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2.14 16:14
자살예방 이미지 (사진제공=픽사베이)
자살예방 이미지 (사진제공=픽사베이)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자살시도자의 35.8%는 "도움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지 정말 죽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어 주변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자살을 시도했다는 뜻이다. 2020년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1만7169명에 대한 사후관리사업 보고서에 실린 '자살에 대한 진정성' 분석에서 나온 결과다. 

자살사망자의 94%는 숨지기 이전에 경고신호를 보낸다. 다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를 눈치채는 비율이 22.7%에 그칠 뿐이다. 위험성을 알았다해도 46.2%는 "걱정은 했지만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주변의 관심과 도움, 정책적 지원이 제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입증하는 수치다.

가족 중 한 명이 자살하면 남은 유족은 일반 사망 사고에 비해 훨씬 강한 심리적·사회적 고통을 당한다. 자살유족의 자살위험이 남성은 8.3배, 여성은 9배에 달한다는 연구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22년 자살의 경제적 손실을 추산할 결과 1인당 4억900만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초래된다고 밝혔다. 전체 자살자에 이를 곱하면 국가적으로 5조4000억원의 손실이 난 셈이다. 자살시도로 인한 후유증과 자살자 유족의 신체·정신질환 증가 등을 고려하면 자살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은 이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 틀림없다. 

자살은 결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 문제이다. 자살할 생각이 줄어들고 실행에 옮겨지지 않도록 모든 구성원이 애정을 갖고 주변을 살펴야 한다. 그만큼 예방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 한국생명의전화는 홈페이지에서 “자살예방은 나와 관계없는 일이 아닌 나의 관계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도록 체계적인 파악과 지원대책이 마련되어야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2003년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 기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살동기의 39.8%는 정신적 문제이고 경제생활 문제도 24.2%에 이른다. 천연자원은 부족하고 인구 밀도가 높은 현실에서 어릴 때부터 남보다 앞서가야만 잘 살 수 있다는 교육이 이뤄진다. 명문대 입학을 놓고 치열했던 싸움이 끝나자마자 전문 자격증 취득, 사무관급 공무원 시험 합격, A급 대기업 입사 등의 목표를 놓고 뜀뛰기가 또 시작된다. 직장생활을 힘들게 마쳐도 평화스러운 날은 오지 않는다. 그간 벌어놓은 돈이 부족한데다 사회안전망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70세가 넘어도 생업 전선에 내몰리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그래프제공=보건복지부)
(그래프제공=보건복지부)

평생 편히 쉴 틈조차 없다보니 2021년 한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1만3352명에 달했다. 자살자의 51.1%가 40대에서 60대이다. 자살률은 70대가 61.3%으로 전 연령에서 가장 높다. 2021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자살자수를 의미하는 자살률은 23.6명을 기록했다. OECD 표준인구 기준으로 자살률을 산출한 수치로 OECD 평균(11.1명)의 2배를 훌쩍 넘는다.  20명 이상인 국가는 한국을 빼고는 리투아니아(20.3명)뿐이다. 그 밑에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가 있다. 동부유럽 개발도상국과 순위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다.

자살률은 2011년 31.7명을 정점으로 2017년 24.3명에 이르기까지 하락 추세를 보이다가 2018년 26.7명, 2019년 26.9명으로 다시 높아졌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25.7명으로 낮아졌다가 2021년 26.0명으로 다시 올랐다.

과거 통계를 보면 1997년 외환위기와 2002년 카드대란, 2008년 금융위기 등 대다수 국민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자살률이 상승한뒤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 중에는 사회적으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국민적인 단합 분위기도 나타난데다 재정지원 등으로 자살률이 일시 떨어질 수 있지만 이런 요인이 사라진 뒤에는 반등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예상이다. 작년 봄부터 본격화된 고금리와 고물가, 경기 위축으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늘고 있는 만큼 선제적 조치가 절실하다.

