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7.07 14:47

"전 국토 '동등한 생활조건' 확보 위한 '중심지체계' 정책 도입 필요"

6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독일 사례를 중심으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6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독일 사례를 중심으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한국은 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이 1983년 2.1명을 기록한 이래 40년 동안 저출산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2022년에는 0.78명으로 역대 최저기록을 경신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가 커지고 사교육비와 주택 값이 급등하는 등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출산을 꺼리는 풍조가 정착된 탓이다. 2015년 이후 급락세가 두드러진다.

올해 출생아 수는 자칫 24만명에도 이르지 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올해 1~4월 출생아 수는 8만2740명으로 1년 전보다 7.6% 줄었다. 작년에는 24만9031명이 태어나 25만명선이 무너진 바 있다. 1959년 101만6173명부터 1971년 102만4773명에 이르기까지 1965년(99만6052명)을 제외하고 줄곳 100만명이 넘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4분의 1 이하로 격감한 셈이다. 이 기간 중에는 합계출산율이 4.53명에서 6.16명에 달했다. 

2020년부터 인구감소국가로 전환된 뒤에도 명문 대학과 양질의 일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으로의 인구와 기업의 집중은 현재진행형이다. 수도권은 주민들이 높은 주거비용으로 자녀 한 명만 낳거나 출산 포기가 늘어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비수도권은 일자리와 각종 기반시설 부족, 인구 급감으로 당장 생존부터 걱정할 처지다. 전국 시·군·구의 89% 인구가 줄어든다는 통계는 그간 시행했던 각종 국토균형발전 정책이 실패했음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폭스바겐 그룹 본사 및 제조공장. (사진=유튜브 'The Wheel Network' 캡처)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폭스바겐 그룹 본사 및 제조공장. (사진=유튜브 'The Wheel Network' 캡처)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을 국가는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1970년 합계출산율이 2.02명에서 통일 후 1994년 1.24명까지 떨어졌다. 유럽연합 회원국 중에서 저출산 현상이 가장 심각한 국가였다.

낙후된 동독지역 개발과 세대 간 통합이라는 양대 과제에 직면한 독일은 인구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펼쳤다. 우선 국토균형 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지역 특화산업 육성으로 지방경제 활성화를 도모했다. '모든 연령은 중요하다'는 슬로건 아래 가족정책을 마련하고 부모의 일·생활 균형지원 정책을 시행했다. 여기에 다종족, 다문화국가를 지향하는 법률 개정에 따라 이민자와 난민을 적극 수용했다. 이런 노력으로 2021년에 1.58명의 출산율을 기록, EU 평균(1.53명)을 넘어섰다. 현재 1.55명 전후에서 소폭 변동 중이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6일 열린 ‘대한민국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제공=원성훈 기자)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6일 열린 ‘대한민국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제공=원성훈 기자)

이같은 독일의 균형발전 성과로부터 배울 점을 찾기 위해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과 국회국가재조포럼은 6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대한민국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독일 사례를 중심으로'를 주최했다. 박성중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독일이 출산율 회복을 위해 시행한 여러 정책 중 우리는 가장 효과적이었던 국토균형발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은 밀집된 도시인구를 분산시키는 정책과 지원책을 마련해 도시 이외의 지역에 질 좋은 청년 일자리 창출이란 효과를 거두었다"며 "사천의 우주산업, 충북의 2차 전지산업, 대전의 대덕특구와 같이 지역 특색을 접목시켜 지역경제 활성화를 촉진하는 정책과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기업의 지방 이전과 투자 촉진을 위해 현 정부가 도입한 '기회발전특구'에 대한 특혜를 늘려 일자리 공급과 정주여건 개선을 통해 인구 소멸 지역이 되살아나도록 유도해야할 것이다.

한스 크리스티안 윈클러(오른쪽) 주한 독일대사관 정치고문이 6일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한스 크리스티안 윈클러(오른쪽) 주한 독일대사관 정치고문이 6일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진범 국토연구원 균형발전지원센터장은 이날 '독일 균형발전정책과 시사점' 토론문을 통해 자치권을 가진 소도시들의 연합체라는 독일의 '특수성'부터 언급했다. 한국이나 일본, 프랑스, 영국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인구와 산업이 전국에 골고루 분산된 국가라는 점이다. BMW, 지멘스,폭스바겐 등 세계적 독일 기업의 본사는 베를린이 아닌 각 지방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는 연방정부가 '동등한 생활조건 확보'라는 목표 아래 추진하고 있는 '중심지체계' 정책의 효과도 있다는 것이 김 센터장의 진단이다.

그는 "독일의 국토정책에서 동등한 정책조건이란 교육, 의료, 소비 등 생활조건이 전국 어디에 살더라도 동등한 것을 의미한다. 동등이란 동일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도보로 초등학교 30분내 통학'이란 범위는 초교 학군의 동등한 생활조건을 말한다. 각종 공공시설의 이용범위를 설정해 그 범위내에서 이용할 수 있다면 동등하다고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표=김진범 센터장 토론문 캡처)
(표=김진범 센터장 토론문 캡처)

독일 연방정부는 주(州)간 생활격차를 해소해 전 국토의 동등한 생활조건 확보를 위해 연방공간정비법에 근거를 둔 중심지체계 정책으로 개입한다. 각 주는 독자적으로 정성적·정량적  인정기준을 설정한 뒤 중심지를 지정한다. 중심지는 '어느 일정한 지역에 대해 사회·경제·문화·오락 등 각 분야에 걸쳐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거점으로 다양한 시설이 집적하고 있는 도시'로 정의된다. 지정단위는 '게마인데’(Gemeinde)'로 한국 읍·면·동 수준의 인구와 면적을 갖고 있다.

