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2.12 14:27
2020년 12월 층간소음연구소를 개설한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2022년 5월 국내 최대 층간소음 전문연구시설인  '래미안 고요안(安)랩'으로 확대 개편했다. (사진제공=삼성물산)
2020년 12월 층간소음연구소를 개설한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2022년 5월 국내 최대 층간소음 전문연구시설인  '래미안 고요안(安)랩'으로 확대 개편했다. (사진제공=삼성물산)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국민 10명 중 7명이 사는 아파트의 가장 큰 취약점은 삶의 질을 현격히 떨어뜨리는 층간소음이다. 위·아래층 주민 간 갈등 수준을 넘어 살인, 폭력 등 강력범죄로 비화되고 있다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KBS 시사직격팀으로부터 제공받은 최근 5년간 층간소음 관련 형사사건 판결문 분석자료에 따르면 살인, 폭력 등 5대 강력범죄가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10배 증가했다고 한다. 

층간소음으로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참극이 일어나는데도 정부나 민간단체 어느 곳에서도 이와 관련된 정보 공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경실련의 비판이다. 아파트 소유주 입장에선 심각한 층간소음 발생이 집값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을 우려, 대외 발표에 소극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층간소음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는 민원 발생부터 처리까지 전주기 진행상황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층간소음을 야기한 건설사를 파악해야할 책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표제공=국토부)
(표제공=국토부)

정부는 층간소음 없는 주거환경을 위해 몇가지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별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국토부는 작년 8월 4일 시공 이후 실제 세대에서 바닥충격음 차단 성능 기준을 만족했는지를 검사하고 기준에 미달되면 사업 주체에게 손해배상 등 권고조치에 나서는 것을 골자로 삼는 ‘사후확인제’를 도입했지만 벌칙이 없는 권장사항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미 지어진 아파트의 충간소음을 줄이기 위해 최대 300만원을 빌려주는 방음매트 시공지원도 국민의 외면을 받았다. 연소득 4000만원 이하 저소득층에게는 무이자로, 연소득 8000만원 이하의 자녀가 있는 중소득층에겐 연 1.8%에 융자해주기 위해 총 15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으나 올해 총 21가구가 지원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내년도 예산은 27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DL이앤씨가 신축 아파트 현장에서 중량 충격음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DL이앤씨)
DL이앤씨가 신축 아파트 현장에서 중량 충격음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DL이앤씨)

결국 국토부는 49데시벨(dB)이하라는 층간소음 기준에 미달한 공동주택은 사업주체가 반드시 보완시공 해야 하며 기준에 이를 때까지 재수검에 나서야한다는 내용의 ‘공동주택 층간소음 해소방안’을  11일 발표했다. 층간소음은 임팩트볼(고무공)을 1m 높이에서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아랫집에 전달되는 소음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검사한다. 49dB는 조용한 사무실 수준의 소음이다.

소음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준공승인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신축 공동주택이 소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보완시공 또는 손해배상을 '권고'하는 현행 주택법의 한계를 극복, 층간소음 정책의 패러다임을 국민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보완시공은 입주예정자에게만 통지되는데 그치지만 사업주체가 사용검사권자로부터 불가피성을 인정 받아 손해배상에 나설 경우 해당 공동주택의 정보를 공개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임차인과 장래 매수인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이긴 하지만 보완시공에도 층간소음 잡기에 실패한 아파트는 F학점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 해당 주택 소유자의 손해와 시공사의 평판 저하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표제공=국토부)
(표제공=국토부)

공사가 끝난 이후 성능검사에서 기준에 미달할 경우 바닥을 전면재시공해야 하지만 막대한 추가 공사비가 들어가게 된다. 이를 감안, 지자체별 품질점검단이 준공 8~15개월 이전 시공 중간단계에서 층간소음을 측정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결정도 눈에 띈다. 골조 완성 전후로 바닥마감재 시공이 완료된 샘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검사 세대수도 현행 2%에서 5%로 높여 검사의 신뢰도를 높일 방침이다.

