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1.10 16:39

‘진짜사장책임법’도 '합법파업보장법'도 아냐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가 2022년 7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금속노조)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가 2022년 7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금속노조)

[뉴스웍스=최승욱 편집인] 파업투쟁 중인 노동조합이 직장 점거에 나서는 과정에서 일부 시설이 파손됐다. 일부 노조원은 회사 측의 불법행위 채증을 막기 위해 CCTV를 가렸다. 현재는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구체적 증거를 대지 않더라도 불법파업으로 초래된 손해에 대해선 노조와 노조 간부, 조합원이 연대책임을 진다는 민법의 기본원칙(부진정연대책임)에 따라 회사는 한꺼번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9일 국회에서 야당이 단독 처리한 노란통투법이 시행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범위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회사는 조합원별 불법행위와 이로 인한 손해 규모를 입증할 책임을 진다. 그렇지 못한다면 재판에서 지면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유사사례가 재발될 우려가 커지면서 노조의 과도한 요구마저 들어줄 확률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와 제3조 개정안을 말하는 노란봉투법은 정부와 여당, 사용자단체로부터 파업을 부추기는 악법으로 낙인찍힌지 오래다.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기업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가담자 각각의 귀책 사유 또는 참여도에 따라 책임 범위를 달리해 소송하도록 규정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기업이 불법 파업에 누가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는지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 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사용자의 개념을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했다. 노동쟁의 범위도 넓혔다.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추진할 수 있는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파업도 합법화된다. 당정의 반대에도 끝내 국회가 본회의에서 의결하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처음부터 나온 이유다. 

(출처=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출처=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이에 반해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은 권한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진짜사장책임법’이라고 주장한다. 사용자로서 권한을 누리면서 이익을 향유하는 원청 기업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부여하는 법안이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측의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로 쟁의와 단체행동은 '그림의 떡'이 됐다며 불법파업을 보호한다는 오해를 풀고 법 취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합법파업보장법"으로 부르는 것이 좋다고 밝힌 바 있다.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8월 18일 더불어민주당과 양대 노총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개념 확대와 쟁의행의 등으로 인한 손배책임 제한을 목표로 한다. 하청근로자의 노동3권 보장을 실질화한다”고 밝혔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 법률안은 과도하게 기업친화적인 노조법의 사용자 정의 조항이나 협애한 노동쟁의 조항 등 입법적 흠결을 보완하고 노사정의를 회복시키는 최소한의 보장을 입법화했다는 점에서 헌법정신과 국익에 부합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노조법 개정안 대시민 선전전 현수막 (출처=민주노총 홈페이지)
노조법 개정안 대시민 선전전 현수막 (출처=민주노총 홈페이지)

민주노총은 2022년 대우조선이 하청지회 노조 간부 5명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을 포함, 1990년 이래 누적 손해배상청구액이 3160원에 달했다고 주장한다. 현재 대부분의 원청기업이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하청 노동자의 단체교섭요구를 거부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사용자에 의해 남발되는 손해배상 청구는 쟁의에 따른 회사의 손실을 보전한다는 명분과 달리 사측 불법행위에 대한 소송 포기, 노조 탈퇴를 조건으로 손배소 취하 등 노조탄압의 무기로 악용되고 있다며 노란봉투법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아자동차 불법파견의 시정을 요구한 댓가로 5억8000만원의 손해청구를 당하면서 집안 곳곳에 압류 딱지가 나붙었다”며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하위법으로 가로막는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노총이 지난 8월 22일 국회에서 노조법 개정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출처=한국노총 홈페이지)
한국노총이 지난 8월 22일 국회에서 노조법 개정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출처=한국노총 홈페이지)

노동계와 일부 법률 전문가들은 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원청의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성’을 입법으로 명확히 규정, 하청 근로자가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노란봉투법 입법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다. 

원·하청, 도급·파견 관계에 대해서도 사용자의 단체교섭 의무가 인정한다는 노란봉투법은 대법원 판례와도 어긋난다. 대법원은 현재까지 '명시적으로 근로 계약을 맺고 있는 경우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개념 정의부터 모호한 ‘실질적 지배력’이 미친다는 이유로 무분별한 교섭 요구가 빗발치고 폭력적인 파업 행태도 공공연해질 수 있다.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법원에서 면죄부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만약 노란봉투법이 현행 조문처럼 시행되면 원청회사는 부품을 납품하는 숱한 협력회사 노조들과 연중 내내 교섭을 벌이면서 파업 위협에 시달릴 수 있다. 이로 인해 신제품 개발과 신시장 개척에 소홀해지는 것은 물론 생산차질도 불가피하다. 성장은커녕 망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노사관계 주무부처의 입장은 명확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9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브리핑을 통해 “(일각에서는) 원청에게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는 것은 이미 확립된 판례의 법리를 입법화 하는 것일 뿐이라는 그릇된 주장으로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며 “대법원은 원청의 단체교섭의무를 인정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으며 현재까지 근로관계가 있는 자를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개정안은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에 명백히 반한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수백개의 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업주는 자신의 회사에 소속된 노조 외에 수십, 수백개 협력업체 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하는 것인지,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 불안해하고 있다”며 “개정안이 시행되면 무분별한 단체교섭과 잦은 쟁의행위 발생으로 산업현장에 극심한 갈등을 초래하고 일하고 싶어하는 근로자의 권리도 침해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출처=국민의힘 홈페이지)
(출처=국민의힘 홈페이지)

결과적으로 노조의 불법행위까지 눈감아주는 노란봉투법은 노동3권의 보호범위를 벗어나는데다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되며 평등의 원칙과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 간 협력관계를 약화시켜 기업의 국제경쟁력 추락을 야기할 뿐 아니라 산업생태계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진짜사장 책임법으로 보기 힘들다. 합법파업보장법은 더욱 아니다.

무엇보다도 해고와 복직 등 권리분쟁에 관한 사항을 쟁의행의의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불법 투쟁으로 직장을 잃은 전임 노조 집행부 구제를 위한 파업을 합법화한다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삭제되어야 마땅하다. 그간 법원이나 노동위원회를 통해 정당한 해고로 인정받았던 사안까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게 된다면 어떤 사업주가 경영을 계속할지 지극히 의문이다. 이리 되면 상생과 협력의 노사관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산업현장은 이어지는 파업에 시달릴 것이다.

헌법과 민법 등에 어긋나거나 역사적 경험과도 맞지 않는 노란봉투법은 진작 시정되어야 했는데도 국회 심의과정에서 걸러지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기업의 투자 확대와 고용 증대 의지에 찬물을 끼얹을 위험성이 가득한 노란봉투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래세대의 일자리가 안정적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절실하다. 국회는 산업평화에 기반한 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전체 노동자의 권익향상이란 측면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의 독소조항을 손보는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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