중심지체계 정책에 따라 주정부는 게마인데 단위에 설치하는 각종 공공시설의 종류와 규모를 주도적으로 설정, 추진한다. 제조업의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직업훈련제도인 '듀얼시스템'과 공설연구개발지원기구인 '프라운호퍼'와 같은 정책과 함께 분산형 국토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김 센터장의 진단이다. 

그는 연방제 국가인 독일과의 차이를 감안, 정부는 중심지체계 구축 관련 원칙과 중심지 유형, 유형별 도입시설, 지정기준 등을 담은 지침을 제시하고 광역지자체는 이 지침에 부합하게 집중적으로 공공투자할 곳과 공공시설의 종류·규모를 기초지자체 의견 등을 수렴해 중심지 유형을 지정하고 추진하는 정책 도입을 제안했다. 어디서나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살기 좋은 지방시대 구현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 현 정부가 검토할만한 내용이다. 농·어·산촌의 대부분이 일자리 부족 등으로 주민이 떠나면서 인프라 확충은커녕 유지도 힘들어지는 악순환에 처한 상황 아닌가. 

정우택(앞줄 왼쪽 첫 번째) 국민의힘 의원과 이인선(두 번째) 의원, 박성중(세 번째) 의원 및 허은아(오른쪽 첫 번째) 의원이 6일 토론회 시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정우택(앞줄 왼쪽 첫 번째) 국민의힘 의원과 이인선(두 번째) 의원, 박성중(세 번째) 의원 및 허은아(오른쪽 첫 번째) 의원이 6일 토론회 시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저출산이 불치의 병 수준으로 악화된 데에는 정부와 지자체의 가족지원이 독일보다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선권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독일은 월 250유로(원화 35.6만원)의 아동수당을 대학에 다니거나 직업훈련 중이라면 25세까지, 미취업 또는 구직 중이라면 21세까지 지급한다"며 "한국은 8세 미만에 월 10만원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아동복지법에서 규정한 아동인 0~17세 전체로 지급대상을 확대하고 금액도 높여야한다고 강조했다. 아동수당 국고 보조율에 있어 서울은 50%, 지방은 70%라는 기준 보조율을 바탕으로 사회복지비지수와 재정자주도를 감안하자는 것이다. 균형발전 차원에서 재정지주도가 낮은 군 지역은 전액 국고에서 보조하자는 제안이 주목을 끈다.

이삼식 인구보건복지협회장은 "최근 독일의 가족정책은 '일과 가정의 양립'과 '양성평등 관점'에서 부부나 파트너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독일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은 ▲불안정한 고용, 높은 주거비, 일·가정 양립 어려움 등에 따라 결혼과 출산 연기를 유발하는 사회구조적 장벽 해소 ▲고연령층에서 출산이 이행되도록 돌봄부담 경감 등 사회보장 강화 ▲육아휴직 급여 현실화 ▲가족친화적인 기업 환경 적극 조성 ▲일·가정 양립제도 적용 대상 자영업자 등으로 확대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래프=이삼식 회장 토론문 캡처)
(그래프=이삼식 회장 토론문 캡처)

한국이 종전처럼 전통적인 가족관계 유지에 집착한다면 40년째 하락 중인 합계출산율의 상승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차원에서 인구가 늘고 있는 프랑스에서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 1999년 동성 사실혼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시민연대계약' 등의 효과로 유럽연합 내 인구증가율 1위, 합계출산율 1위를 기록 중이다. 특히 2021년 출생아 중 62.2%가 혼외 출산이었다. 2020년 기준 OECD국가의 평균 혼외출산율(41.9%)보다 높다. 이에 비해 한국은  2.5%에 불과하다. 너무나 큰 격차다. 

합계출산율을 반등시키려면 혼인과 출산에 따른 정상가족와 '비정상가족'을 구분하는 제도와 인식부터 바꾸는 결단을 내려야한다. 

주거와 생계를 같이 하는 동거족은 배우자가 수술을 받거나 숨질 경우 보호자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등 각종 사회적 혜택에서도 제외되기 일쑤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아기시술 등도 받을 수 없다. 대상자가 법률혼·사실혼 부부로 한정된 탓이다.

인구 감소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결혼을 하지 않고 애를 낳으려 하거나 같은 여성과 결혼한뒤 기증받은 정자로 임신하려는 동거 커플의 욕구 실현을 돕고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정책이 뒤따라야한다. 

물론 혼인신고를 하고 법률적인 부부로서 자식을 낳고 백년해로를 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문제는 이런 패러다임을 고집할수록 인구 감소를 막기가 더 어렵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그룹1%나눔재단이 2021년 6월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미혼모자 복지시설 구세군두리홈을 찾아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중공업그룹)
현대중공업그룹1%나눔재단이 2021년 6월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미혼모자 복지시설 구세군두리홈을 찾아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중공업그룹)

자유민주주의국가라면 국민 각자가 결정한 삶의 다양한 유형을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미혼모가 낳은 자식이라고, 동거자와 낳은 아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이런 원칙에 맞지 않는다. 

자녀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혼인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과의 차별을 없애는 것이 시급하다. 국회에 계류 중인 비혼 동거·비혼 출산을 돕는 법안부터 입법에 성공해야만 저출산의 늪에서 빠져나올 도약대가 마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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