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11.14 08:00

美 압박 시 구매계약 체결 뒤 상황 살펴야
모든 것이 불분명한 프로젝트, "불참이 최상"
美 기업 포함 日 등과 컨소시엄 결성 대응 필요

신현돈 인하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가 최근 교내 집무실에서 뉴스웍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안광석 기자)
신현돈 인하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가 최근 교내 집무실에서 뉴스웍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안광석 기자)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불확실성이 워낙 크니까 가급적 참여 안 하는 게 좋겠죠. 하지만 미국의 압박으로 참여가 불가피하다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벨류체인의 꼬리(구매단계)를 선택해야 합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비전통에너지·LNG 분야 전문가인 신현돈 인하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미국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미국이 한국이나 일본, 대만과 같은 아시아 선진국에 해당 프로젝트 투자를 요청한 배경이 경제적 요인보다는 전략·외교적 요인에 있다는 점에서 이미 여론의 무수한 비판을 받아 왔다. 신 교수 또한 불투명성에 따른 ‘코스트 오버런’ 위험을 들어 440억달러(약 64조원) 규모의 사업 수주 기회라기보다는 미국의 ‘반갑지 않은 초대장’에 가깝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0월 말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관세 협상을 타결한 뒤에도 여전히 한국이 알래스카 LNG 사업을 포함한 2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결정하기를 원하는 뉘앙스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거절하더라도 언제든지 군사 지원과 관세 등을 지렛대로 활용해 무조건적인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신 교수는 “피할 수 없다면, 미국이 원료인 천연가스 생산·채굴을 맡는다면, 한국은 최종적으로 정제된 LNG를 구매하겠다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 경우 미국 에너지 정책이 바뀌어 생산을 포기하게 되면 구매자가 없게 되고, 반대로 구매자가 없어도 전체 사업 계획 수립을 못하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자연 위험을 감내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올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주도 기업 글렌파른과 LNG 예비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사진은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사진제공=포스코지주)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올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주도 기업 글렌파른과 LNG 예비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사진은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사진제공=포스코지주)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자연 상태의 천연가스 개발부터 시작해 파이프라인 운송, LNG 정제와 수출까지 연계해서 이뤄지는 거대한 밸류체인 사업이다. 이 벨류체인에서 가장 늦게 진행되는 게 LNG 구매인데, 신 교수 언급대로 사업 변동성에 대한 대응력이 가장 용이한 단계다.

신 교수는 “자연 상태의 천연가스를 액화·저장·기화하는 LNG 설비를 만드는 계획이 수립되는 시점이면 이미 천연가스 생산·채굴과 파이프라인 건설 등 앞단계 사업자들은 결정돼 있다는 의미”라며 “한국은 프로젝트 추이를 면밀히 살핀 뒤, 맨 마지막 단계인 LNG 구매부터 시작해 파이프라인과 생산 단계 등 역순으로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한국이 이렇게 전략적으로 접근하더라도 해당 프로젝트가 전체적으로 불투명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벨류체인이란 톱니바퀴와 같아서 각 단계 활동이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거나, 특정 단계의 약점이 전체 밸류체인에서 누적돼 효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알래스카 LNG 사업이 여러 차례 무산된 것도 해당 사이클이 자연스럽게 연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개발지가 동토지역이다 보니 공사기간은 짧고 인건비는 비싸 총공사 비용은 추산할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 가스 시장 변동성도 크다. 현재 미국을 제외한 서방세계는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기후변화 등에 민감하기 때문에 극지방 개발은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다. 이를 무릅쓰고 알래스카를 개발한다고 해도 모잠비크 등 기존 LNG 생산 광구들과 경쟁해야 한다.

신 교수는 “파이프라인 설치 단계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3년 뒤, 미국이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라도 된다면 사업이 멈추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가 앞서 제안한 벨류체인 꼬리 잡기도 변수가 있을 수 있다. 상황을 지켜보다가 참여할 시 기존 지분 참여 국가나 회사들이 개발 성과를 나누려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포스코인터내셔널도 이런 점 때문에 일찍부터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 의사를 표현했을 것”이라면서 “또한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수출품 관세가 제일 큰 문제인 만큼 이를 상쇄하자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가 최근 교내 집무실에서 뉴스웍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안광석 기자)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가 최근 교내 집무실에서 뉴스웍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안광석 기자)

그러나 당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알래스카 프로젝트 참여 압박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알래스카 기존 가스전은 생산이 거의 종료 시점이고, 가격도 미국 내 다른 주보다 높다. 그렇다고 미국 내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면 과거 엑슨모빌이나 BP의 실패 사례를 반복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알래스카산 LNG를 대부분 수출해 수익을 얻고, 일부만 내수용으로 쓰자고 구상한 것이다.

신 교수는 앞으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가스공사는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순방 및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계기로 미국과 연간 330만톤(총 10년간 약 3300만톤)의 LNG 장기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알래스카 건과는 별도다.

신 교수는 “너무 많이 구매했으면 기존 장기계약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잉여 에너지도 발생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도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정부의 실리외교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추후 알래스카 프로젝트 문제 대응을 위해 미국 국방 의존도가 높아 한국과 처지가 유사한 일본이나 대만 그리고 에너지 부족 국가들과 국제 컨소시엄을 결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보험 차원에서 해당 컨소시엄에 미국 국적 석유기업을 유치하면 프로젝트 운영이 수월해지고 관세 보복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현돈 인하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한국석유공사를 포함해 쉘 및 코노코필립스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에서 근무했다. 한국 자원공학회와 한국석유공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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