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10.28 19:43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정한 행위를 했는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열띤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이 회장의 승계'를 목적으로 합병이 진행됐다고 판단한 반면, 변호인 측은 '사업상 필요성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김선희·이인수)는 28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의 항소심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부는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의 합병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검찰은 "삼성그룹이 2012년부터 이 회장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의 합병안을 검토했음에도 2015년 양사 합병 당시 승계 목적을 부정한 것은 엄연한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 측은 이 같은 사실을 숨겼고, 이는 매우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지난 2012년 12월경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작성한 '프로젝트-G' 문건을 핵심 증거로 제시했다. 검찰은 이 문건에서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 중 하나로 ‘승계 및 계열 분리 대비’가 언급되고, 목표에 대주주 지분율 강화와 후계구도가 적힌 점 등을 근거로 "이는 승계 계획안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문건 작성자는 이 사건 합병이 삼성 일가 승계의 핵심 근간이고, 이러한 내용이 '프로젝트-G' 문건에 담긴 것을 인정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또 합병 과정에서 사업적 목적을 검토한 바 없다는 근거를 위해 안진회계법인의 합병비율 검토 보고서를 제시했다. 검찰은 "안진회계법인 담당자가 합병 비율 검토 보고서 작성 당시 제대로 된 평가가 하나도 없었다"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삼았다.
검찰은 이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기업가치가 상승해 합병이 이뤄진다면 계획의 부정성이 치유될 수 있지만, 전대 회장의 사망 이후 갑작스럽게 계획을 앞당겨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정한 행위가 시행됐다"고 강조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합병은 불법적이지도 약탈적이지도 않았다. 사업상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경영상 효과도 존재했다"고 반발했다. 이어 "양사 합병이 삼성물산에 불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합병 이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양사의 주가가 모두 올랐다"고 항변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주장하는 부당합병의 전제부터 틀렸다고 강조했다.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은 1대 0.3으로, 제일모직 1주의 가치가 삼성물산의 3배에 가깝게 책정됐다. 검찰의 2015년 당시 양사 합병이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는 불리하고, 제일모직과 이 회장에게만 유리하게 추진됐고, 제일모직에 유리한 비율과 시점에 합병이 진행됐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또 "합병 비율이나 시점의 부당성이라는 항소 이유는 전체 분량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합병 쟁점도 원심과 중첩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제일모직은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국민연금은 합병 전까지 주식을 4669억원어치 순매수했다"며 "증권사 보고서는 투자 포인트로 사업 안정성, 바이오 산업의 성장성,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점 등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물산은 해외 사업 부진, 유가 하락, 어닝 쇼크 등이 있었기 때문에 주가가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당시 합병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검토했다. 삼성물산 경영진은 물론 사외이사 등이 모두 삼성물산은 물론 주주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다"며 2014년 4월 및 10월 이사회 회의록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이어 "엘리엇 등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도 합병으로 인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은 법령상 주가로 산정했고, 이 과정에서 주가를 의도적으로 조정했다는 사실은 지난 4년 간의 수사로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회장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된 바 있다.
지난 2월 열린 1심 판결에서 법원은 "양사의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어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 또한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이 회장의 19개 혐의 모두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