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8.29 00:00
서울 상암동 평화의공원에서 열린 '소풍 결혼식' 모습. (사진제공=서울시)
서울 상암동 평화의공원에서 열린 '소풍 결혼식' 모습. (사진제공=서울시)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2022년 현재 19~34세 여자 중에서 결혼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지닌 사람은 28.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젊은 여성의 72%는 결혼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여성 4명 중 1명 가량만 결혼에 의미를 두거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도 해석된다. 

10년 전인 2012년 조사에선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젊은 여성의 비중이 46.9%를 기록했다. 결혼에 뜻이 없는 여성의 비중이 10년 만에 18.9%p 급락한 것은 충격적이다.

이처럼 여성이 혼인을 꺼린다면 남성 역시 결혼식장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진다. 외국인 배우자와의 결혼이 급증하거나 해외이민자가 대거 유입되지 않는 한 세계 꼴찌를 기록 중인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더욱 가파르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28일 내놓은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를 보면 결혼과 출산은 기피하지만 비혼동거는 동의한다는 비율이 상승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래프제공=통계청)
(그래프제공=통계청)

무엇보다 결혼을 꼭 해야 할 의례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여자에게 만연한 결혼 기피 흐름은 남성에게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결혼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젊은 남성 비율은 2012년 66.1%에서 2022년에는 43.8%로 22.3%p 내려갔다. 여성이 비해 상대적으로 하락폭은 낮지만 2명 중 1명만이 결혼에 긍정적으로 여길 정도다. 한마디로 결혼의 의미나 중요성, 가치가 청년들로부터 부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추세가 고착화되면 전통적인 가족관계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노동력 부족과 고령인구 부양 부담 증가로 이어지면서 잠재성장률은 하락한다. 국가의 존립 기반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여성이라고 해도 경제적 사정 등으로 혼인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게다가 혼인에 대해 호감이 없는 여성이 결혼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비혼식까지 열며 결혼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싱글족이나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비혼족도 늘어나는 추세 아닌가.

나이가 적을수록 남녀의 결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줄어든다는 결과도 어두운 미래를 보여준다. 19~24세 청년의 긍정 비율은 34%인데 비해 ▲25~29세 36.1% ▲30~34세 39.2%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림제공=통계청)
(그림제공=통계청)

통계청 조사에서 청년들이 생각하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주된 이유’로 결혼자금 부족이란 답변이 33.7%로 가장 높은 응답비율을 보였다. 이어 결혼의 필요성 못 느낌(17.3%), 출산양육부담(11.0%), 고용상태 불안정(10.2%) 순이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결혼자금 부족을 첫 번째 이유로 손꼽은 미혼남자 비중이 40.9%에 이르는데 비해 미혼여자는 26.4%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결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미혼여자가 23.7%로 결혼자금 부족에 못지않은 이유를 기록한데 비해 결혼 필요성을 부인한 미혼남자는 13.3%에 그쳤다. 고용상태 불안정을 지목한 미혼남자는 11.9%로 같은 응답을 한 여성(6.8%)보다 높았다. 미혼남자 중 상당수는 결혼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혼집 마련 등 혼수비용이 모자른데다 비정규직 신분에 대한 불안감이 겹쳐 결혼을 아예 단념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결혼을 했다하더라도 자녀를 낳는 것은 다른 문제다. 키우고 가르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부담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항목에 전체 인구의 34.7%가 동의한데 비해 청년 동의율은 53.5%를 기록했다. 청년 2명 중 1명은 결혼 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자식 상팔자’에 대한 지지율은 여자가 더 높았다. 젊은 여성의 65%는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 2018년(54.6%)보다 10.4%p 올라갔다. 남자도 같은 기간 38.7%에서 43.3%로 높아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전문직과 비전문직 간에 연봉과 고용안정성 격차가 커지다보니 청년들 중 상당수는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상태다. SNS에서 해외여행, 고급 승용차, 명품 쇼핑 등을 과시하는 사진과 글이 늘어나는 흐름 속에서 자신보다 경제적 형편이 높고 전망도 밝은 배우자를 찾지 못한다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청년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최근 서울 등 대도시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신혼집 마련 부담이 너무 커졌다. 정부는 무주택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특별공급 아파트 공급에 나서고 있지만 둘이 살기에도 작은데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실질적인 관심이 떨어지는 실정이다.