보완시공을 의무화하고 손해배상 시 정보를 공개하는 내용을 담은 국토부의 이번 대책은 층간소음 감소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적지 않은 부작용도 일으킬 것으로 우려된다. 전반적인 사업성 악화에 따른 분양가 인상의 후폭풍이 불어올 수 있다.

층간소음 기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준공불허라는 강력할 처벌규정이 생기게 되는 만큼 신기술 공법 적용, 보강재 채택 등에 따른 공사비 증가는 불가피하다. 보완시공 명령이 떨어지면 추가로 공사비용이 들어가면서 공기도 지연된다. 시공사는 예정 입주 시기에 맞춰 층간소음 기준 미달로 준공허가를 받지 못해 입주가 지연될 경우 이에 따른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슬래브 두께를 법정 최소기준인 210㎜보다 두꺼운 250㎜로 키운다면 소음기준을 충족시키기 쉽지만 층수는 낮아지고 가구수는 줄어들게 된다.   

건설사가 보완공사비와 지체상금을 그대로 떠안게 된다면 원가계산 과정에서 이런 리스크를 죄다 반영해야 한다. 이는 분양가에 전이될 수밖에 없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층간소음 방지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층간소음 방지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물론 국토부는 이미 인증된 기준을 따르는 것인만큼 추가부담이 없다는 입장이다. 원희룡 장관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기준을 높인 게 아니어서 층간소음을 위한 시공과 자재 투입으로 추가 비용 상승은 있을 수가 없다"며 "비용이나 공기에 다 반영된 것을 제대로 했는지 중간중간 검사해서 이행하도록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비용을) 빼돌리거나 (시공을) 대충 하던 것에서 이익이 줄어들지 모르겠지만, 추가로 비용을 부담시키려는 게 아니다"라며 "그동안 (소음) 인증 제품을 가지고 제대로 시공해온 회사라면 비용이나 공기에 추가 부담이 없다는 게 저희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원 장관은  "만약 이번 방안 때문에 비용이 올라가거나 공기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동안 층간소음 방지를 위한 기준에 포함된 비용을 실제로 투입하지 않고 빼돌렸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GS건설은 지난해 국내 최초로 층간소음 저감을 위한 '5중 바닥구조'를 개발했다. (사진제공=GS건설)
GS건설은 지난해 국내 최초로 층간소음 저감을 위한 '5중 바닥구조'를 개발했다. (사진제공=GS건설)

원 장관의 해명에도 불구, 건설사에 있어 층간소음 리스크가 커진 것은 분명하다. 적정 마진을 더한 분양가를 받기 힘든 곳에선 신규 아파트 공급이 위축될 우려가 높다. 층간소음 연구에 투자해온 대형건설사가 아닌 중소형 건설사는 시공 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층간소음 확보 기술을 확실히 갖춘 건설사가 시공하는 단지의 분양경쟁률 상승이 예상되는 반면 입지가 약화된 중소형 건설사는 자칫 생존의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보완시공 의무화와 손해 배상시 정보공개는 주택법 개정 사안이다. 국토부는 내년 상반기 주택법 개정안 등 관련 입법을 마무리지을 방침이다. 국회에서 통과되면 1년 가량의 유예기간을 두고 이르며 2026년 사업계획 승인을 받는 아파트 단지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층간소음 감소를 위한 정책 취지야 좋지만 실제 시행과정에서 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분양가 상승과 시행착오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아파트 각 세대가 벽으로 연결돼 있는 설계 특성 상 소음이 사방으로 번지면서 층간소음인지 측간소음인지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시공사들의 불만도 경청할 때다.

우선 LH가 2025년부터 모든 공동주택을 1등급(37dB) 수준으로 공급하도록 하겠다는 국토부 목표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LH의 선도적 역할이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공공 주도로 우수 기술을 민간에 확산한다는 정책도 차질을 빚게 된다. 기존 아파트의 층간소음 저감을 위해 보다 현실적인 방안 마련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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