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지혜 기자
  • 입력 2023.03.20 10:00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비용 많이 들고 전·후방 파급 효과 커
차기 '아이폰' 패널 점유율, 중국 업체가 50% 차지할 수도

김현재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KIDS) 수석부회장 겸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사진=고지혜 기자)
김현재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KIDS) 수석부회장 겸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사진=고지혜 기자)

[뉴스웍스=고지혜 기자] 글로벌 OLED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들을 중국 기업들이 바짝 뒤쫓고 있다. 과거 한국 대표 수출 산업이었던 LCD를 중국에 내줬던 흐름과 동일하다. 중국 기업들은 전폭적인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저가·물량 공세를 펼치면서 우리나라가 2004년부터 17년간 부동의 1위를 기록했던 전 세계 LCD 시장을 차지했다.

중국 기업들에 LCD 시장을 내준 국내 기업들은 첨단 기술력이 필요한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OLED 시장에서도 중국의 추격세는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점유율 10%를 차지할 때까지 걸린 기간은 LCD에선 10년이었지만, OLED 시장에서는 불과 6년으로 줄었다. 3년 뒤에는 OLED 시장 점유율을 한국과 중국이 양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LCD 산업의 몰락을 지켜봤던 정부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근 디스플레이 산업 지원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1월 디스플레이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고, 지난 15일에는 '세계 1위 탈환'을 목표로 2026년까지 62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경쟁국들과 비교해 다소 늦은 조치지만, 업계는 일단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뉴스웍스는 김현재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KIDS) 수석부회장(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을 만나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물었다. 그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근무한 뒤, 현재 연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래는 김현재 수석부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국내 LCD 산업의 동향이 어떤가.

"한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LCD 산업에 뛰어들었고, 2000년대 초반부터 LG, 삼성전자(현 삼성디스플레이)가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이때는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제품 두 대 중 한 대는 국내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저가공세를 펼치면서 LCD 시장 가격이 떨어졌고, 수익률이 낮아지자 중국이 LCD 주도권을 잡아버렸다.

LCD를 판매해도 어느 정도 부가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만들어 팔수록 적자를 기록하다 보니 국내 업체들은 과감히 사업을 접어버린 것이다. 삼성전자는 2021년에 LCD 사업을 철수했고,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국내 파주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친 상태다."

-그렇다면 국내 LCD 산업은 어떻게 되리라 전망하는가.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에 한해 전망해보자면, LCD 사업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 워낙 LCD패널을 생산하는 공장이 많고, 저가공세를 굽히고 있지 않다 보니 수익률이 없기 때문이다."

-OLED 시장에서도 중국이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보는가. 

"OLED는 추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LCD는 중국에 자리를 내줬지만, OLED는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확고히 잡고 있다. 현재 아이폰, 갤럭시폰은 모두 OLED 패널을 사용한다. 이 중 80~90%는 국내 기업 제품이다. OLED TV 패널도 100% 국내 기업이 생산한다. 중국이 빠른 추세로 따라오고 있지만, LG와 삼성이 폴더블, 롤러블과 같은 새로운 폼팩터를 개발해 OLED 내에서 기술 격차를 벌릴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디스플레이를 지원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디스플레이는 전방, 후방 업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굉장히 큰 산업이다. 반도체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재료, 부품이 많이 들어간다. 자연히 재료, 부품 등을 공급하는 회사가 반도체보다 훨씬 많다. 예를 들어 삼성디스플레이 매출이 34조원, LG디스플레이 매출이 26조원으로 패널 업체의 매출만 보면 60조원 규모다. 하지만 관련 사업인 재료, 부품 공급사 매출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10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또 디스플레이는 더 많은 산업과 연결될 수 있는 확장성이 좋다. 향후 더 많은 산업과 연결되면서 파급 효과는 더욱 세질 것이다. 전 산업을 아우를 수 있기 때문에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 1위 하는 것은 산업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본다."

-최근 지정된 국가전략기술이 디스플레이 산업에 어떤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지.

"국가가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선정된 국가전략기술 산업 중 핵심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분야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라고 할 수 있다. 

근데 정부가 반도체에만 연구개발(R&D)을 위한 예산, 인력을 굉장히 많이 지원해주고 있는 것 같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완전히 다른 분야가 아니다. 디스플레이 공정도 반도체 공정과 거의 동일하다. 근데 제조 과정에서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산업은 디스플레이다. 반도체의 경우 최대 300㎜ 지름의 웨이퍼 기판에서 칩을 만든다. 하지만 디스플레이는 2.2m, 2.5m 크기의 유리기판에서 칩을 제조한다. 크기가 커짐에 따라 예산이 많이 들고, 공정도 복잡해진다.

과거 디스플레이는 통상 '반도체 동생'이라고 불리며 지원은 뒷전이었다. 최근에서야 정부가 디스플레이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 국가첨단산업으로 지정하고, 각종 세제 혜택도 주고, 국가핵심기술 지정도 하는 등 폭넓은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늦게나마 디스플레이 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고 본다."

-최근 정부가 '세계 1위 탈환'을 목표로 2026년까지 62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충분히 1위 산업이 가능할 것이라 본다. 올해 출시된 애플 '아이폰14'에 탑재되는 패널 공급사별 출하량 비중 전망치를 살펴보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50%와 36%, 그리고 중국 대표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가 16%다. 국내 기업이 90%가량을 차지한 것은 국내 기업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기술력이 중국 업체를 앞서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정부가 지원이 충분치 않다면 LCD와 똑같은 결과로 가는 것이다. 지원이 부족하다면 차기 아이폰 탑재 패널은 중국에서 50% 공급하는 상황도 충분히 올 수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발전을 위해 국가가 짊어진 과제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디스플레이는 삼성, LG와 다른 기업의 격차가 너무 크다. 삼성, LG는 미래 기술 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돼있다. 하지만 개인 기업은 언제 사업화가 될지도 알 수 없다. 미래기술 투자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중소 디스플레이 업체 육성 방안을 심도 깊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또한 디스플레이 부품과 재료를 만들어 사업을 하는 중소업체들의 어려움이 많다. 예를 들어 OLED에 들어가는 핵심 재료를 국내 중소업체가 개발하면, 실제 패널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에 대해 검증해야 한다. 그 증명은 누가 하나. LG, 삼성밖에 없다. 조 단위의 거액이 필요한데, 중소기업이 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국가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기술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우선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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