결혼이 능력의 중요한 척도로 치부되는 시대가 왔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되거나 고액의 연봉을 받는 청년부터 결혼시장에서 먼저 팔려나가고 있다는 냉소 어린 분석도 나온다.

이러다보니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상태다. 25~49세  남성 중 미혼 비율은 2010년 35.3%에서 2020년 47.1%로 높아졌고 같은 기간 여성의 경우 22.6%에서 32.9%로 상승했다. 결혼 적령기 남자 2명 중 1명, 여자는 3명 중 1명이 미혼으로 지내는 것이다.  

요즘 결혼식장에서 30대 말은 물론 40대 초·중반 신혼부부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늦게 결혼하면 임신 확률이 떨어지고 출산에 따른 위험도 커진다. 

지난해 현재 남자의 평균 초혼연령은 33.7세, 여자는 31.3세로 2015년보다 각각 1.1세, 1.3세 높아졌다. 1990년만해도 남자는 27.8세, 여자는 24.8세를 기록했다. 20여년전보다 각각 5.9세, 6.5세 높아진 것이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다보니 많은 자녀를 낳고 싶어도 임신 확률 저하로 한 자녀 출산에 그치는 실정이다. 

2021년 현재 혼외출생률은 2.9%로 OECD 회원국 평균(41.9%)에 비해 매우 낮다.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한다는 유교문화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는 여파다. 혼외출산을 권장하기 힘들지만 이를 외면해선 국가소멸의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  

(그래프제공=통계청)
(그래프제공=통계청)

청년의 80.9%는 비혼동거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74.5%)보다 4년 만에 6.4%p 높아졌다. 19~24세의 동의비율은 81.8%로 청년 중에서 가장 높았다. 전체 인구의 동의비율도 2018년 56.4%에서 2022년 65.2%로 과반수를 훌쩍 넘었다. 동거 과정에서 자녀를 낳아 기르다보면 혼인신고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영아를 둔 부부가 가장 만족해하는 정책이 부모수당이다. 기존 30만원이었던 영아수당이 부모급여로 확대 변경되면서 2022년 이후 출생아부터 만 0세(0~11개월)은 월 70만원, 만 1세(23개월까지)는 월 35만원이 지원된다. 내년부터는 만 0세는 월 100만원, 만 1세는 월 50만원으로 늘어난다. 24~ 85개월(취학전)까지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종일제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월 10만원의 양육수당이 지원된다. 만 8세 미만의 모든 아동에게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이 지급된다.  출산율을 극적으로 높이는데 성공한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처럼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 대한 재정지원 대상을 넓히고 금액도 지속적으로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젊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면서 아이를 낳게 되면 대체로 배우자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책임감도 커지기 마련이다. 첫째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애정을 확인하고 보람을 느끼면서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할 결심을 하게 된다.  성공적인 가족관계로 이어지는 첩경이다.

양육의 부담을 강조하기 앞서 자녀가 부모에게 가져다주는 기쁨과 보람에 대해 청년들이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최근 프로야구에서 2군 생활 끝에 주전 자리를 확보했거나 기존 수비 능력에다가 눈부신 공격력까지 보여주는 두 선수 모두 인터뷰에서 '자녀를 보면 피로가 풀리고 힘이 솓는다'는 심경을 전한 바 있다.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이 늘어나면서 사회분위기도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은 독거 노인에 이어 독거 중장년 나라가 될 뿐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급증할 것이다. 청년들이 더 늦기 전에 행복한 가족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사회구성원 모두가 배려와 관심, 응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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