원, 핵심 자원의 국내 공급망 확보를 위해 실천해야 할 과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유해성이나 경제성 등의 기준을 충족하는 폐기물은 개별 기업의 별도 신청이 없어도 환경부가 일괄적으로 지정, 고시해 폐기물 규제에서 면제시킨다는 '순환자원 인정 확대' 결정이 주목된다. 환경부는 오는 8월까지 철스크랩, 전기차 폐배터리 등 다양한 품목을 대상으로 순환자원 세부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협의를 거쳐 12월까지 최종안을 고시한뒤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최근 3년간 재활용 실적이 없더라도 순환자원 인정 신청이 가능하도록 요건을 완화하고 품질인증을 기반으로 제품의 포장·용기 등에 순환자원 사용 정보를 직접 표시하는 '순환자원사용제품' 표시제를 시행한다는 방침도 눈에 띈다.

재활용업체가 재생원료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려면 사용처부터 늘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PET 원료 생산자(연간 1만톤 이상)의 재생원료 사용비율 목표를 올해 3%에서 2026년 10%, 2030년 30%로 높인다. 2024년부터 플라스틱제품 용기에 재생원료 사용비율을 표시하고 2025년부터 지자체에 재생원료 사용제품 구매목표를 설정하고 실적을 점검할 방침이다. 올해 상반기 전기전자제품과 식음료 분야에서 투명PET병을 대상으로 생산자와 재활용업계 간 자발적 협약을 맺도록 한데 이어 올 하반기에는 대형유통업계까지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한다. 

고품질의 분리배출과 회수를 돕는 체계를 개선하고 선별시설 자동화·고도화도 추진한다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대책이다. 신문지와 종이팩, 책자, 골판지 등 고품질 종이자원을 별도로 회수하는 체계 도입을 위해 올해 분리배출지침 개선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폐가전 회수와 관련, 현행 포지티브 방식을 회수하지 않는 가전제품만 지정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꾼다. 공공선별장에 폐플라스틱 광학선별기 설치를 연내 의무화하고 공공 및 민간선별장의 장비 확충과 현대화를 위해 재정을 지원한다.

순환경제에서 신기술과 신시장 창출을 유도하기 위해 제지 소각시설에서 발생하는 비산재를 종이 충전재에 포함시키거나 반도체 웨이퍼 세척 시 발생하는 폐수처리오니를 제철소 부원료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검토한다는 대책도 눈길을 끈다. 제조업과 동일한 사업 형태를 영위하는 원료재생업체가 산단에 입주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원료재생업과 폐기물처리업의 입지를 규제하는 지자체 조례도 개선하도록 협의에 나설 방침이다.

(표제공=산업통사자원부)
(표제공=산업통사자원부)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기계 등 9대 주요 산업에서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9대 선도프로젝트를 통해 순환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산업통상자원부의 'CE 9 프로젝트'도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석유사업법을 고쳐 열분해유를 정유공정 원료로 활용하도록 하고 열분해유 생산이 주된 산업활동이라면 제조업으로도 인정해 대형화와 첨단화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폐플라스틱 해중합 및 플라즈마 열분해 등 물성 업그레이드를 도모하기 위해 사용한 제품을 동일 제품 생산에 필요한 산업원료로 재생산하는 C2C(Cradle to Cradle) 기술을 개발한다. 2026년까지 995억원이 들어간다. ESS 연계 태양광가로등이나 전기차충전시스템 등 재사용사업 촉진을 위해 재사용배터리 안전성 검사제도도 오는 10월까지 마련한다.

전자와 섬유산업에서 에코디자인 경영을 확산한다는 계획도 흥미를 끈다. 휴대폰이나 무선청소기등 전자제품을 대상으로 자원효율성 등급 정보를 표시하는 자원효율등급제(K-에코디자인) 시범사업을 올해 추진한 뒤 산업계 의견 수렴을 거쳐 2025년부터 자원효율등급제도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WM은 폐기물 자원화를 통해 2022년 197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홈페이지에서 '북미 최대의 환경솔루션 제공 기업'이라고 자평할 정도다. 컨설팅 기업인 액센츄어(Accenture)는 2030년 전세계 순환경제 시장 규모가 4.5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배터리의 순환경제 시장은 2021년 33억달러에서 2027년에는 154억달러로 커지고 플라스틱은 424억달러에서 638억달러로 성장하다는 것이 PwC컨설팅의 전망이다. 이처럼 순환경제 도입과 확산은 우리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정부는 순환경제 강화를 통해 ▲환경부문 혁신 ▲경제성장 촉진 ▲핵심자원의 국내 공급망 확보를 통한 자원 안보 강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주기적인 간담회와 현장방문을 통해 기업의 애로를 청취, 해소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모든 산업에서 지속가능한 성장기반을 갖추는 것은 물론 순환경제와 관련된 기술과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해 혁신 순환경제모델을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우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신속한 규제 개선도 반드시 필요하다. 관련 부처가 협의체를 마련해 규제샌드박스 신속 승인이나 연구개발 및 실증사업 우선 지원을 통해 참여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주어야만 순환경제 생태계가 하루빨리 자리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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