(그림제공=보건복지부)
(그림제공=보건복지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2021년 우울증 환자는 91만785명으로 2019년보다 8.7% 늘어났고 공황장애 환자 역시 22만1131명으로 2019년보다 12.5% 증가했다. 자살을 시도할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다. 국민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것을 감안, 보건복지부는 13일 오후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23~'27)(안)'에 대한 공청회를 갖고 자살률을 2021년 26.0명에서 2027년까지 18.2명으로 30%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사회 자살 위험요인 감소 ▲자살 고위험군 집중관리 ▲사후관리 강화 ▲대상자 맞춤형 자살예방 ▲효율적 자살예방 추진기반 강화 등 5가지 추진 과제를 수행하기로 했다.

고민 끝에 마련한 대책이지만 그간 4차례에 걸쳐 수립, 집행한 자살예방기본계획이 매번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이번 계획의 성공 가능성도 결코 높지 않다. 2004년부터 2008년 실시된 제1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의 목표자살률은 18.2명이었지만 결과(2010년)는 31.2명이었다. 5차 계획 목표가 20년 전 수립된 1차 계획 목표와 똑같다는 점에 참담할 뿐이다. 더구나 4차 계획 목표(17명)보다 후퇴한 수치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정부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 내 체크박스를 통해 복지수급 신청단계에서 정신건강 위기군을 미리 찾아내고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성형목탄)의 생산을 금지하기로 했다. 온라인에서 자살약으로 거론되는 항뇌전증제, 진정제, 수면제, 항파킨슨제, 아질산나트륨을 자살위해물건고시에 포함, 모니터링을 강화할 방침이다. 

정신건강 위협이 확대되기 전에 조기개입한다는 원칙에 따라 2년 주기로 정신건강검진체계를 확대개편한다는 방안이 주목된다. 현재 만 20, 30, 40, 50, 60,70세는 우울증 검사를 10년마다 무료로 받을 수 있다. 향후 일반건강검진처럼 이 주기를 2년으로 줄이고 검사질환에 조현병, 조울증 등도 추가할 계획이다. 우선 만 20~34세 청년층부터 적용한뒤 단계적으로 넓힐 방침이다. 사후관리 조치도 신설된다. 위험군으로 지정된 국민을 상대로 정신건강의료기관에서 심층검사를 실시, 자살위험성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조치로 여겨진다.

서울시가 최초로 2021년부터 강서구에서 실시중인 '생명사랑안심아파트' 사업을 벤치마킹, '생명존중안심마을'을 17개 시·도에 조성하고 주변의 자살위험 신호를 파악해 전문가에게 연계하는 '생명지킴이'를 매년 100만명 양성하는 것은 물론 관련 교육 체계도 강화한다는 계획도 눈에 띈다. 차질없이 실행된다면 자살 예방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 전체 사망자 중에서 50대 남성이 26.6%, 60대 남성이 25,5%를 차지했다. 1인 가구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혼자 사는 중장년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늘어날 공산이 높다. 독거노인 등 고위험자를 빨리 발견하고 상담과 치료, 서비스 연계를 통해 고독사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시범사업이 하루빨리 확대될 필요가 크다.

다리 난간에 설치된 자살 예방 시설. (사진제공=픽사베이)
다리 난간에 설치된 자살 예방 시설. (사진제공=픽사베이)

자살률을 낮추는 근본적인 해법은 국가 전반에 깔린 초경쟁적 분위기를 완화하고 자살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여겨진다.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국민 모두가 생명의 존귀함과 존엄성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생명존중 풍토부터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진학이나 취업 등에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노력하는 과정을 칭찬하고 박수 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한 승리보다는 정정당당한 도전 끝의 패배가 보다 가치가 크다는 인식도 확산될 필요가 크다. 

일본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1조7000억원의 재정을 투입, 자살률을 20.9명에서 14.7명으로 급격히 낮춘 바 있다. 보건복지부는 선진국 모범사례 중 한국에 적합한 제도를 이식하고 세계보건기구와의 협력을 강화해 이번에야말로 5년 뒤에는 목표 수준에 근접하는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 인구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존귀한 생명조차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세계 지도국이 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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