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1.14 06:00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배터리 업체들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지난해 4분기 줄줄이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오는 20일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어서 전망도 안갯속이다.
배터리 업계의 한파는 트럼프 정부 출범과 맞물려 올해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여, 배터리 업체들은 이미 위기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배터리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비용 감축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전기차 시장 캐즘은 2026년 이후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2255억원을 기록해 3년여 만에 분기 실적이 적자 전환됐다.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은 IRA 지원금을 빼면 사실상 적자를 낸 분기 실적을 발표해 왔는데, 이번에는 IRA 지원금을 포함했음에도 적자 전환해 우려감을 키운다.
그간 안정적인 흑자 기조를 유지해 왔던 삼성SDI도 지난해 4분기 적자 전환된 실적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SK온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해 오다 지난 3분기 흑자 전환됐으나, 4분기에 또다시 적자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9일 잠정실적 발표를 통해 4분기 매출 6조4512억원, 영업손실 2255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9.4%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고 밝혔다. 전기 대비 매출은 6.2%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 제도에 따른 텍스 크래딧은 3773억원으로 이 금액을 제외하면 영업손실 602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시장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인 605억원 영업이익 흑자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메탈 가격 하락에 따라 배터리 가격이 하향 조정됐으며, 연말 일부 불용 재고 처리를 진행해 일회성 요인이 작용했다"라고 설명했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소형 전지의 영업이익은 192억원으로 추정되며, 전기차용 제품 수요 회복이 IT 제품 비수기 영향에 의해 상쇄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자동차용 전지는 영업손실 6086억원으로 추정된다. 판매량 성장세는 전 분기와 비교해 둔화했을 뿐 아니라 기존 예상치를 더 하회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예상보다 판매가 부진했던 곳은 북미가 아닌 유럽으로 추정되며, ESS 전지도 영업손실 134억원으로 적자 전환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GM의 재고 조정 과정에서 전 분기 대비 판매량은 둔화했으나, 기존 예상 대비해서는 고객사의 재고 조정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추정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1분기 전망에 대해서도 계절적 비수기이자 정책 공백기로 판매 부진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회성 비용이 제거된 만큼 적자 폭은 감소할 전망이지만, 올해 1분기까지 실적 모멘텀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연초 출시될 것으로 보이는 테슬라 신차 출시에 대한 수혜는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상반기에 예상되는 반등 트리거로 ▲테슬라 신규 모델 사전 예약 강세 ▲트럼프 정부의 CATL 규제 강도 강화 ▲리튬 가격 단기 반등 등을 들었다.

역시 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에 따르면, 삼성SDI는 지난해 4분기 3억9670억원 매출에 24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 전환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SDI는 그동안 배터리 업계 중 미국 IRA에 따른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의존도가 가장 낮았지만, 작년 1분기에서 3분기까지 계속 흑자를 기록해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기록해 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SDI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2조8378억원과 6199억원으로 집계된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당초 증권사들은 삼성SDI가 매출액 4조1000억원과 영업이익 575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보다 크게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중대형 전지의 경우, 자동차용 전지가 북미 신규라인 생산이 진행됐으나, 아직 물량이 미미해 매출 및 AMPC 기여도는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유럽 경기 침체 영향에 따른 판매량 부진과 일회성 비용 반영으로 매출과 영업이익 큰 폭으로 하락했다. 소형전지는 파워툴 수요 부진이 지속되고 낮아진 재고 수준과 판가 하락, 원통형 EV 물량 급감 영향으로 매출 하락과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전자재료는 반도체 부진으로 부진한 실적 기록할 것"이라며 "다만 ESS는 신재생 수요 확대에 힘입어 매출 성장과 고수익성을 유지했다"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SDI의 올해 1분기 유의미한 회복세는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EU 정책 불확실성으로 유럽 완성차 업체 재고 조정은 올해 1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의 일회성 비용은 제거됐지만, 물량 감소에 따른 고정비 부담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연간 출하량도 하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국은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요구로 올해 전기차(ZEV) 맨데이트(책무)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스텔란티스는 미국에서 '램 1500 REV' 출시를 내년으로 연기했다.

SK온은 작년 4분기 2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3분기에는 240억원의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지만, 한 분기 만에 다시 적자로 전환되는 셈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SK온의 3분기 흑자 전환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수익 구조가 본질적으로 개선된 게 아닌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SK온이 올해 연간 흑자를 기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조현철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고객사 연말 재고조정 영향으로 기존 예상보다 SK온의 판매량 회복이 크게 더뎌질 것"이라며 "주요 고객사인 전기차 판매 부진 및 트럼프 정부 정책 리스크 등으로 전기차 출시 일정도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 업체들의 지난해 4분기 실적에 대해 "예상했던 대로 중국이 소재에 대한 기득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 변동 때문에 배터리 업체들의 재정 상황이 압박을 받는 양상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 공장의 LFP 배터리 가동률은 전 세계 배터리 공장 가동률이 84%일 때 45% 정도로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LFP 배터리는 킬로와트당 가격이 52달러로, 삼원계 105달러의 절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당연히 배터리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배터리 업체들은 LFP 배터리의 초저가 공세에, IRA 폐지 우려까지 견뎌야 하는 시점"이라고 내다봤다.
